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사람의 '웨딩 플레이어'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 - 뮤지컬 '웨딩플레이어'

어찌되었든 그는 플레이어였다
글 입력 2021.10.2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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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플레이어 - 티저 스케치 4절 사이즈- 공유용.jpg

 

 

 

‘웨딩’이 아닌 ‘플레이어’에 방점을 찍다



‘웨딩플레이어’ 어쩐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임이 분명한데 생소하지는 않은 제목이었다. 은연 중에 나는 ‘웨딩’과 ‘플레이어’라는 두 단어 사이에 띄어 쓰기를 넣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정말 나도 모르게 ‘웨딩’이라는 단어에만 하이라이트를 친 듯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정말로 이 공연이 ‘결혼하는 이들의 축제 같은 이야기’일 것이라는 단순한 인상 만을 가지고 공연장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소소하지만 디테일이 묻어나는 무대 세팅은 나의 일차원적인 예상을 보란 듯이 무너뜨렸다. 무대의 한쪽을 온전히 차지한 채 그 무거운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는 피아노, 때묻은 누군가의 손길이 가득한 악보가 꽂힌 책장을 비롯하여 피아노의 건반을 연상케 하는 높낮이가 다른 울타리까지, 언뜻 보아도 그 공간의 주인은 ‘웨딩’보다는 ‘플레이어’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것이 주인공 ‘유지원’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첫 계기였던 것 같다.


극 중 유지원은 ‘결혼까지 생각했던 옛 연인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연주해야 하는 플레이어’라는 그야말로 기구한 운명을 마주하고 있다. 한 때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던 휘성의 ‘결혼까지 생각했어’ 곡이 절로 떠오르고 한 술 더 떠서는 파격적인 가사로 주목받았던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집’이라는 곡이 오버랩되기도 하는 상황이다. 결국 지원은 이 결혼식의 축가를 대신해줄 사람을 구하고 그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 놓으며 이 뮤지컬은 본격적인 포문을 연다.


처음에는 관객 뿐 아니라 유지원 자신 또한 ‘웨딩’, 즉 이 말도 안되는 옛 연인의 ‘결혼식’에 골몰한다. 그는 그 아무도 ‘웨딩 플레이어’에 관심이 가지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얌전히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만 하고 온다면 어쩌면 옛 연인도 자신을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는가하면 웨딩 플레이어는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이면 아무나 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결국 그도 자신이 ‘플레이어’라는 사실보다 그 앞에 붙은 ‘웨딩’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웨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큰 변곡점이자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일상이 하나 되는 순간의 첫 시작점인 ‘결혼’, 그것은 축하 받아 마땅하고 그렇기에 웨딩의 중점에는 신랑과 신부가 있다. 그럼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결혼식을 만들어 가는 데에는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어도 많은 이들의 노력이 존재하고 그들은 결코 결혼식의 부품 같은 것으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혼’은 신랑 신부 두사람의 것일 수 있어도 결혼식은 결국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지원의 연주에 있어서만큼은 얼마든지 지원 스스로가 주인공일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웨딩 플레이어’이고, 그의 연주는 그 자체로 결혼식에 참석한 많은 이들에게 행복감으로 충만한 감정을 증폭시켜주는 하나의 작품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지원이라는 플레이어의 무대가 웨딩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되었을 뿐이다.

 

 

 

때로는 등잔 밑이 가장 아늑한 법



피아노를 비롯한 음대 입시를 경험해 본적이 없더라도 지원의 진솔한 이야기에 관객 모두가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데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방황’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지원이 중요한 입시 콩쿨에서 자신의 앞 순서였던 소위 과탑이라 불릴 만큼의 실력을 가진 경쟁 지원자의 연주를 듣고 그 자리에서 도망쳐버린 이야기를 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그가 느꼈을 중압감과 그로 인해 도피를 해버리고 느꼈을 자괴감에 깊이 공감했던 것 같다.


