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태양을 마주하다. [공연]

무대를 마주하고 태양을 마주하다.
글 입력 2021.10.2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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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마주하고, 태양을 마주하다.


 

무대에 발을 들였다.


무대에 발을 들였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배우일 것이다. 물론 나는 관객이라는 역할을 맡았기에 나에게 주어진 대사는 아닐테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무대에 발을 들였다고 말을 했다. 연극 '태양'을 보기 위해 찾은 두산 아트센터 111은, 무대의 범위를 명확히 구분짓고 있지 않았다. 눈높이에 위치한 공허의 공간은 배우들의 숨결은 물론, 그들이 어떤 조명 아래에서 눈빛을 반사하고 있는지 확인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연극을 보기 전, 이미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무대의 아우라는 기대감에 부푼 나의 마음을 진정시켜줌과 동시에 설렘을 불어넣어주었다.

  

태양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태양이라는 단어에서 또 다른 많은 단어들이 떠올라서일지도 모르겠다. 빛, 따뜻함, 낮과 그림자, 기분 나쁜 따사로움이나 흘러내리는 땀방울까지. 온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라 그런지, 한 사람이 떠올리는 태양의 가짓수도 무한대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태양을 바라보던 한 작가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꿈꾸며 이야기를 써내려 갔나보다. 그의 발견은 흥미로웠고, 그가 훑어본 태양의 감정은 꽤나 어둡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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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태양'은 동명의 일본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원인불명의 바이러스로 수많은 인간들이 사망했고, 감염자 중 바이러스에 항체가 생긴 이들은 우월한 능력을 가진 신인류로 재탄생되었다. '녹스'라고 불리는 그들은 자외선에 민감하여 밤에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밤의 인류가 되었고, 우월한 능력들을 바탕으로 사회 정치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작품의 스토리라인 자체가 새롭게 다가오진 않았다. 웹툰이나 영화에서 보던 전형적인 디스토피아물의 흐름이었고 워낙 이런 장르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지라, 작품성이 그저 그래도 장르에 대한 반가움만으로도 개인적인 만족도는 높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니깐, 장르에 대한 선호도 때문에라도 최소한의 만족감을 미리 충족시킨 상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극에서 이러한 sf물을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다. 지금껏 콘텐츠를 향유하는 나의 프레임이 영상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보다 아날로그적이고 순수한 예술에 가까운 연극이라는 포맷에 기대감이 커졌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감동이나 전율과는 다른 생소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혹은 영상을 향유하고 창조하는 일을 하면서 과거 영화보다 앞서, 시대를 풍미했던 연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몰지각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연극이 끝나자 내가 친구에게 내뱉은 말은, '이게 연극이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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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태양'엔 여러가지 매력이 있다. 첫 번째는 일관성 있는 미장센이다.

 

작품은 '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무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불 빛은 녹스와 인간들의 영역을 시각적인 구분지었고 스토리의 개연성을 담당하는 내용들이 모두 그 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녹스인 '후지타'와 인간 '데츠히코'의 관계가 가까워질 때마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선은 점점 존재감을 키워갔다. 하지만 만일 선의 존재가 녹스와 인간을 구분 짓는 경계선의 요소로만 활용되었다면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화려한 퍼포먼스는 관객들을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지만, 단지 그 뿐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품 후반부엔 데츠히코의 누나인 '유'가 유의 친모와 친모의 남자친구에게 설득을 당하며 녹스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세 사람은 모두 선 위에 위치한다. 유를 중심으로 다른 두 사람이 선의 끝에 위치해 있었다. 선의 존재는 단순히 영역의 구분이 아닌, 인물들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표현하는 그 자체의 상징이 된 것이다.

 

작품의 두 번째 매력은 매력적인 인물과 배우들의 연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칭찬할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카츠야 역할은 부담스러웠고 전체적인 개연성을 해치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길다 느껴진 공연 시간에서 카츠야의 분량을 완전히 뺐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소이치, 준코, 유를 중심으로한 인간 캐릭터들도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았다. 이들마저 없다면 전개가 되지 않으니 필수불가결한 존재들이겠구나 싶은 정도.

 

하지만 카네다를 중심으로한 녹스 캐릭터들은 모두 매력적이었다. 녹스라는 정체성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고, 녹스라는 설정을 연기하는 행위도 매력적이었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점은 유의 녹스 친모가 모성애가 아닌 이성적인 판단을 끝까지 유지했던 것, 그리고 녹스 의사이자 인간의 가치를 말해온 카네다가 결국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죽음을 마주한 것이다. 유의 친모 캐릭터는 전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보통 가족이라는 관계성을 띄게 되면 뻔할지라도 가족애를 강조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관객들에게 감동이라는 확실한 효과를 주기 때문인데, '태양'에서는 그들의 '선'으로 지켜온 영역의 논리를 지켜낸다. 디스토피아라는 참혹한 현실에서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담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한 작품을 향유하는 관객으로서는 만족스러운 인물들의 구성이었다.

 

카네다의 죽음은 연극의 절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태양을 마주해보고 싶다는 녹스의 일탈은 녹스에겐 무시당할 수 있을지언정, 인간의 시선으론 꽤 숭고해보였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미장센인 빛으로 이루어진 선의 영향력이 드디어 끝이난 것 을 의미한다. 그들의 영역을 구분지었던 그 선이 빛이 되어 다시 카네다를 비추었다. 그리고 그렇게 작품은 끝이난다. 사건의 조연이었던 카네다라는 인물이 얼마나 많은 내적인 고민을 다퉜을지 짐작하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마지막의 한 장면이 관객에게 주는 여운의 정도는 무척이나 짙었다. 영역의 구분을 의미하던 빛의 존재가 인물들의 가치관을 상징하기도, 신념의 결말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두 가지의 이유를 들며 태양이라는 연극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물론 조금씩 언급했던 것처럼 아쉬운 점도 분명히 남았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느끼기 힘든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영상이라는 콘텐츠를 향유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콘텐츠 안의 가상세계와 현실에 머무르는 나의 세계를 명확히 구분지을 수 밖에 없다. 물론 높은 공감 능력을 지녔다면 인물의 상황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지만, 내가 속해있는 공간이 방구석이냐, 영화관이냐에 따라 그 정도가 차이난다는 것부터 영상이라는 콘텐츠가 가진 공감능력의 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태양'은 연극이라는 포맷을 정말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과 같은 눈높이의 배우들, 적절한 음향과 화려한 조명까지. 슬로우 모션을 찍는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의 세계관에 참여하게 된다. 가상의 공간이 눈앞에서 자연스럽게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목격한다는 것은 예술을 향유하는 여러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연극을 보기 전엔 바이러스라는 키워드로 코로나 펜데믹과 유사점을 보일 것이라는 글을 본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아이로봇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된 sf 디스토피아가 연상되었다. 바이러스 이후 사회 시스템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 계급화가 진행되었다 보니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같은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다시 또 언급하자면 스토리 자체가 새롭진 않았다. 연상되는 작품들이 90년대, 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미래세계에 대한 절망적인 예측인 것도 있고 작품 자체가 계급사회를 흥미롭게 표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태양을 좋은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태양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작가가 창조한 세상을 담았고 우리들은 그 세계에 쉽게 발을 들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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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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