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EE YOU SPACE COWBOY, 비밥호의 여정을 따라 [만화]

넷플릭스 드라마 <카우보이 비밥>을 기다리며, 다시 보는 원작 애니
글 입력 2021.11.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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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가기 일주일 전. 무기력이 온몸을 감싸고 눈앞에 당면한 ‘입대’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였다. 온종일 침대에서 뒹굴던 중, 뭐라도 해야지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튼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이하 비밥).

 

난 그때 <비밥>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마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보고 나서 온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채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자세를 고쳐 앉게 됐다. 이젠 온갖 예능에서 쓰이는 Tank! 가 흘러나오며 주인공 스파이크가 담배를 피우는 오프닝 크레딧이 시작되자, ‘아, 이건 너무 반칙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평생 <비밥>을 사랑하게 되리라 대번에 직감했다.

 

  

<비밥>의 오프닝 음악 'Tank!'

 

 

I think it's time we blow this scene

Get everybody and the stuff together

OK, three, two, one

Let's jam!

 

(BGM 필히 청취 요망)

 

 

빠~바밤빠바바바바바밤♪. 음악을 들으니 고독한 현상금 사냥꾼이 된 것 마냥 흥이 오르지 않는가? 오늘의 빅 샷 시간, 타깃은 <비밥> 완전 정복이다. 자, 비밥호 발진!!!

 

 

*
내용 중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주 공간 속, 스물여섯 번의 즉흥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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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의 주인공 스파이크와 페이 그리고 에드


 

<비밥>은 2071년, 위상차 공간 게이트 기술을 통해 인류가 우주 곳곳에 살게 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인류는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나아간 반면, 위상차 공간 게이트 폭발 사고로 인해 지구는 운석이 쏟아져 거주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변모한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지구의 모습과 여러 행성을 넘나들며 현상 수배범을 추격하는 비밥호 일행의 모험은 대비되며 씁쓸함과 황홀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범죄 조직에서 탈출한 주인공 ‘스파이크 스피겔’, 최고의 도박꾼이자 홍일점인 ‘페이 발렌타인’, 우주 경찰 출신 ‘제트 블랙’, 해커 신동 ‘에드’와 천재 강아지 ‘아인’까지. 각자의 개성을 가진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우주선 비밥호에 모여 한바탕의 소동을 벌인다.


때론 차가운 도시의 풍경이, 때론 황량한 사막의 열기가 스크린에 펼쳐짐과 동시에 칸노 요코의 멋진 음악이 흘러나온다. 제목에 들어간 비밥(1940년대 이후 유행한 즉흥 연주 형식의 재즈)이라는 이름처럼 재즈풍의 음악이 주를 이루지만, 클래식과 재즈, 블루스와 헤비메탈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곡가 칸노 요코의 음악 연출에 우린 이미 속절없이 무너져버렸다.

 

삽입곡뿐 아니라, 옴니버스로 구성된 <비밥>의 세계는 이채롭기 그지없다. 서부극, 사이버 펑크, 코미디, 수사물 등 다양한 스타일로 변주되며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도대체 이 작품의 한계는 어디인지를 궁금케 한다. 그러다가도 작품의 변곡점마다 주인공 스파이크와 숙적 ‘비셔스’ 그리고 연인 ‘줄리아’로 대표되는 누아르와 멜로드라마 성격의 스토리가 여기저기 뻗쳤던 이야기의 중심 줄거리를 잘 잡아준다. 그렇기에 <비밥>의 이야기는 여러 방향으로, 그것도 아주 멀리 나아가, 관객들에게 하나의 선명한 주제 의식을 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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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호 일행의 머그샷


 

<비밥> 애호가로서 <비밥>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를 감히 추천한다면, 조심스레 8화 ‘비너스를 위한 왈츠’, 19화 ‘야생마들’, 24화 ‘하드 럭 우먼’을 꼽고 싶다. 먼저 8화 ‘비너스를 위한 왈츠’는 금성의 테라포밍으로 부작용으로 시력을 잃은 동생 ‘스텔라’의 눈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로코’의 남매애가 돋보이는 감동적인 에피소드다. <비밥>은 이처럼 디스토피아적 설정이 두드러지는 서사에서도, 슬픔이라는 감정에 이야기가 잠식되지 않게 이소룡을 오마주한 듯한 액션 스타일을 함께 버무리며 <비밥>만의 감성을 잘 드러낸다.

