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10.2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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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 왜 글을 썼지?’


며칠 동안 우울한 내 기분에 빠져있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도 한몫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친한 친구와 몇 주 전에 만났다. 나와 비슷한 템포로 살아가는, 언제 만나도 편한 나에겐 소중한 친구다. 그 친구는 11월 초가 생일인데, 자신의 생일이 오는 게 별로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또 일 년이 지나가는 느낌이라서 영 반갑지 않다고 했다.


그 친구처럼 이제는 나에게도 연말은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가는 마침표처럼 느껴진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은 좋으나, 세찬 바람을 따라 시간도 빠르게 지나가는 듯하다. 벌써 조금 있으면 11월이다. 언제 10월이 지난 걸까.


연말에만 그런 건 아니다. 요즘은 한 달의 마지막 주에 접어드는 일이 영 싫다. 단지 이유는 이번 달도 그냥 흐른듯싶기 때문에. 뭘 하든, 뭘 하지 않든 이번 달의 시간이 나에게는 무의미하게 지나간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다가오는 첫 달의 시작도 반갑지 않다. 또 그런 시간을 보낼까 봐, 그리고 그럴 테니까.


앞으로 두 달이 남은 2021년의 마지막 지점에서 글을 써 볼까 한다. 아무 이유 없는 우울함에 빠져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을 파헤치기에는 정말 내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갈 테니. 그리고 나는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나를 싫어했더라도 적어도 나만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다짐했으니까.


이번 연도 나는 무용한 것을 사랑하기로 했었다. 글과 미술. 고전 문학이나 에세이. 갑작스럽게 시작한 글쓰기로부터 시작해서 교보문고의 플래티넘 회원이 될 정도로 책을 사랑하기까지. 문화를 향유하기도 했으나, 손꼽아 책을 사랑한 한 해.


2021년을 기억한다면, 책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마음을 다해 책의 주인공들과 만났던 이번 연도. 신형철 문학평론가와 최진영 작가, 한강 작가의 책은 특히 손꼽아 좋아하며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배울 수 있었던 해.


무용한 것을 아끼며 나는 나이기로, 다른 모습이길 바란다면 타인의 모습을 연기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결국은 나는 나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첫 시작은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시작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책으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 책이다.


“앞으로 꽤 많은 것들이 여러분 뜻대로 안 될 겁니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렇겠죠. 아무리 조심을 해도 분명히 상처를 주거나 받게 될 거예요. 그 난관을, 여러분은 지극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할 것이고, 마침내 돌파할 거예요. 인간이니까.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니까. 그리고 훗날 회한과 함께 돌아볼 때가 올 텐데, 바로 그때, 뭔가를 배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 달라질 거예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영화나 여러 문학에 대해 평론한 글이 수록된 책이다. 적확하면서 아름다운 표현 역시 기억에 남지만, 가장 좋았던 글의 내용,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오가 깨진 책의 한 구절이었다. 돌이켜 보니 난 기분에 휩싸여 내가 우선인 적이 많았다. 보통의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나아지기로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 역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그래서 배우는 것. 그러니 내가 하는 일은, 우리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기로 결심하는 것. 그래서 문학을 접하고 있다.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말이다. 이들이 다른 이의 이야기를 실 듯, 나도 나중에 다른 이의 이야기를 써내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찌 보면 왜 이 소용없는 것을 이루려 하는가. 엄청나게 발전한 이 사회에서 내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다. 다정함.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기에, 그리고 한 발짝 나아가는 세상을 꿈꾸기에, 나의 적은 노력이라도 일조하여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 과정의 첫 시작에 있는 나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하나의 책을 읽고, 또 다른 배움을 얻고, 몇 글자의 글을 작성한다.


고로 내가 글 쓰는 이유도 이것이다. 작은 허둥거림일지 모르더라도, 일단 실행해 보는 것. 나의 솔직한 감정이 실린 글과 마주할 때 비로소 나를 마주한다. 내가 작성하는 글은 나를 나로서 있게 해준다. 그래서 이 무용한 것이 좋다.


앞으로도 이 마음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많은 실패와 과오를 겪고, 배움을 통해 나아갈 것이다. 지금처럼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지금은 좋은 사람이 아니니,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에서부터 시작하여.


나의 한계는 현재의 나일 수밖에 없기에,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또 다른 착오와 이에서 한 발짝 나아갈 배움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자양분일 것이다. 내년의 같은 날, 또 다른 연도의 같은 날.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길 바라면서, 한 발 나아가려는 내 작은 발걸음으로서 오늘의 글을 마친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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