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바라볼 때, 더 잘 보이는 것

'(좋은) 관객이란 무엇인가?'
글 입력 2021.10.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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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통해 본 관객의 의미는 하나의 단어, 한 문장으로 정의되는 것처럼 보인다. 말 그대로 연극, 영화, 운동 경기, 공연 등을 보거나 듣는 사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누구나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 우리가 단면적으로 떠올리는 관객의 모습에서 말이다.

 

'(좋은) 관객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떨까? 관객의 앞에 붙여진 '좋은', 이 괄호 안의 단어는 그 의미 자체로도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달라지며, 어느 가치를 더 중점에 두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도 문장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관객의 모습은 하나의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고 각각의 배경과 이유를 통해 수많은 경험의 데이터가 쌓여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점차 '역할 놀이'에서 배역을 부여받듯이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좋은 관객'을 떠올린다.

 

관객으로 참여했던 많은 역할극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애정 어린 시선을 넘어서 동경과 흠모라 불리는 이름도 곳곳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이내 사람에 관한 관심에서 비롯된 사랑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점에서 '좋은 관객'의 정의는 조금 더 사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필자가 기억하는 관객으로서의 경험은 부모님 손을 처음 잡고 봤던 어린이 뮤지컬과 친구와 둘이서 처음으로 떠난 버스 여행의 종착지인 민속촌의 공연,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직관하는 형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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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의 일상이 달라지면서 앞으로의 생활양식도 이전과는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 전반에서 사람 간의 일정한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등장한 '비대면'과 '비접촉'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문화생활을 즐기는 방법에도 비슷한 양상이 적용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이전보다 뚜렷해진 관객의 특징이다.


관객인 '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자, 변화를 가장 먼저 경험하는 사람이다.

 

예술가(Artist; 아티스트)와 창작자(Creator; 크리에이터) 그리고 관객의 경계, 그 거리가 점차 좁혀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예술가와 창작자의 어원적 표현을 확대해보면 좀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예술가와 새로운 것이나 작품을 만드는 사람, 창작하는 사람인 창작자.

 

특히, 창작자는 영역의 범위를 점차 넓히고 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등장한 온라인 플랫폼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가속한다. 공연장, 극장, 경기장, 미술관 등의 특정한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이 스크린에서 더 작은 핸드폰까지 넘어온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작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이어져 온 문화의 방향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빠른 변화의 속도는 우리에게 물리적 경계 또는 공간적 제약에 따른 결과로서 더 눈에 띈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는 다른 의미의 놀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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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시로 미술관이 아닌 집에서 관람하는 방구석 미술관이 개장되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따라 그리는 것을 넘어서 미술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이를 다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간다.

 

이에 따라서 공연, 영화, 미술 작품, 운동 경기 등의 관람은 새로운 문화의 형태를 이루어나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이토록 반가웠던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핸드폰 하나로, 전 세계의 공연장을 누비고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어느 분의 말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변화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 관객이야말로 또 다른 창작자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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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관객을 관찰자이자 그 대상으로 지칭했다면, 이번에는 프레임 밖의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좋은 관객의 전제 조건은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일하지 않은 관객은 없다. 관객은 조건이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예를 들면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보거나, 같은 음악을 들어도 그것을 즐기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이곳에서 '좋아하는' 장면이나 인물,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 가사 한 줄에 따라서 취향이 나눠지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와 비슷하게 똑같은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유일한 해석이 수없이 존재한다. 많은 이들이 관객으로서 한곳에만 머물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공연장에서 경청과 떼창의 경계를 아슬아슬 걸을 때도, 작품의 스포일러에 대한 반응이 극명하게 갈릴 때도, 전시회 관람 시 도슨트 선택을 고민할 때와 마찬가지로 입체적인 관객의 모습에 이끌리게 된다.

 

비슷한 눈높이인 관객의 측면에서 보아도 '좋은 관객'이니 말이다. 그렇게 예술가와 창작자, 관객들은 즉각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하였다.

 

 

마지막으로 위의 질문에 대한 두 개의 물음표를 띄어본다.

 

Q. 내가 닮고 싶은 '좋은 관객'의 모습은?

Q. 나는 '좋은 관객'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운가?

 

'좋은 관객'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표준화된 규격이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규칙적인 패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좋은 관객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교감'을 통해 '영감'을 이끌어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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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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