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 다 똑같이 들린다면

글 입력 2021.10.2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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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힙합 별로 안 좋아해. 듣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아? 다 거기서 거기야."

힙합을 좋아하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칼같이 대답했다. 저급한 욕설은 기본이요, 돈과 여자 자랑이나 하는 가사를 듣고 있자니 귀를 더럽히는 느낌이 들어서 도무지 즐길 수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이런 소재로 곡을 쓰고 그것을 예술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래퍼들로 인해 힙합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당장 길거리에 나가서 돌아다니기만 해도 어디에서나 저급한 가사가 들려오니 힙합에 대한 피로감은 날로 더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엠넷(Mnet)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보게 되었다. 확실하게 느꼈던 것은 한국 힙합은 ‘정형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힙합 열풍이 불기 시작할 무렵 힙합이 가져왔던 신선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비슷비슷한 소재의 가사와 스타일, 진부한 캐릭터. 예상 밖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허무함 속에 TV를 끄며 생각했다. 아, 이것이 한국 힙합의 한계인가.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는 이르다. 여기, 바싹 메말라가는 한국 힙합 씬에 단비를 내릴 아티스트가 있으니. 한국 힙합이 다 똑같이 들린다면 앞으로 이들의 행보에 주목해 볼 것을 대담히 권유해 본다.
 
 

 

'코리안 팀버튼', 지올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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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올팍(Zior Park)은 마미손의 레이블 뷰티풀 노이즈(Beautiful Noise) 소속 아티스트이다. 그는 독특한 음색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통해 그만의 창의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며 '코리안 팀 버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롤모델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윌리웡카'이다. 그 이유는 ""윌리웡카'가 판타지를 파는 것처럼 본인 또한 누군가의 판타지를 만족시키거나 그 이상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지올팍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주로 힙합에 기반을 두면서도 매번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음악적 스타일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다. 그의 음악은 어느 한 장르적 틀에 갇히거나 정형화되지 않으며 동시에 지올팍 특유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리스너들로부터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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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올팍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힙합 씬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애초에 그의 음악적 목표는 칸예 웨스트나 퍼렐 윌리엄스처럼 본인만의 새로운 갈래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올팍의 음악을 들으면 한 편의 잔혹동화를 보는 것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 또한 지올팍이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국내 힙합 아티스트 중에 지올팍과 같은 분위기와 컨셉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지올팍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캐릭터와 뚜렷한 색으로 그만의 대체불가한 장르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괜히 '마미손 픽'이 아닌 만큼, 그가 곧 한국 힙합계에 신드롬을 불러 일으킬 이단아가 될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들은 사람은 없다'...출구 없는 매력, 릴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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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체리(Lil Cherry)는 소스카르텔(Sauce Cartel) 소속의 래퍼로, 친오빠인 골드부다(Gold Buuda)와 함께 활동하며 '힙합계의 악동뮤지션'으로 불리기도 한다.

 

릴체리의 음악적 스타일은 개성이 상당히 강해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실제로 뮤직비디오 영상에 달린 댓글만 보더라도 반응이 극과 극이다. '대체 뭘 본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결국엔 중독됐다'는 반응도 많다. 확실한 것은 릴체리는 흑인 힙합을 흉내 내지 않고 본인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음악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릴체리는 "남의 것을 차용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진짜 느낀 것"을 보여주고자 뉴웨이브 힙합을 시작하게 되었다. 비록 힙합은 흑인 사회에서 온 음악이지만 자신의 유년시절을 보낸 마이애미에서의 경험을 더욱 잘 녹여내기 위해 미국 남부 스타일의 힙합을 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음악에 보다 확실하게 동양적인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 쌀이나 소스와 같은 독특한 요소를 미국 힙합에서 흔히 언급되는 소재인 총기, 마약 등을 대신해 사용해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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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체리의 또다른 음악적 특징으로는 의도적으로 발음을 뭉개는 '멈블 랩' 스타일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도 멈블랩의 트렌드가 부상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국내에서는 멈블 랩을 보여주는 래퍼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체리는 개성 있는 멈블 랩을 통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만의 개성을 갖추고 인지도를 높여왔다.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동양인 래퍼에 대한 시선은 당연히 좋지 않을 것이다. 릴체리는 이러한 편견에 적극적으로 맞서고자 동양적인 이미지를 뮤직비디오에 사용하거나 천자문을 가사로 인용하는 등 동양인으로써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담아내고자 했다. 또한 릴체리의 많은 곡들은 공통적으로 '소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을 비유한 것으로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멋, 한국만의 '소스'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음악을 통해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국 힙합에 싫증을 느낀다면 '래퍼라서 하는 음악'이 아니라 '래퍼로서 보여주고 싶은 음악'을 하는 릴체리의 음악을 들어볼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정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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