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외면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공포 -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글 입력 2021.10.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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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한다/좋아한다로만 나누자면 나는 공포소설을 좋아한다. 왜일까 생각해봤다. 일단 공포소설은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 현실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공포를 '체험'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악마가 등장하는 공포소설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물론 마냥 '체험'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공포물도 매력적이다. 어딘가 불안정한 존재가 등장해 찝찝하게 끝나는 공포물의 결말이 실제 우리 삶을 닮았기 때문이다. 공포물에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등장하는데, 평범한(또는 평범하다고 믿는)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 깊고 어두운 구석에도 그런 속성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공포소설을 다 읽은 다음에 발견하곤 한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내 기준으로 후자에 속하는 공포물이다. 저자인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2021년 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21세기 에드거 엘런 포, 셜리 잭슨, 보르헤스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낯선 지명이 등장하는 낯선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나라도 문화도 다른 먼 곳에서 온 12편의 소설이지만 각각의 소설은 끝난 다음에도 독자를 쉽게 놓아주지 않고 찝찝한 뒷맛을 남긴다.


공포소설에서는 독자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 먼저 등장하고, 이어서 그를 공포로 몰아넣는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는 게 보편적이다. 하지만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에서는 공포의 원인이 되는 초현실적인 존재 자체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주인공을 '통해' 공포를 '체험'하기를 원하기에 이러한 전개는 당혹스럽다. 이를테면 '호숫가의 성모상'에서는 질투와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소녀가 자신이 흠모한 남성과 그의 연인을 해하고, '카르네'와 '심장이여 어디에 있는가'에는 특이한 신체 페티시에 사로잡힌 여성이 벌이는 엽기 행각이 등장한다.  '땅에서 파낸 앙헬리타'에서 겉보기에는 썩어가는 시체와 다름 없는 앙헬리타를 데리고 다니는 이도 '나'이며, '돌아온 아이들'의 메치는 사라졌던 소녀 바다니스를 발견함으로써 그들이 사는 세계에 균열을 가져온 수상한 여자로 기피 인물이 된다.

 

12편의 중·단편 소설에 각양각색의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도 눈에 띈다. 초현실적인 현상이 주가 되는 공포소설에서 여성은 공포를 경험하는 주체이기보다는 화자에게 공포를 주는 대상으로 더 자주 묘사되는데, 이 소설집은 그 구도를 뒤집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상하고 불길한 여자들이 자연스럽게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다.

 

'우물'에는 모계로 전해지는 저주가 이야기의 주된 소재가 된다. '호숫가의 성모상', '심장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카르네' 속 이상한 여자들의 존재는 지금껏 사회에서 금기시되어왔던 젊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사회적 규범의 경계선에 선 여성들의 모습은 지금껏 익숙하게 그려져 왔던 여성성을 배신하며 충격을 안긴다. '우물'과 '쇼핑카트'의 경우 선하고 지혜로운 어머니의 이미지를 박살 내며 마지막까지 기댈 수 있는 것이라 믿어졌던 모성마저 무너뜨린다. 기존의 미디어에서 그려지던 여성의 모습을 비틀자 장르가 공포로 바뀌는 것은 꽤 재미있는 지점이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의 공포는 이처럼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여성의 모습을 배반함으로써 성립한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이상하고 불길한 여자들에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자아내는 또 다른 공포는 지극히 현실적인 폭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역사적,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들은 이 책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사라진 아이들'에서 실종되어 죽은 줄 알았다가 멀쩡하게 돌아와 온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은 이들은 가난이나 가정폭력으로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던 아이들이었다. '슬픔에 젖은 람블라 거리' 역시 겉보기에 점점 발전하는 도시 속에서 그 발전이 허락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도시가 밀어낸 이들은 유령처럼 배회하며 머무는 자리마다 악취를 남긴다. 마지막 작품인 '죽은 자들과 이야기하던 때'는 어린 시절 알 수 없는 이유로 주변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소녀들이 영혼을 불러내는 게임을 한다는 내용으로,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이 휘두른 폭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희생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거는 비슷한 역사가 있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실종자들도 함께 떠올리게 한다.

 

 
"내가 어둡고 음울한 소설을 쓰는 이유는 괴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읽는 사람으로서도 공감하는 말이다.  세상은 비논리적인 폭력으로 가득 차 있고, 삶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 너머에 있다.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공포소설은 우리가 현실의 어두운 부분을 직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공포소설은 기묘하게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이따금씩 목격하는 불길한 틈새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이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을 비롯한 공포소설의 힘은 여기에 있다.


12편의 소설 중 '돌아온 아이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의 실종은 누군가에겐 특종거리였고 누군가에겐 골칫거리가 제 발로 사라진 것이었다. 그 밖에 실종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많은 이들에게도 아이들은 나타나는 것보다 사라지는 게 자연스러웠다. 분명 죽은 줄만 알았는데, 실종 당시의 모습 그대로 멀쩡하게 돌아온 아이들이 두려운 까닭은 그들이 우리가 외면하고픈 문제까지 고스란히 다시 돌려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내 돌아온 아이들을 혐오하고 없는 것 취급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현실에서 무엇을 외면하려 할까. 외면한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책을 덮고 나면 무언가가 시야에 걸린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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