사실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갑자기 상승해버린 성적, ‘전교 몇등’이라는 수식어는 내게 너무나 밝은 빛을 비추어 주었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감’이라는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개념이 이해가 안되면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종지에는 한 문제만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전의 성적을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 암울했던 시기에 내가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구심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등장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마음이 불안하고 도피하고 싶을 때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과목은 우선 과감히 덮어 버리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국어 과목에 비효율적으로 몰두했다. 그러다 보면 그 익숙함과 따듯함에 어느정도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는 것이다. 옛 연인과의 추억과 괴로운 상황들로 지친 지원이 피아노 아래로 기어 들어가 눕는 장면에서 나는 예전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지원의 마음의 고향은 피아노였다고 생각한다. 지원은 피아노로 인해 괴로웠지만 또 그만큼 피아노로 인해 행복했던 시절을 누구보다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플레이어일 수밖에 없고 그의 등잔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피아노뿐이다. 어쩌면 유지원 본인 보다 그 사실을 먼저 알고 있었던 아버지는 지원에게 ‘치자 꽃’을 선물하며 그게 어디가 되었든, ‘피아노를 일단 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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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실험적인, ‘대학로다운’ 공연



사실 <웨딩플레이어> 공연의 첫 인상은 상당히 ‘고전적’이라고 느껴졌다. ‘웨딩’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피아노가 크게 박혀 있는 포스터 디자인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내 멋대로 이 극의 주인공을 ‘타인의 결혼식에서 진심으로 즐겁게 축하 연주를 하는 이타적인’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직접 마주한 지원은 상당히 복합적인 사람이었고, 그가 들려주는 그의 삶은 상당히 몰입감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뮤지컬이 ‘젠더 프리’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주인공 지원 뿐만 아니라 그의 옛 연인이자 결혼식의 주인공 ‘봉섭’또한 상당히 중성적인 이름을 지니고 있다. 젠더 프리 공연이기 때문에 오히려 등장인물 그 사람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함이 있었다. ‘봉섭’이라는 인물을 생각할 때 그의 외적인 부분을 떠올려 보기 보다는 지원의 감정이 담긴 진술에 따라 어떠한 심성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일지 상상하게 되었다.


게다가 1인극, 즉 ‘유지원’이라는 주인공 한 명이 사실상 실질적으로 이 뮤지컬의 유일한 실존 등장인물 임에도 불구하고 극이 전혀 비어 보이지 않았던 데에는 신박한 관객 참여가 숨어 있었다. 극 중 지원이 말을 거는 대상, 그러니까 결혼식 연주 대타를 해주게 될 인물과 지원은 가상의 테블릿패드를 통해 화상 통화를 하게 되는데 이 패드는 실존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객석 자체가 테블릿 패드이기 때문이다.


객석에 앉아 지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관객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그의 대화 상대였다. 지원은 때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농담을 하기도 하며 관객과 대화 아닌 대화를 이어 나간다. 지원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더라도 관객은 이러한 형식을 통해 은연 중에 지원이라는 인물에게 더욱 깊이 공감하고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별로 복잡하지도 않은 이 신박한 트릭에는 그런 힘이 숨어 있었다.


1인극의 한계를 채워주는 요소는 관객 뿐만이 아니다. 나머지 요소는 바로 ‘오케스트라’이다. 오케스트라, 특히 그 중에서도 피아노를 연주하시던 분은 극중 주인공 지원과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다. 지원이 앞부분을 치고 대사를 이어가는 동안 뒷부분을 받아 자연스럽게 친다던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명곡을 연주하여 청각적인 실체를 만들어 낸다든지, 오케스트라는 그야말로 일당백 역할을 하며 무대 뿐만 아니라 객석 내 빈공간까지 꽉 채우며 소극장의 묘미인 상상력을 자극했다.


지원이 악보를 가지고 나와 오케스트라에게 건내며 ‘잘부탁 드린다’고 했던 첫 대사가 이해 가는 순간이었다. 이 극은 1인극이지만 어떻게 보면 1인극이 아니다. 주인공 지원과 그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오케스트라, 그에 융화되어 지원과 소통하게 되는 관객까지, 이러한 그야말로 ‘대학로다운’ 시도들이 있었기에 90분이라는 시간 동안 관객들은 유지원이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흥미진진하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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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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