  

19화 ‘야생마들’은 <비밥> 특유의 과거 예찬이 잘 드러난다. 스파이크가 자신의 전용기 ‘소드피쉬’를 타고 위험에 처했을 때, 비행기 엔지니어 ‘두한’과 야구를 좋아하는 그의 조수 ‘마일즈’는 작중 시점에선 이미 고물이 돼버린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2003년에 기체 결함으로 공중 폭발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타고 스파이크를 구하러 간다. 이때 흘러나오는 ‘Too Good Too bad’ 음악은, 장면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엄청난 몰입감을 보여준다. 2071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야구’와 ‘우주왕복선’ 같은 20세기 유물을 불러오며 향수를 자극하는 <비밥>은 이번에도 홈런을 쳐버렸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24화 ‘하드 럭 우먼’은 등장인물이 하나씩 퇴장하는 에피소드로, 페이는 자신의 과거 기억을 되찾아 떠나고, 에드는 아인과 함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페이와 에드 그리고 아인이 떠나간 비밥호에 말없이 계란만 삼키는 스파이크와 제트의 모습은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장면 중 하나다. 그들의 얼굴에서 배어 나오는 묘한 쓸쓸함은, 인생을 살며 겪어왔던 상실의 감각을 일깨우며 이별로 아파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비밥>은 엔딩 크레딧에서 ‘SEE YOU SPACE COWGIRL, SOMEDAY, SOMEWHERE!’이라는 헌사를 에드와 아인에게 바치며 등장인물의 완벽한 퇴장과 팬서비스까지 선보인다.

 

 

 

오래된 미래에서 현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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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와 그의 숙적 비셔스의 결투 장면


 

<비밥>의 주인공 일행은 모두 과거에 두고 온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자신이 해결하지 않았거나 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문제들을 계속해서 마주한다. 제트 블랙은 이유조차 알리지 않고 자신을 떠나버린 연인 ‘아리사’와의 남은 일을 매듭짓고(9화 ‘가니메데 비가’), 경찰 시절에 악연으로 이어진 범죄자 ‘우다이’와 가장 믿었던 동료 ‘파드’가 한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단죄한다(16화 ‘블랙 독 세레나데’).

 

페이 역시 54년간의 냉동 수면 이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을 겪으며 혼란스러워 하지만(15화 ‘마이 퍼니 발렌타인’, 18화 ‘10년 후의 나에게’), 곧 기억을 되찾고 자기가 살았던 곳을 찾아 가본다(24화 ‘하드 럭 우먼’).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기에 자신에겐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다시 비밥호로 돌아와 현재를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25, 26화 ‘더 리얼 포크 블루스’).


이렇듯 비밥호에 계속 남기로 선택한 제트와 페이, 그리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 에드와 아인과 다르게 스파이크는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하며 과거와 현재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25화 ‘더 리얼 포크 블루스 전편’에서 그는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줄리아와 재회하며 둘만의 도피를 시도하지만, 조직에 발각되어 도망치던 중 줄리아가 사망하고 만다. 비밥호로 잠시 돌아온 후, 비셔스와의 일전을 마무리하기 위해 떠나려 하는 스파이크. 페이는 여기서 새로운 삶을 도모하자며 결정을 만류하지만, 스파이크는 이를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지막 화 '더 리얼 포크 블루스'의 한 장면

 

 

페이: 어디 가지? 뭐하러 가느냐고. 언젠가 그쪽이 그랬잖아. 과거 따위 상관없다고... 과거에 얽매여 있는 건 오히려 그쪽이야.


