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구멍이 나고 코가 삐뚤어져도 귀여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10.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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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도 애착 인형이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애착 인형은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남모르는 비밀도 모두 터놓을 수 있는 친구 사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란다. 키도 훌쩍 자라게 되고, 인형과의 놀이 보다는 학교 친구와의 놀이 시간이나 공부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둘도 없는 인형 친구들과는 영영 작별을 고하게 되거나, 예전과 같은 사이는 아니지만 방 한편에 남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친밀함과 익숙함으로 무장한 어린 날 친구의 '애착 인형' 자리를 꿰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형과 키를 견주던 어린이는 어느덧 자라나 어른이 되었다. 수많은 어른들 중에서는 소중한 추억이 깃든 인형을 '애착 인형'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여전히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애착 인형을 애착 인형이라 지칭하게 되는 순간도 모호하다. 그저 하나의 인형이었을 뿐인데, 매일 함께했던 시간들이 쌓여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습관처럼 삶에 새겨진 듯하다.

 

 

 

가장 소중한 친구, 애착 인형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에게도 20살을 훌쩍 넘긴 애착 인형이 있다.

 

19개월 차이가 나는 동생이 태어나면서 부모님이 사주신 강아지 인형이었다. 세 살배기였던 나의 키와 덩치보다도 훨씬 커서 질질 끌고 다녔다고 한다. 나의 친구 강아지 인형과 함께라면 캄캄한 밤도, 엄마 없이 잠이 드는 날도, 악몽을 꾸는 일도 무섭지 않았다. 언제든 내 편이 되어주는 하나뿐인 친구처럼 든든했다.

 

이 강아지 인형과의 아주 오랜 우정에도 불구하고, 문득 이 인형에 대한 나의 애정이나 의존 정도가 걱정되었던 시기도 있었다. 며칠 떠나는 여행 같은 날들에는 인형과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기숙사나 자취방으로 생활공간을 옮길 때면 꼭 데려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강아지 인형이 없이 잠드는 날이면 참 허전하고는 했는데, 거의 일평생을 함께 잠들었으니 없으면 이상할 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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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지식인

 

 

여기저기 다 해어지고 처음의 윤기를 잃은 털과 찌그러지고 납작해진 나의 강아지 인형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왜곡되고 비뚤어진 애정은 아닐까 싶어 노파심이 들었다. 인터넷에는 나와 같은 고민들이 많았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애착 인형을 가지고 있는 성인들이 많았고, 인형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마음을 사이에 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심스럽고 걱정이 어려있는 그런 질문에는 사랑스러운 답변들이 달려있고는 한다. 자신의 애착 인형을 사진과 함께 소개해주며 자신 또한 그렇다고 말해주는 사람, 단호하고 따뜻한 말로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인형은 닳고 해어지니까



시간이 흐르며 닳고 해어지는 인형들과 어떻게 하면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소중한 애착 인형을 고쳐주는 병원이 있다. 인형 병원에 대해서는 tvN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을 통해서도 한 차례 소개된 적이 있다.

 

헝겊 피부가 다 해어지고 구멍이 난 인형, 단추 눈과 코가 닳고 닳아 흠집으로 가득한 인형, 사방으로 찌그러져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의 인형, 풍성했던 털이 모두 빠져버린 인형 등 주인의 넘치는 애정과 함께 빠르게 변하는 세월을 인형들은 가지각색의 결과로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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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헝겊 피부에 문제가 있는 인형들은 피부과로, 한껏 뭉친 솜으로 척추 교정이 필요한 인형은 정형외과로, 닳아버린 탓에 눈동자의 빛을 잃은 인형은 안과로 안내받게 된다. 인형병원에서의 치료가 끝나고 나면, 적게는 수년에서 수십 년은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다시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인들은 인형과 함께할 앞날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게 되는 동시에, 지나가 버린 세월들을 다시 선물 받을 수 있다.

 

마음속 깊은 곳의 동심을 지켜주고, 아직까지 작별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위로한다. 애착 인형의 존재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식인의 어른들을 통해서, 인형 병원의 의사 선생님들을 통해서도 애착 인형에게서 얻을 수 있는 내면의 위로와 치유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가 있었다.

 

*

 

세상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인형들이 있고 그사이의 관계가 있다. 새로운 인형을 구매하는 것이 경제성이나 효율성의 측면에서도 훨씬 좋은 방법이겠지만, 인형 병원을 찾게 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돈을 더 주고서라도 자신의 발품을 팔아서라도 인형과의 추억과 시간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저마다의 각별하고 애틋한 사연을 듣고 있자면 마음이 뭉클해지고, 나의 애착 강아지 인형이 떠오르기도 한다. 애착 인형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다른 이들의 애착 인형 역시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애착 인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이 글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지식인에 질문을 올렸던 많은 어른들처럼, 그리고 나처럼 애착 인형에 대한 고민을 한순간이라도 떠올렸던 경험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내가 보고 듣고 위로받은 이야기를 오롯이 전해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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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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