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실의 소리는 가라앉지 않는다 - 라스트 듀얼

글 입력 2021.11.0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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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봉건 사회의 종기사 장 르 카루주. 그에게는 절친'했던' 친구가 한 명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자크 르그리였다. 두 사람은 비슷한 연배에 같은 종기사로서 꽤 오랜 기간 동안 친분을 유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르그리가 당시 주군으로 모시던 피에르 백작의 총애를 받아 막대한 부와 권력을 쌓을 수 있었다. 카루주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조금씩 자신을 앞서나가는 르그리가 그리 달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시점부터 둘의 관계에 미묘한 어색함이 감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카루주는 불행하게도 첫 아내와 아이를 모두 잃었다. 따라서 새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마르그리트. 젊고 아리따운 여인이었다고 한다. 이미 결혼과 출산을 한차례 겪은 카루주와 달리 마르그리트는 처녀였는데, 두 사람의 나이 차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진 않지만, 책 속 묘사를 통해 꽤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나이 든 귀족 남성과 어린 신부의 결혼이 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모양이다. 굳이 특이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마르그리트의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어린 신부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지만, 마르그리트는 그중에서도 퍽 아름다운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카루주와 르그리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우연히 한 사교 행사에서 마주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냉랭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듯싶더니, 이내 어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보여주기 식 화해였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된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 사이의 불편함이 사그라지는 듯했다. 그 화해의 증표로 카루주는 자신의 아내, 마르그리트를 향해 르그리에게 입을 맞추라고 명했다. 이 명령이 불러올 화를, 카루주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
 

책 <라스트 듀얼>은 중세 시대, 실제로 벌어졌던 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 남성이 한 여성을 강압적으로 탐하였다! 그러나 남성은 끝까지 그 사실을 부인하며 결코 발생하지 않은 일이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사건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굉장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당시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비해 한없이 낮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같은 사건이 기록되기까지 마르그리트의 굉장한 결심과 실천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세계사가 여성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인 것 같다. 현재의 기준으로도 상당히 주체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마르그리트는 이 사실을, 그렇기에 누구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에게 가해진 치욕과 자신을 파괴시킨 르그리를 향한 분노를 그저 자신 안에 묶어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용기를 냈고 (그것이 그녀를 위한 것이었든,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든) 그 용기는 여러 사람들의 귀에서 귀로, 전해졌다.

 

분명 끔찍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다시는 상기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반복적으로 꺼내 보이며, 이것이 분명 나에게 벌어진 실제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해낸다는 일은 결코,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마르그리트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었으리라. 오직 진실만을 위해, 그녀는 불안을 깨부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세상은 너무나 냉담했다. 세상에 이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쉽게 끝내버릴 수 있는 사건이었다. 오히려 그녀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하면 끝날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르그리트가 겪었을 고통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쩌면 자신의 진실을 증명해 보기 위해,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진실을 위해선 자신의 목숨을 넘어 남편의 목숨까지 담보로 바쳐야 한다는 현실 앞에, 혹 그녀가 이 길고 긴 싸움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 모든 시련과 수난을 이겨내서라도 마르그리트는 르그리의 죄를 묻고 싶었을 것이다. 여성이기 전, 한 사람으로서 응당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싶었을 것이다.

 
*
 

진실을 아는 자들은 무언가 영예를 얻기 위해 진실과 사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책 <라스트 듀얼>을 읽으며 진실의 소리는 가라앉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은 명백하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공명하는 소리를 가지고 있다. 소리를 내는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고될지라도, 분명 누군가 그 소리를 들어줄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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