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국의 그림책 작가가 들려주는 '돌파하는 힘' -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삶에 '돌파하는 힘'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책
글 입력 2021.11.0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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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림책 작가들 표1.jpg

 

 

 

1.


 

"20일까지 반납해 주세요." 

 

대학에서 아동 관련 학과를 전공하면서 어린이 도서관을 찾는 일이 많았다. 내 키보다도 낮은 책장을 이리저리 살피며 눈길을 머물게 한 곳은 그림책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어려서 읽었던 그림책들부터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그림책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그림책까지. 어릴 때는 좋아하는 그림체나 재밌을 것 같은 책은 골라보던 그림책을, 성인이 되어서는 원하는 주제가 담겨있는지를 확인하며 그림책을 보는 것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특히, 어릴 땐 무심코 지나쳤던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를테면, 그림책 작가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는지를 조언하는 부분이었다. 어려서는 무심코 지나쳤던 이 페이지가 성인이 되어서 읽으니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만들었을지가 보였고 다시금 그림책을 곱씹으며 읽게 됐다. 마치 명작을 여러 번 보았을 때 느끼는 생각과 관점들이 더욱 풍성해지듯 말이다.


그림책을 살펴보면서 문뜩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가는 어떻게 영감을 얻는지가 궁금했다. (이것은 예전부터 한 번쯤 나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에서 온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유튜브를 틀어 그림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작가가 얻는 영감의 근원을 찾아보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림책을 만드는 것 또한 생각보다 단순치 않은 작업임을 알게 되었다.


몇 페이지 안에 있는 그림과 최소화된 글에 교훈적인 내용을 전달하고자 한다면 보이는 그림책의 양보다 더 많은 생각을 취합하고 수정한 후 편집된 과정이 있고 나서야 만들어지는 압축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나서 다시 그림책을 바라보니 도서관 책장에 꽂혀있는 세상에 나온 수많은 그림책 들과 손에 쥔 그림책 또한 어느 작가의 고뇌와 생각들로 이뤄진 정수가 아닐까 생각했다.

 

 


2.


 

이것은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보면서도 그랬다. 이 책은 ‘한국 그림책 작가들의 돌파하는 힘’을 주제로 ‘고유의 돌파성’으로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구축해온 한국 그림책 작가 10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저자 최혜진 작가는 한국의 어려운 그림책 시장 상황에서도 꿋꿋이 작품을 세상에 보여주는 그림책 작가들의 힘에 주목한다. 그림책 작가들이 가진 체념하지 않고 낙관하는 법 그리고 파괴하지 않고 살려내는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을 찾고 이를 책에 풀어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신만의 사연을 품고 그림책 작가로 인생을 살아온 총 10명의 그림책 작가들이 가진 삶을 바라보는 방식과 돌파하는 힘에 대한 내용이다. 좌절과 실망, 모욕과 상실, 상처가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전하는 그들의 메시지를 담아 독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한다.

 

 


3.


 

개인적으로 책에서 소개한 작가 중 유설화 작가의 ‘인정욕구에 질문하기’가 마음에 끌렸다. 그 이유는 나 또한 인정욕구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고 최근에야 비로소 그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 방송에서 어린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거예요?”라고 질문에 이효리는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해당 방송을 보진 못했지만 캡처된 이미지로 보여주는 글을 읽으며 ‘훌륭한 사람’에 대한 개념을, 이효리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요즘에는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어릴 적 나를 떠올리면 눈에 보기 좋은 직업 또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을 먼저 찾게 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이부터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라는 내 안의 기준들을 세우곤 했다. 스스로 인정해 주는 마음보다는 사회의 시선에서 바라본 올바른 기준과 행동의 틀에만 맞추려고 애를 쓴 것이다. 물론, 올바르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아닌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만족감을 채우다 보니 자신을 채찍질하기에 바쁘고 진정한 자신을 놓친 채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효리의 ‘그냥 아무나 돼’라는 말은 조금은 나답게 살도록 숨통을 트이게 하는 말 같았다. 누군가의 인정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앞의 말이 길어졌는데 이는 유설화 작가의 ‘인정욕구에 질문하기’ 챕터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유설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주위의 인정과 자기 수용의 역학 관계를 탐구하는 책을 만들었다. 이는, 작가가 오랜 시간 ‘주변에게 인정을 받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는 걸까.’라는 질문을 깊이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통해 작가는 결과적으로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알게 해준다.

 

이를테면, 《슈퍼 거북》과 《슈퍼 토끼》가 그렇다. 두 그림책은 익숙한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 참신한 뒷이야기를 붙여 만들었다. 먼저, 《슈퍼 거북》에서는 달리기 시합에서 토끼를 이겨 동물 사이에서 영웅이 된 거북이가 있다. 분명 이번에도 거북이가 이길 것이라는 온 마을의 기대를 받고 또 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거북이는 비장한 표정과 각오로 이를 꽉 물고 번아웃이 될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인다. 그리고,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거북이의 승리가 좋은 사건인지 나쁜 사건인지를 묻는다.


한편, 《슈퍼 토끼》에서는 거북이에게 달리기를 져서 달리기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토끼가 있다. 이 토끼는 뛰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다 우연히 휩쓸린 달리기 대회에서 전력 질주를 하게 되고, 토끼는 ‘남들이 뛰어서가 아닌 자신이 뛰고 싶으면 뛰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작가는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해서 얻어지는 패배는 좋은 사건인지 나쁜 사건인지를 묻는다. 이러한 질문을 하며 작가는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는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주고,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한다.


 

“인정 욕구 때문에 괴로웠던 시간이 길었어요.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해요. 언제나 주목받을 수는 없어. 무대 위에 설 때도 있고, 응원석에서 박수를 보낼 때도 있는 법이야. 결점 많고 답답해도 이게 나야. 현실을 직시하고 여기에서부터 해보자.”

 

- 유설화 작가

 

 

 

4.


 

유설화 작가의 챕터를 보며 그림책 작가로서의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고 도전한 지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원래는 수영 선수가 되려 했지만 27살에 다시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시작한 부분이 독특하다고 느꼈다. 특히, 나와 비슷한 언저리의 나이와 앞으로 꿈과 목표를 고심하는 요즘이라 더욱 마음이 갔는지도 모른다.


유설화 작가 또한 자신의 꿈을 향해 가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의 권유로 막연히 수영 선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자라면서 수영보다는 그림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을 직업으로 삼기까지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장애물이 있었고 취직이 잘 된다는 선생님 말씀에 농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농학과에 진학하면서도 미술을 놓칠 수 없어 관련 동아리 활동을 하고 학비를 벌어서 다시 27살에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다시 대학에 갔다고 한다.


보통 ‘나이’에 발목 잡혀 원하는 것을 해보지도 않은 채 원래 하던 방식과 삶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을 믿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구축해가는 모습을 보았고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돌파하는’ 삶을 보며 나 또한 자기 확신을 갖고 이루고자 하는 방향을 따라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앞으로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오게 될 때마다 재정비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작가들의 그림책을 꺼내 읽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야. 더 자유롭게 비틀고 꿈꾸렴. 너에겐 이곳을 더 좋게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어.”

 

- 9-10p

 


[정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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