스파이크: 이 눈을 봐. 사고로 잃어버려서 한쪽은 내 것이 아니야. 그때부터 난 한쪽 눈으로 과거를, 또 한쪽으론 현재를 보지. 눈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어. (중략) 깨어나지 않는 꿈을 꿀 작정이었는데, 어느샌가 그만 깨고 말았어.


페이: 나 기억이 돌아왔어.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내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어. 여기밖에 돌아올 데가 없었다고. 그런데 어디 가는 거야. 뭐하러 가냐고, 일부러 목숨을 버리러 가겠다는 거야!


스파이크: 죽으러 가는 게 아냐. 내가 정말 살아 있는지 어떤지 확인하러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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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의 마지막 장면 'Bang!'

 

결국 스파이크는 최후의 결전에서 비셔스를 죽이지만, 함께 치명상을 입게 된다. 폐허가 되어버린 빌딩에서 걸어 나오며 스파이크는 하늘을 향해 그 유명한 Bang!을 외치고 쓰러진다. 더는 과거에서 도망치지 않고, 현실을 온전히 쟁취해냈다는 의미의 이 총탄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 현실의 삶에 무기력해진 일본의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2021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아직 유효하다.

 

실제로 국민대학교 박진 교수는 ‘일본 SF 애니메이션의 서사적 혼종성과 의미론적 다중성-카우보이 비밥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비밥>은 향수 어린 집착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붙잡고자 하는 꿈을 찬미하는 동시에 거부한다’고 밝힌다.

 

특히 박 교수는 ‘과거에 이끌리는 향수 어린 시선과 미래로 향하는 낙관적인 시선이 상호 교섭하고 충돌하면서 형성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우리 시대를 해석하는 <비밥>의 미학·의미론적 성취’라고 평했다. 이처럼 <비밥>은 과거에 애정 어린 눈길을 돌리면서도, 애써 다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네 인생을 근미래라는 환상적 배경을 영토로 삼아 대변하는 매혹적인 로드무비다.

 

 


넷플릭스 드라마 <카우보이 비밥>의 공식 예고편

 

<비밥>을 다 보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훈련소로 들어갔다. 우울감의 늪에 빠져 신음하고 있던 나를 ‘현재의 삶’이라는 방향으로 한 걸음 이끌어준 스파이크의 Bang! 덕분에, 군 생활 20개월을 잘 버틸 수 있었다. 이런 <비밥>이 또 하나의 선물을 우리에게 줄 예정인데, 바로 11월 19일 공개를 앞둔 실사판 <비밥>이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비밥> 드라마는 원작 팬들이 오랫동안 걱정 어린 기대로 기다리고 있던 작품이다.

 

키아누 리브스를 주연으로 하는 실사판 프로젝트가 오랫동안 논의됐으나 무산되고 시일이 꽤 흘러 공개된 이번 작품은 영화 <서치>로 유명한 ‘존 조’가 주연을 맡았다. 공개된 예고편은 원작을 충실히 계승한 느낌이지만 묘하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미국 코믹스의 느낌도 엿보인다. 원작의 팬이라면 시청하지 않을 수 없는 이번 실사판 <비밥>이 모쪼록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원작의 명성을 이어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비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친구를 하지 않는다는 스파이크의 성우 ‘야마데라 코이치’ 정도는 아니어도 난 정말 비밥으로 하루 내내 떠들 수 있다. 언젠간 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 ‘비밥러’를 만나 밤새 얘기하길 꿈꿔보며, 이 글이 작게나마 <비밥>의 매력을 보여주는 데 공헌했길 바란다. 그럼 그날이 올 때까지, SEE YOU SPACE COWBOY, SOMEDAY, SOMEWHERE!

 

 

[정주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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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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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희
    • 그 시절 일본 애니좀 봤다 하는 10대 20대라면 비밥을 안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실사판 비밥을 보면서 또 추억에 젖어 이렇게 추억공유하러 인터넷 서핑중인 40대 아재 왔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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