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침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사람]

글 입력 2021.11.03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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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중 3일 하루 4시간, 조그만 카페에서 일을 시작한 지 오늘로 10개월이 되었다.

 

처음 시작했을 무렵인 1월, 소소한 용돈벌이로 단순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케이크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카페이기 때문에, 주로 하는 일은 케이크를 데코하고, 구움 과자를 세팅하고 그릇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특히 사장님과 단둘이 일하기 때문에 실수를 할 일도, 책임을 질 일도 적었다.

 

다만 무엇을 떨어뜨리거나 실수를 할 땐 눈치를 볼 때도 간혹 있었다. 10개월이 되어가는 현재, 가끔 내가 알지 못한 순간에 익숙해진 행동이나 재빠른 손놀림으로 놀랄 때가 많다. 예를 들자면, 특정한 제품이 소진되었을 때, 다른 제품의 특징을 재빨리 설명하면서 추천하는 것처럼 응대할 때의 현명한 대처들이다.

 

이전에 일했던 곳들과는 달리 사장님과 단둘이 일하는 것, 평소에 좋아하는 휘낭시에나 스콘, 마들렌을 판다는 것, 아담하고 그림 같은 분위기를 지닌 매장은 내가 일하기에 딱 알맞았다.

 

아무리 일이라지만 이렇게 행복하게 일한 곳은 없었다. 그리고 점점 내가 익숙해짐에 따라 작업 범위가 점점 늘어났지만 거의 쉬운 계량이나 핸들링이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작업에 신이 나기도 했다.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특이하게 바쁜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 받은 월급의 가치가 매겨진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쉬운 일, 소위 꿀 알바라는 것을 선호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일을 하려고 가게에 있는데, 할 일이 없다면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성격 자체가 빠릿빠릿한 것을 좋아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만 해당할지도 모르는데, 조그만 카페라 손님이 오거나 수많은 계량을 할 상황이 닥치면 오히려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당장 할 일이 없어도 사장님에게 곧바로 물어보는 편이다.

 

하루 4시간만 일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할 일이 꽤 많다. 아침 10시에 가게에 도착하면 분리수거를 하거나 매장을 청소한다. 그리고 바로 11시에 오픈할 쇼케이스를 위해 케이크와 구움 과자들을 준비한다. 내가 좋아하는 과정이다.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 수제 제과들을 정리하는 것이 매우 뿌듯하다.

 

이후엔 그릇들을 정리하고 사장님이 케이크를 제작하는 것을 돕거나 손님 응대를 한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 어느 순간 4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날마다 제작하는 케이크가 다르고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계량 법도 익혀야 하는데, 반복적인 일이어서 그런지 지금은 보지 않고도 빠르게 계량한다.

 

여유로운 날들도 있었다. 특별한 행사들이 몰려있지 않은 경우와 휴가로 인해 가게를 찾는 손님이 적어든 경우이다. 이번 여름엔 특히 여유로워 색다른 메뉴 개발을 하는데 도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피칸 파이다.

 

일을 하는 데 특권이라 함은 가게의 메뉴를 먹어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것이 수제이기 때문에 갓 구운 과자들을 먹어보는 행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갓 구운 과자들을 먹어보면서 의견도 나누고 조그만 수다를 떠는 것은 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10개월간 일하면서 깨달은 점이 많다. 겁부터 먹고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겪어봤는데, 결국 되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 할 수 없는 일은 없었다. 또한 쉬워 보이는 일일지라도 거기엔 수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결과물이었다.

 

가치가 없는 일과 시간은 없다. 우리의 일상은 사소해 보일지라도 각자의 가치가 돋보이는 삶의 일부분이다. 내일도 가게에서 구움 과자들을 정리하고 케이크를 데코하면서 이 글을 되새겨야겠다.

 

 

 

컬쳐리스트 황희정.jpg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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