[Opinion] 모니터 너머의 위로, ASMR [사람]

글 입력 2021.11.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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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스트레스 받는 일이 부쩍 늘었다. 그 때문일까? 아직 20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새치가 갑작스럽게 꽤 많이 생겼다. 이제는 주기적으로 염색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슬픈데 새치라니. 서럽다.

 

사실 정말로 힘들었던 것은 변해가는 겉모습보다 추레해진 마음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순수하고도 싱싱했던 마음은 어느새 까맣게 떼가 타고 주름이 져 있었다. 초점 없는 눈빛과 예민해진 성격, 그리고 들끓는 화. 그것들은 생명력을 다해 가는 나의 내면을 보여줬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침대에 누일 때면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저 아이를 향한 엄마의 손길 같은, 그런 따뜻하고 다정한 보살핌 말이다. 작게 쪼그라든 마음을 안고 추위에 떠는 밤이면 나는 휴대폰을 켜고 ASMR 영상을 검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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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R은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로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머리를 빗어주거나 귀청소를 해줄 때 느껴지는 쾌감 혹은 심리적 안정감 같은 것이다.  ASMR 영상은 시각적 혹은 청각적 자극을 통해 이와 같은 쾌감 혹은 심리적 안정감을 유도하는 영상으로 스트레스 완화 및 불면증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다양한 콘셉트의 상황극 ASMR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내가 잠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내가 ASMR 영상을 즐겨 보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황극 ASMR 영상 속 사람들은 콘셉트에 따라 나의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하며, 때로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하기도 한다. 그들의 상냥한 말투와 따스한 미소는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어찌 보면 비현실적인 친절함이다.

 

무채색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가장 그리웠던 것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였다. 남에게 약간의 친절을 베푸는 것마저 손해로 여기는 사람들로 인해 나는 끝없는 무례함을 인내해야 했다. 소란스러운 하루의 끝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스쳐갔던 날, 잠을 청하기 위해 우연히 본 ASMR 영상은 내게 위로의 한마디를 전했다.


"너 스스로를 작은 존재로만 여기지 말고 네가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도 그렇지만, 너도, 우리 둘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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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가 본 ASMR 영상은 친구에게 메이크업을 해주는 콘셉트의 상황극 ASMR 이었다. 부드럽고 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건네는 다정한 말들은 꽤나 큰 감동이었다. 꽉 막힌 속이 잠시나마 뚫리는 기분이 느껴졌고, 눈가에는 곧 눈물이 맺혔다.

 

지쳐갈 때 쉴 곳이 없었던 나는 정말 오랜만에 숨통이 트이는 쉼터를 찾아낸 것만 같았다. 모니터 너머로 전해진 진심 어린 마음은 모든 것을 놓고 도망가 버리고 싶어 하던 나를 붙잡았다.

 

'그래, 나는 작은 존재가 아니니까. 우리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덕분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위로일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단순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니 '소리가 좋다'는 반응 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마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다정한 말 한마디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의 영상을 통해 서로를 지지하며 연대하고 있었다. 그들도 현실에서 응원의 말 한마디를 건넬 이를 기다리다 지쳐 이곳을 찾아온 것일까?

 

*

 

나이를 먹으니 고민의 무게도 점점 무거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스트레스 대처에 능숙해질 줄 알았건만, 여전히 나는 어리고 미숙한 사람이다.

 

비록 어설픈 구석이 있더라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씩씩하게 버텨가고 있는 요즘이다. 마치 누군가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했던 나처럼, 따뜻한 말 한마디를 찾아 방황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씩씩한 어른'이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를 흘려듣지 않고 잠시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언제나 함께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흔치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음의 온기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서로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만큼은 힐링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자연스레 찾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마치 나에게 있어서 ASMR 영상과 같은, 그런 따뜻하고 편안한 쉼터 같은 사람 말이다. 이번 겨울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모두가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과 함께, 글을 마친다.

 

 

[정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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