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 전공자의 고뇌, 공감 - 웨딩플레이어

글 입력 2021.10.2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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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플레이어 - 티저 스케치 4절 사이즈- 공유용.jpg


 

웨딩 플레이어. 결혼식 반주자 '유지원'은 어쩌다가 옛 연인의 결혼식 반주 요청이 왔다. 거절하려고 대타를 구하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피아노에 대한 열정들을 되짚어보며 이야기를 나간다. 꿈과 현실 속에서 줄타기를 하며 좌절을 겪고 희망을 보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1인 뮤지컬 모노드라마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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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인 뮤지컬'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정보도 모른 채로 공연을 봤다. 제일 궁금했던 점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혼자서 극을 진행하지? 오,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는구나~ 흥미롭게 봤다.

 

극에 있어 필수 요소는 갈등이다. 인물, 사건, 배경.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어떻게 갈등을 만들까 싶었는데, 관객을 대상으로 대화하듯이 + 혼잣말하듯이 +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갔다. 이야기 흐름대로 잘 흘러가서, 인물의 이야기에 같이 따라갈 수 있었다. 처음에 인사하면서 자기소개하고 근황을 얘기했다가, 사질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중간중간 과거 얘기를 꺼내기도 하고, 그 현장을 재연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좋았다.

 

특히 김지훈 배우 연기가 정말 좋았다. 정말 잘했다. 1인 뮤지컬인데 공백 없이 무대를 다 매웠다. 혼자서 연기하기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이지만, 혼자서 빈자리 하나 없이 다 채운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몸으로 연기도 잘하고, 보는 맛이 있었다. 심지어 1인 2역을 하는데도 위화감이 없어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예체능 전공자라면 너무나 내 얘기와 같았을 것이다. 나처럼. 주인공에게 이입이 굉장히 잘 됐다. 그냥 내 얘기였지. 평생을 함께 해온 예술 (악기), 어릴 때 마냥 좋아서 시작을 했고, 중간중간 두려움이 엄습해오기도 하고, 좌절도 하고, 도망쳤던 부끄러운 과거, 공포심과 같이 있는 엄청난 사랑, 열망, 꿈 그 자체, 그리고 현실에 부딪혀서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서 타협하면서 현재에 살기까지. 그 히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잘 녹여냈다. 그래서 흐름을 따라가기 쉬웠다. 지금도 본인만의 무대를 만들어나가는 중.


그래서 아쉬운 점도 있다. 전공자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선. 오히려 예술을 안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름 설득력 있게 풀어냈어도, '굳이 꼭 저렇게 목매달아야만 하는가?' 별로 와닿지 않았을 것 같다. 이입이 되지는 않고 그냥 ' 아 그랬군' 정도로 흘러갔을 것 같다. 차라리 완전히 드라마틱한 요소를 넣었으면 별개로 따로 떨어져서 콘텐츠로써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연인과 헤어지는 부분이다. 현실을 이상하게 비유한 느낌. 연인과 만나는 포인트는 '내 악보, 예술을 존중해 주는 부분'이고 헤어질 땐 '내 예술을 사실은 무시했다'라는 점인데.. 아마 연인을 냉정하고 차가운 예술 vs 나의 예술 고군분투기에 비유한 것 같긴 한데 조금 너무 터무니없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연인에게 공감이 되고 주인공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았다. 결혼은 정말 현실적인 부분이었으니까.

 

수입 없이, 계속 파고만 있는데, 돈도 없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둘 다 공감되고 납득되고 이입될 수 있게 설정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둘 다 옳지만, 사소한 면부터 계속해서 부딪히고 부딪히고 부딪히다가,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만 했던 상황으로. 아빠의 전축처럼 연인의 '소중한 무언가'가 나와서 대비되면 더 좋았을 것 같다. 2년 만났는데 그 가벼운 엑셀이 뭐야. '나는 상처받았어 흑흑'이 너무 자기중심적이어서 아쉬웠다. 첨예하게 계속 대립했으면 더 극적이고 슬프지 않았을까.


큰 중심 갈등이 만들어지는 장면은 좀 부자연스러웠으나, 잘 풀었다. 잘 풀렸다. 으엉 아빠.. 아빠의 소중한 물건 전축, 그리고 '너의 웃음' 하나로 이어온 피아니스트 아들 응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반주지만 그거라도 해보자고 하는 응원. 엄청 울컥했다. 나도 엄마 생각나기도 하고.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리고 지금 '웨딩 플레이어'로써 잘 지내는 모습도, 결말이 참 좋았다. 결혼식의 축가, 반주를 하는 피아니스트. 웨딩 플레이어. 행복을 주는 반주자. 또 하나의 무대.


어릴 때는 마냥 피아노가 좋았고, 아빠의 전축을 팔고 피아노가 오면서 집중하고, 첫 콩쿠르에서 두려워서 도망쳤다가, 어찌어찌 입학하고 열공했는데, 다치고 나서 휴식하면서 굳어가는 손이 무섭고 힘들었다가 연인을 만났고, 파온 후 졸업 연주를 못하고, 짜져 있다가, 결혼식 반주자로써 (또 다른) 무대로 컴백. 자기 이야기를 각색해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현실적이고 납득이 되는 스토리였다. 일대기를 간략하게 잘 줄여서 보여준 듯.

 

이입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서 아쉽긴 했었지만, 그러나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 보였다. 아마 예상컨대, 주위에 결혼식에 갔다가 반주자를 보고 '어, 이건데?' 좌르륵 스토리가 떠올라서 만든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긴 한다. 즐겁게, 재미있게, 감탄하면서 봤다.


"이건 제 선택이고, 오늘 결혼식은 저의 또 다른 무대잖아요."




웨딩플레이어 - 인물포스터 - 김지훈.jpg

 

웨딩플레이어 - 인물포스터 - 이시강.jpg

 

웨딩플레이어 - 인물포스터 - 정연.jpg

 

웨딩플레이어 - 인물포스터 - 최유하.jpg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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