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흔적을 모아 - 연극 '보더라인'

글 입력 2021.11.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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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란 무엇일까, 우린 경계 사이에 있을까 경계 위에서 줄타기하고 있을까.

 

최근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질문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의 답을 얻어갈 수 있을까 해서 선택한 극이었다. 가을과 동시에 추위가 시작되고, 극이 올라가는 메리홀 극장 옆의 성당에선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무거웠던 머리가 더 무거워지는 마음이었다.

 

이 극에서 새로운 관점과 신선한 접근, 무엇보다 많은 재료를 얻어가야 한다는 중압감이 다시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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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칸씩 띄어앉은 좌석에선 여전한 코로나 19의 기세가 느껴졌지만, 대학 내의 극장치곤 꽤 꽉 찬 좌석에 가슴이 뛰었다. 그것도 잠시, 실험적인 연극이라는 소식만 듣고 관람을 시작한 내게 생각보다 더 어리둥절한 장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보통 같으면 진작에 설치되어야 했을 소품들을 극의 시작과 동시에 배우들이 나와 설치를 시작했다. 영상이 켜질 스크린과 그 밖의 소품 등이 말이다.  심지어는 한참을 조명이 꺼지지도 않았다.

 

마치 음식점에 갔는데 감자를 내 눈앞에서 캐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날것의 느낌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갔다. 무엇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모호한 지점들이 마치 맞춰지지 않은 퍼즐 조각처럼 내 앞에 뿌려졌다.

 

극 연출가는 경계를 넘지 못할 선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장성익 배우의 영상은 DMZ의 수직 벽에서 선을 긋기 시작해 수평(땅)으로 내려가 시골길로 찻길로 도심 속 사람들 발걸음 사이로 끊임없이 그려간다. 마지막 순간 무대라는 경계의 교차점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현장에 있던 배우 소현은 그 위를 마구 뛴다.  극의 초반엔 나 또한 경계, 배우들의 다른 점에 집중했다.

 

그러나 가상의 선이 현실로 들어오고, 선을 카메라로 비추며 뛰다가 후엔 마구 뛰는 모습은 경계라기보다는 궤도에 가까운 행위로 보였다.  경계는 분리의 의미라면 궤도에선 순환과 반복의 의미로써 신체노동의 온전함에 대한 의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 무대는 수많은 경계와 인간이 교차한 이야기가 있던 무대였다. 때로는 카메라로 때로는 바이올린으로 때로는 독일어, 영어, 한국어로 자신의 경계에 대해 연기했던 배우가 마지막엔 그 모든 재료 위에서 그저 행위했다.  신체가 존재하는 그곳에서 경계를 궤도 삼아 달려 나간것이다.

 

극 속에서 경계는 넘지 못할 태산임인 동시에 어릴 적 책상 사이를 가르던 선처럼 별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이 시대에 코로나 19는 마지막 펀치를 날렸다.

 

한가지로 무언가를 정의하는 시대가 지났다. 변기가 예술이 된 것이 벌써 약 100년 전이다. 작은 아이디어와 가능성이 내 인생의 조커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그러나 그만큼 내가 어디쯤 와있는지는 가늠하기 힘들어졌다. 그전의 우리는 보다 설명하기 쉬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젠 삶은 실타래 마냥 엉켜있다. 경계가 하나만 있다면 경계로 느껴질 것이다. 경계가 수직이 되면 그것은 금기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경계가 여기저기 두서없이 그어져 있다면 그것은 경계가 아닌 흔적에 불과하다. 포스터에 그려진 발자국처럼말이다. 누군가 지나갔고, 그 위를 또 지나가며 흐트려놓은 궤도들의 집합이다. 이 극에선 그런 경계가 보인다. 설명하기 힘든 것, 때로는 노는 것, 때로는 몰입하는 것, 때로는 우습지만 때로는 비참한 경계들 말이다.

 

이 극은 경계를 부수는 극이 아니다. 수많은 경계의 흔적을 주섬주섬 모아 에너지이자 재료로 사용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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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점이 있다면 역시나 zoom을 이용한 실시간 영상들이다. 싱크가 안 맞거나 한 것은 둘째 치고 정말 100% 실시간이었을지가 너무너무 궁금하다. 의도한 것이겠지만 정말 무엇이 현실이고 실시간이고 가상인지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간의 내 경험 속 연극이라고 하면, 관객석은 깜깜하게 꺼지고, 무대라는 가상의 공간에 온전히 집중시킴으로써 잠시라도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 극은 연극무대를 설치하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모두 보여주지 않나, 보통이라면 무대 뒤에 있어야 할 음향, 기계 장치들은 무대 바로 옆에 어지러운 전깃줄을 자랑하며 놓여있었다. 어지러운 조명이나 다양한 소품 대신 벽엔 커다란 스크린이 붙었고 거기선 실시간과 녹화된 영상이 함께 나왔다. 현실의 무대엔 종이로 된 가짜 모닥불과 바람 한번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텐트가 납작하게 놓여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만 이게 연극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현실도피라는 역할은 이 극에선 불가능했다. 끊임없이 현실을 직시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난 공감하기도, 완전한 타자가 될 수도 있었다. 가끔은 예술이 관객을 소외시키기도 하는데, 이 극은 그러한 예술의 애매한 지점을 실험적인 시도로 타파해낸 신선한 작품이었다.

 

예술과 삶은 늘 논리와 이성, 공식과 설명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위하는 것이 아닐까. 걷고 먹고 싸고 자는 것 말이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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