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사랑스런 아프로펌 헤어스타일 [사람]

글 입력 2021.11.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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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머리에서 긴 생머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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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쁜 것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아니었다. 열 살 무렵의 나는 예쁜 것보다는 이상한 게 좋았다. 나는 곱슬머리가 심했고, 머리숱이 많았다. 그 머리는 이상해 보였다. 아이들은 내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보거나, 볼펜 따위를 꽂아 넣었다. 내 머리카락은 블랙홀처럼 그 낯선 물체들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 긴 곱슬 머리카락은 두피부터 꼬이고 얽혀 내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부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래도 나는 다소 이상해 보이는 내 머리 스타일이 좋았다.

 

중학생 남자아이들은 언젠가부터 그런 내 머리를 못생겼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애들의 말을 하나도 잊지 못하고 쌓아두었다. 그리고 점점 그냥 예쁜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가서 긴 머리의 숱을 쳤다. 석 달에 한 번은 뿌리 매직을 하여 윤기 나는 긴 생머리를 유지했다. 사람들은 예쁜 것을 좋아했다. 예쁘면 누구에게라도 쉽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이상한 것보다는 예쁜 것이 편했다. 어린 나는 빠르게 그런 것을 습득했다.

 

 

 

반항심과 아프로헤어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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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른 긴생머리를 자르고, 아프로펌 머리를 한 건 스물한 살 여름 무렵이었다.

 

스물한 살의 나는 반항심이 극심했다. 아름다움, 정상성, 자본주의 그 밖에 너무 많은 것들이 다 지겹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당시 나는 <혐오스런 나의 재철>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독립 출판하였다. 나의 아버지 재철에 대한 뒷담화로 가득 채운 에세이집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의 서가에 꽂혀 있을 그 책을 전부 없애버리고 싶다고 종종 생각한다.

 

특정 단어 뒤에 ‘병’을 붙여 한 사람의 행동을 얄팍하게 이해하는 건 싫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남들이 소위 말하는 ‘예술병’과 ‘중2병’을 동시에 앓았던 거라고 자조한다. 일정한 반항심은 나를 올바른 문학도의 길로 이끌 거라 믿었다(물론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코피어싱과 팔뚝에 새긴 몇 개의 타투, 그리고 아프로펌 헤어스타일은 그 시기 나의 반항심을 대변하는 이미지다.


아프로펌 머리는 매일 부풀었다. 파마를 한 뒤 2주가 흐르니 더이상 머리를 빗질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두피부터 꼬이고, 엉켜서 어떻게 머리를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복잡하고, 파괴적인 스타일, 반항적인 이미지, 내가 원했던 이상하고, 낯설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모습. 나는 내 새로운 헤어스타일이 좋았다.

 

 

 

다시, 부자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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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펌 머리를 한 시기에 나는 이태원에서 지냈다. 우연의 일치였지만 이태원과 내 머리 스타일은 참 잘 어울렸다. 그때 나는 가발처럼 풍성하고 거대한 머리를 얹고, 코에 피어싱을 박은 채, 빈티지 의류들과 튀는 옷들을 아무렇게나(그렇지만 누구보다 신경 쓴 상태로) 걸치고 세계음식 거리를 활보했다(이태원의 그 누구보다 소심하게).

 

당시 한 소설 합평 모임을 새로 하게 되었는데 그때 만난 낯선 사람들에게 아주 딱딱하게 굴었다. 카톡 말투에 ㅇ을 붙이는 법이 없었다. 그들이 친근하고 귀엽게 내게 질문을 던져도 나는 마음을 열지 않고, 그들을 사무적으로 대했다. 나는 내가 웃고 싶을 때 웃는 사람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반항의 일종이었다.그때 소설 합평 모임에서 내 모습이 이태원에서의 내 상태를 가장 적절히 반영한다.

 

알바를 하는 곳에서는 '웃고 싶을 때 웃자'라는 생각이 종종 벽에 부딪혔고, 나는 억지로 웃고, 심지어 웃고 싶을 때도 웃지 않는, 애매한, 한마디로 나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태원에서의 나를 부정할 생각은 추후도 없다. 하지만 그때 내가 단단히 꼬여 있었다는 건 사실이다. 이유 없는 불만과 반항심은 오히려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그때 나는 이태원 바깥에 사는 사람들이 다들 너무나 현실적으로 보였다. 그 현실적임이란 추상적 단어를 끌고 가는 구체적 동력은 자본과 사회적 미소였다. 나는 그 두 가지로부터 도망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이태원에 살면서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졌다.

 

*

 

내가 알바를 하던 곳은 경리단길에 사는 부자들이 많이 오는 소규모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일주일에 30시간씩 일했다. 좁은 식당에서 셰프와 나 단둘이 매일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가 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싫었다. 온종일 부자들의 하이볼을 제조하는 일도 끔찍했다. '현실적임'에서 도피해 이태원에서 게으르게 살아간다면(나는 이태원에서 게으르게 살았다) 나는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셰프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에서 일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일을 하지 않고 싶었고, 부자가 되고 싶었다.

 

이태원에서 나의 욕망은 점점 '현실적이게' 바뀌었다.돈을 생각하니 많은 것들이 참 부질없게 느껴졌고, 그런 내 모습이 싫으면서도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당시 엄마는 내가 드디어 철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만은 부정하고 싶었다. 돈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어른스러워지는 거라면 이태원에서의 내가, 아프로펌 머리를 한 그 사랑스런 소녀가 너무 안쓰럽기 때문이다.

 

 

 

이태원을 떠나서



이후 단지 돈 때문에, 나는 한 교육재단에서 진행하는 장학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380만원의 장학금을 주는 프로그램이었고, 당연하게도 경쟁률이 치열했다. 열 장의 계획서를 작성하고, 다섯 장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나는 그걸 해냈다. 그리고 1차에 합격했다.

 

2차는 면접이었는데 비대면 면접을 봤다. 나는 그 면접을 위해 코피어싱을 제거하고, 아프로펌 헤어스타일을 어떻게든 숨겨 보려고 왁스로 머리를 최대한 눌러 고정시켰다. 화면으로 내 웃음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더 크게 웃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눈꼬리를 최대한 아래로 내려 강아지처럼 웃었다.

 

면접관들은 내게 유튜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장학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해보라고 요청했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고, 준비해놨던 멘트를 최대한 밝게, 큰 소리로 읊었다. 사회적이고, 사교적이고, 활달하며, 아이들을 잘 놀아줄 것 같고, 좋은 어른인 것 같고, 좋은 대학생인 것 같고, 그런 모습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였다. 면접은 금세 끝났다. 코피어싱을 뚫었던 자리는 이미 막혀 다시 피어싱을 끼울 수 없게 되었다. 나는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다 웃긴 일들이다.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나는 위선자들처럼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니고 있었다.)

 

- 밀란쿤데라, 농담

 


나의 반항심은 생각보다 쉽게 깨어졌다.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이태원을 떠났다. 얼마지 않아 아프로펌 헤어스타일과도 작별했다.

 

이태원에서 떠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은 다 사라졌는데, 아무래도 극단적인 환경은 모든 걸 극단적이게 생각하게 만든다. 이태원에서는 격양돼 있었고, 작은 일들도 뚫어지게 보고, 오래 생각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예민한 상태였다.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단정한 일상을 감사히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나의 '현실적' 인생의 종착역처럼 느껴져 괜히 서운하기도 하다. 이태원이 그립다. 나의 사랑스런 아프로펌 헤어스타일도.

 

그때처럼 모든 것에 잘 분노하고, 쉽게 우울해하고, 예민하던 시기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아프로펌 머리가 선물해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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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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