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지렁이 살려주는 여자

조금은 독특한 자기소개
글 입력 2021.11.0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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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근 1년간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새로이 들어간 동아리에서도 '자기소개 타임'을 요구했고, 대외 활동을 하나 시작하려고 해도 '자기소개서'가 필수였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이 반복적인 질문에 이골이 난 나머지 알파벳 4글자로 자기소개를 대체하는 공식(MBTI)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그만큼이나 '내가 어떤 사람인가'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나는 태어나기를 '나' 지향적으로 태어났다. 다시 말해 '나'에게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가 항상 궁금하다.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줄글도 여러 편 써 봤고 인터뷰도 해 봤고 MBTI 검사도 해 봤지만 어쩐지 성에 차지 않았다. 나름 언어를 전공하는 사람이기에 사랑하는 나 자신을 위해 조금 더 특별하고 조금 더 선명한 표현을 찾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이렇게 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렁이 살려주는 여자입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상당히 많겠지만 편의상 이 서술에서 이상해보이는 지점은 크게 세 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 첫째, 왜 하필 동물도 사람도 아닌 '지렁이'인가? 둘째, 지렁이를 왜 살려주는가? 셋째, 여성인데 지렁이를 무서워하지 않는가? 위 질문에 답변하기에 앞서 지금껏 어디서도 공개한 적 없는, 나의 아주 특이한 취미인 '지렁이 살려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렁이 살려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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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이하고 특별한 취미가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각종 곤충들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 매미도 (잡을 수만 있다면) 손으로 곧잘 잡았고, 엄마를 졸라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집에서 두세 마리 키워본 적도 있었다. 여름이 되면 잠자리채와 채집통을 메고 아파트 단지를 따라 정글처럼 늘어선 나무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랬던 어린 나에게 어느 날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이 지렁이들은 왜 다들 비만 오면 기어나와서 제 명을 재촉하는 것인가?" 애석하게도 어린 나는 다른 생명체의 지능 상태를 이해해보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터져 죽은 지렁이 사체들을 보면 그저 짜증이 났다. 통각 세포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생명체 주제에, 밟히면 누가 봐도 '아파하는' 모양새로 몸을 비트는 게 보기 싫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작정 나무 막대기를 찾아다가 그것들을 들어서 화단에 옮겨 놓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지렁이 살려주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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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 위치한 중학교와 시골의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 이후로 나는 더욱 벌레에 대한 공포심을 잃어갔다. 중학교 교실에서는 청소 시간에 도마뱀이 종종 발견되었고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치킨과 떡볶이와 라면을 먹어 대는 통에 지네 안 들 날이 없었다. 여고생 기숙사라면 방마다 꼭 하나씩 있다는 '인간 세스코'가 바로 나였다.

 

하지만 나는 연간 몇십 마리의 곤충을 죽이면서도 비 오는 하교길에 지렁이를 두세 마리씩 구해 주는 이 요상한 취미를 그만두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지나쳐 가야지, 하고 생각해보아도 이내 다시 몸을 돌려 그것들을 집어서 옮길 만한 나뭇가지를 찾아보곤 했다. 지금도 간혹 대학교 기숙사에서 시내로 내려가는 길에 지렁이들이 널브러져 있으면 그것들을 화단에 던져 놓고 갈 때가 있다.

 

 

 

'강강약약(强强弱弱)'과 '중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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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기이한 취미를 가지고 필자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다. '지렁이 살려주는 여자'에는 내가 가진 고유한 속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서론에서 제시되었던 의문들에 차근차근 답변을 해 보겠다.

 

 

1. 왜 하필 '지렁이'인가?

2. 지렁이를 왜 살려주는가?

3. 여성인데 지렁이를 무서워하지 않는가?

 

 

첫째, 나는 약한 존재들에게 약하기 때문이다. 빗속의 지렁이는 나를 공격하지 않으며 대개 무방비한 상태로 발길질에 노출되어 있는 '약한' 존재들이다. 나는 이러한 약한 존재들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나는 어린 후배들, 콜센터 상담사, 청소부 등 조직 내에서 서열이 낮다고 생각되는 존재들에게 최대한 상냥하게 대한다. 예컨대 내가 상담사와 통화를 할 때 쓰는 목소리는 평소의 중저음이 아니라 매우 상냥한 하이톤이다. 통화를 들은 지인들이 우스갯소리로 '다른 사람이냐'고 물을 정도다. 동시에 나는 나와 비슷하거나 서열이 더 높은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굴지 않아서 애를 먹을 때가 많다. 특히 능력이 없는데 인정 욕구만 가득한 윗사람들에게 나는 상당히 모질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강강약약(强强弱弱) 유형의 인간이다.

 

둘째, 나는 꿈꾸는 머저리들에게 약하기 때문이다. 커가면서 나는 지렁이들이 왜 비만 오면 도로로 기어 나오려고 기를 쓰는지를 학교에서 배웠다. 그것들은 비가 오면 땅 속의 공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도로로 나온다고 했다. 어찌 보면 지렁이들도 꿈꾸는 인간처럼 '이곳보다 더 나은 세상'을 찾기 위해 땅 밖으로 몰려나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꿈꾸는 존재들은 대부분 비현실적이며 머저리 같다는 속성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존재들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한다. 예컨대 내 주변에 있는 동료들은 대부분 낭만주의자이며 실없는 소리에도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니 나는 '멸종위기에 놓인 낭만주의자들을 수호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 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셋째, 나는 일반적 카테고리로 범주화될 수 없는 짬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이유도 사실은 '나'라는 존재가 특정한 단어로 잘 설명되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당히 '전형적이지 않은' 존재다. 세간에서 통용되는 '전형성'을 들고 오면 나는 항상 해당사항이 없다. 예컨대 나의 생김새는 남성성과 여성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성에 가깝고, 전공 역시 순수학문과 실용학문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 또한 적당히 현실주의적인 듯하면서도 종종 낭만주의자들의 편에 선다. 자연히 '여성=벌레를 무서워함'이라는 세간의 전형적인 규정은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다.

 

**

 

현 시점에서 생각하건대 이제 '지렁이 살려주기'는 나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지렁이들을 살려주면서 나의 수많은 업보들에 대한 면책을 기대하고, 이들을 살려줌으로써 나의 내일에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이 의식은 아마도 전국에서 나만이 행할 수 있는 의식일 것이며, 나만의 특성이 담겨 있는 의식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내가 언제까지 지렁이들을 살려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의 나는 '지렁이 살려 주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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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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