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통속, 신파, 유치찬란 [드라마]

사랑에 냉소적인 젊은이들, 신파같은 사랑에 빠지다
글 입력 2021.10.2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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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세라세라>는 2007년 방영된 드라마로 현재로부터 무려 14년 전의 작품이다. 으레 멜로드라마가 그렇듯 <케세라세라> 또한 4명의 메인 남녀가 등장한다. 재벌 2세 혜린과 그녀의 오빠 준혁, 평범한 회사원 태주와 서울로 갓 올라온 은수. 이들의 출신성분이나 초기 설정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반복 재현되어온 캐릭터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그러한 전형성을 고수하는 한편, 인물 각자의 복잡한 욕망과 콤플렉스 묘사에 무게를 두며 기존과는 또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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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공사장에서 아버지를 잃은 준혁은 재벌 혜린의 집에서 길러진다. 그렇게 남매가 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뜨겁게 갈구하고 사랑한다. 혜린은 첫사랑 준혁을 얻기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음을 표현한다. 준혁은 그 사랑을 지키려 하다가, 양부모의 강력한 반대와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혜린을 끊어낸다. 혜린의 진심에 답하는 대신 양부모가 약속한 안락함 속에 숨어버린다. 혜린은 준혁의 비겁함에 상처를 입고, 이제는 사랑이 아닌 복수심으로 가득찬 원망의 눈빛을 보낸다.
 
이러한 비극적인 관계를 비집고 태주와 은수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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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는 혜린의 부모가 경영하는 백화점의 사원으로 평범한 신분이지만 상류층의 클럽에서 부유한 여자들과 데이트하길 즐기는 야망가이다. 그녀들과 어울려 놀 수는 있으나 결혼까지는 이룰 수 없는 그 선명한 격차 앞에서 태주는 언제나 쿨한 척, 냉정한 척한다. 버림받기 전에 먼저 떠나버리는 식의 자기방어가 익숙한 태주. 그 앞에 느닷없이 은수가 나타난다.
 
어느 날 태주의 집 앞에 잠들어있던 은수는 처음 만나고부터 당황스러울 정도로 태주에게 들이댄다. 뒤끝없고 가벼운 연애만 하던 태주는 은수의 적극적인 표현이 부담스러워 튕겨낸다. 그리고 혜린이 자신에게 접근해왔을 때에는 은수를 완전히 밀어낸다. 혜린이 몸담고 있는 화려한 부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힘을 쓴다.
 
 
태주 - "나도 싫어, 이렇게 사는거. 지지리 궁상으로 한푼 두푼에 벌벌 떨면서 아픈 네 동생 병수발하며 살고 싶지 않아. 직장 다니면서, 월급 쪼개가며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수야 있겠지. 근데, 그거 너무 앞이 안보이잖아."
 

 

은수 - "미안하고 자시고 할게 뭐있어. 당신과 하는 사랑이라는 게 딱 이 정돈걸. 그리구 내 인생이 앞이 안보이는 인생이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앞이 보이는 인생, 그래요 잘 살아봐요."

 

 
혜린은 준혁의 질투심을 자극하기 위해 태주와 연인행세를 하고, 은수는 태주에 대한 복수심으로 준혁의 호의를 이용한다. 네 사람은 그렇게 원치 않았던 관계를 계속하며 점점 서로를 파국으로 몰아간다.
 
은수는 태주의 배신 이후로 "사람 좋다고 하는 건 자존심 하나 없는 짓"이라는 태주의 셈법에 물들어가며 냉소적인 어른이 되어간다. 자존심을 챙기고 손해보기 싫어하며 당하면 반드시 되갚아주길 원한다. 준혁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여전히 태주를 생각하고 그리워하지만 자존심이 뭔지, 촌스러운 게 뭔지 깨달은 듯 전처럼 투명하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태주에게 받을 상처가 두려워 머뭇거린다. 태주 또한 앞뒤 보지 않고 사랑을 내지르던 은수를 별나다며 밀어내다가, 현실의 고단함을 깨달아버린 듯한 은수의 차가운 얼굴과 태도에 다시 미련을 느낀다. 그러나 누구하나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계급의 한계, 그러니까 부모없는 월급쟁이 신분의 남자와 돈없고 빽없는 소녀가장의 사랑 스토리가 빚어낼 뻔한 결말을 견딜 자신이 없다. 그렇기에 각자 '앞이 보이는 인생'을 찾아줄 혜린과 준혁에게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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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순간부터, 혜린은 태주에게, 준혁은 은수에게 진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반면 태주와 은수는 그들 곁에 남아있으면서도 한결같이 서로만을 그린다. 복수심과 자존심때문에 시작됐던 게임은 시간이 갈수록 처참한 밑바닥을 드러내고, 지겹도록 어긋나는 사각관계 끝에 네 명 모두 인연을 정리하게 된다. 결국 그 아무도, 원하는 사랑을 쟁취한 승자가 되지 못한다.
 
상류층의 혜린과 준혁이 각각 태주와 은수의 구원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케세라세라>는 기존 신데렐라 스토리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아무리 백마탄 왕자님이 다가와 인생을 변화시켜줄 것을 약속한다해도 은수는, 그리고 태주는,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지 못한다. 사랑에 실패한 그들은 그 속에서 스스로의 비뚤어진 욕망과 근본적인 콤플렉스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뼈저린 성숙을 얻는다.
 
본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 이후 네 명은 과거 자신이 빠져들었던 사랑에 대한 농담을 주고 받는다. 조금의 머쓱함과 많은 쓰라림이 뒤엉킨 채로.

 

어느 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태주는 문 앞에 잠들어있는 은수를 발견한다. 처음 마주한 때와 꼭 같은 모양으로, 둘은 그렇게 다시 만난다. 고양이처럼 웅크려있는 은수의 고요하고 순진한 얼굴. 슬픔이 가득 고인 눈을 하고도 해사하게 웃음 짓는 그 맑은 얼굴 앞에서 태주는 깨닫는다. 그 시절의 한은수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유여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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