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실제론 변한 게 없는, '뉴 오더' [영화]

글 입력 2021.11.0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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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X 가상의 미래, 불안함이 들끓는 멕시코.

 

마리안과 가족들이 고급 저택에서 호화로운 결혼 파티를 즐기고 있는 와중, 사회 전역에서는 심각한 수준의 폭력 시위가 벌어진다. 시위대가 침입하면서 저택은 아수라장이 되고, 아픈 유모를 돕기 위해 집을 나선 마리안은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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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야 8년 남짓할 머지않은 미래를 그려서일까. 영화가 가상을 배경으로 한 것 치고는 현실과 맞닿았다. 최근 탈레반 정권이 만든 혼란, 재발발의 조짐이 생긴 보스니아 내전 등 세계 곳곳의 뒤엉킴이 떠올랐다.

 

영화의 시작은 이미지였다. 초록색 액체 범벅으로 죽어있는 몸뚱이들.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한 사람. 불. 그리고 영화 타이틀이 까만 화면을 채웠다. 스펠링이 뒤집힌 채로. 앞으로 86분 동안 이런 이야기, 혹은 이 정도의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예감했다.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들었다. 마구 뒤엉킨 시신의 몸을 연속적으로 보여주었을 때 나신은 대개 여성의 몸이었다. 재난 상황에서 약자를 더욱 간단히 짓밟는 현실에 주목한 영화인가, 혹은 다른 이야기에 집중했을까.

 

카메라는 한 부유한 가문의 결혼 축하 파티를 비췄다. 들뜬 분위기, 한껏 교양을 차린 사람들. 빨간 정장을 입은 마리안과 그의 배우자가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다. 소란스럽고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마리안의 어머니는 신경이 꽤 곤두섰다. 세면대를 틀자 수돗물 대신 초록색 물감이 나왔다. 지금 거리를 점령한 시위대가 뿌리는 그 초록색이. 저택 내부에 누군가 시위대와 연관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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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믿음직스러운 메이드인 마르타를 불러다 이 사실을 전하자, 마르타는 자신에게 일을 맡겨두라고 한다. 워낙 신경 쓸 게 큰 규모인지라 별수 없이 걸음을 떼는 마리안의 어머니.

 

이때 대조적인 모습도 비췄다. 병상에 누워있던 한 노인을 병실 밖으로 옮기는 남자를 시작으로 심각한 다친 사람들이 그 안을 점령했다. 아마도 거리에서 한창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일부인 듯했다. 심각한 부상자가 나오는 것을 보면 무력을 사용하는 데까지 번진 것 같다. 대체 누구를 향한 분노이고 무엇을 바라는 시위일까?

 

노인, 그러니까 엘리사의 아들은 초대받지 않은 파티 장소에 찾아갔다. 돈이 필요했다. 그와 그의 어머니 엘리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서 일했고, 당장 수술해야 하는 엘리사를 위해 선의를 베풀어주지 않을까 해서. 그들은 20만 달러의 일부인 1만 오천 달러를 쥐여주었지만, 누구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흡사 처리하기 곤란한 짐짝을 맡은 것처럼.

 

유일하게 반응한 건 마리안이었다.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방방곡곡을 쏘다니며 돈을 마련할 카드까지 가져왔다. 하지만 엘리사의 아들은 홀연히 사라진 뒤였다. 그의 집을 아는 마르타의 아들, 크리스티안과 함께 저택을 나섰다. 파티 분위기는 더욱 기묘했다. 어떤 소식을 듣고 조용히 빠져나가는 사람들과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메이드들, 여유롭게 노닥거리는 보안요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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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리안은 길을 막아선 시위대 때문에 먼 길로 돌아가야 했다. 그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부유한 사람들을 보면 당장이라도 차를 부술 듯이 공격적으로 대하던 탓에 핸들을 크리스티안에게 넘기고, 뒤 시트 아래에 앉아 몸을 숨겼다.

 

기존의 체계는 이미 무너졌다.

 

한편, 평화롭던 파티장에 시위대가 들이닥쳤다. 이 가문을 모시던 사람들이 돌변해 파티에 참석한 모든 이들을 집 안 한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마리안의 어머니가 의심한 대로 내부에 스파이가 있었다. 다만 메이드와 보안요원 전부라고는 예상 못했을 테다. 그들은 총구를 목덜미에 겨눠 금고 비밀번호를 열게 하고, 제 손에 지폐를 쥐면 쓰임이 다 했다는 듯 마리안의 어머니를 죽였다.

 

공포의 질린 이들은 아마 어렴풋이 희망을 품었을 거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목숨은 살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필요한 건 단순히 돈이 아니다. 제멋대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권력, 힘. 혹은 그것을 넘어선 탐욕. 메이드들은 돈이 될 만한 모든 장신구를 쓸어 담았다. 입가에 띈 미소는 오히려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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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엘리사의 집에 도착한 마리안이다. 저택의 상황을 모르는 이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군인들은 마리안을 납치하고, 마르타는 거리의 혼란을 틈타 크리스티안과 사는 집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흐르고, 살아남은 마리안의 가족 일부가 그를 찾으려고 애쓴다. 어느 날 마리안을 납치한 군인들이 찾아와 돈을 가져오면 풀어주겠다고 거래를 제안한다. 노동자의 신분으로 마리안의 가족이 머무는 집에 다시 발을 들인 두 사람은 이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목숨을 걸고 돈을 숨겨와 군인들에게 넘겼지만, 군인들은 그 값의 두 배를 또 제안한다. 다음 날, 이 말을 전하자 마리안의 가족은 그 둘을 군인과 한통속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바로, 빅토르 장관에게 연락한다. 마리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던 그에게.

 

신뢰는 순식간에 깨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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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마리안은 크리스티안의 집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총을 쏜 군인은 크리스티안 손에 그것을 쥐게 하고, 크리스티안까지 죽인다. 마르타는 어떻게 될까? 빅토르 장관을 비롯한 군의 도움으로 상황이 진정되자, 시위의 주동자들을 처형한다. 그 처형대에 오른 사람 중 하나가 마르타였고,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크리스티안과 마르타는 정말 시위대에 동조하지 않은 사람들일까? 엄밀히 따지자면 이것도 알 수 없다. 마리안의 어머니가 저택 내에서 시위대의 흔적을 찾으려 할 때 마르타가 막아섰다. 군인들에게 마리안의 위치를 이실직고하여 그가 수감소로 끌려가게 된 것은 크리스티안의 책임이 어느 정도 따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생각보다 중요치 않다.

 

부리던 사람이 모시고, 모시던 사람이 부리는 전복된 체제.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덜 가진 자와 더 가진 자는 사실 비교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봤자 그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닌 군대 앞에선 사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뒤섞이지 않던가.

 

더 가진 자도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자 앞에서는 덜 가진 자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생존에 급급할 땐 눈앞에 보이는 실체를 물어뜯고 싸우지, 뒤에서 모든 갈등을 관망하고 조장하는 그림자는 보질 못한다. 그래서 더욱더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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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난사하는 소리와 비명은 두렵고, 눈에 보이는 이미지는 끔찍했다. 그러나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주인공이 겪는 일련의 사건에 분노하고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 들어도, 이야기의 속도는 답답하지 않았다. 러닝 타임 86분의 장점이겠다.

 

생각보다 좋았지만,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재난이나 디스토피아 배경에서 주인공이 여성이면 꼭, 역겨운 장면이 나오기 마련이다. 흐름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이 영화를 다른 세상의 이야기 혹은 솔직함이 돋보이는 이야기쯤으로 여기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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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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