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1인 창작 뮤지컬, 웨딩 플레이어

지원아, 피아노 치자
글 입력 2021.10.2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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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플레이어 - 티저 스케치 4절 사이즈- 공유용.jpg

 

 

웨딩 플레이어! 그러니까 결혼식 반주자를 말하는데, 사실 듣기만 한다면 얼마나 낭만적인가? <웨딩 플레이어>는 아름다운 신부와 멋진 신랑이 하나가 되기를 약속하고, 모두가 축하하는 그 자리를 빛낼 수 있도록 건반을 연주하는 반주자 '유지원'의 이야기를 담은 1인 창작 뮤지컬이다.

 

특이하게도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유지원의 성별은 배우에 따라 바뀐다. 1인 극이기에 가능한 구조가 아닌가 싶고 4인 4색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진짜 난 괜찮은데.. 가기가 싫으네요. 왜 이럴까요?"

 

오늘도 누군가의 최고로 행복한 날을 반주하고 있는 지원. 내일 반주할 청첩장을 확인하곤 대타를 구하기 시작한다. 지원은 왜 팔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면서까지 가지 않으려는 걸까?

 

이 결혼식을 피하고 있는 자신의 비겁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원. 문제의 청첩장, 지원의 오래된 피아노, 그리고 팔에 얽힌 사연들 속에서 지원은 결혼식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찾게 되는데...

 

<웨딩 플레이어> 시놉시스


 

웨딩플레이어 - 인물포스터 - 김지훈.jpg

 
                   

사실 시놉시스만 보았을 때, 딱 봐도 전 애인의 결혼식이구먼! 하고 감이 왔지만, 1인 뮤지컬일 줄은 몰랐다. 공연 총 90분간 러닝 타임으로 배우 혼자서 극을 끌어가는데, 아마 '전 애인의 결혼식에 반주를 의뢰받은 웨딩 플레이어'라는 상황만 초점이 맞춰졌다면 살짝 아쉬울 뻔했다. 그렇다면 1인 뮤지컬로는 부족한 시나리오라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웨딩 플레이어>의 소재는 '전 애인의 결혼식'이 맞지만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원이 마주한 장애물들은 이 시대 청춘들이 모두 부딪치고 좌절하며 또 한 번쯤 무너졌을 법한 경험 같다.

 

 


단 한 번이라도 진심이었나?


 

상투적이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시가 있다. 모두들 알 것이다. 시인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나에게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고 물어본다. 천 번 만 번의 시도를 해보았나? 하다못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있나?

 

나의 기준이 평균적인지 모르겠다만,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평가를 해보았을 때, 항상 발을 빼놓을 준비를 하고 모든 걸 쏟아부은 것 같다, 그러니까 100%를 쏟았다 하여도 나에겐 남들이 모를 20%가 뒤에 숨어 있었고 상황에 최선을 다했지만, 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그래서였나 지원의 몸부림이 공감 갔다. 진심이니 모든 것을 걸었지만 겁이 나니 모든 것을 걸지 못한다는 아이러니한 문장에 숱하게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믿는다. 사랑하는 피아노가 겁이 나서 도망친 지난날들에 대한 모든 책임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남들이 나아갈 때 제자리를 맴도는 나 자신이, 시간이 흐른 만큼 이뤄놓은 것이 없어 초라한 내 위치를 뻔뻔하게 괜찮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자신이 못나 보일 때, 자신을 믿지 못하는 모든 감정들이 휩쓸려 몰려오는 시간 속에서 간신히 지원은 다시 피아노를 잡는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었던 것뿐인지 전 여자친구의 결혼식 반주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또한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쏟은 피아노가 알고 보니 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공공연하게 주변에 알리는 것이 무서워 가능성이 있는 상태로 안주하는 현실을 정당하게 만들어줄 변명일 수도 있다. 지원의 현실이 마치 한참 발전해야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굉장히 닮았다.


 


지원아, 피아노 치자


 

음대에 나와 피아노를 전공한 지원은 주중 레슨을 진행하고 주말에 웨딩 플레이어 아르바이트를 한다.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지원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 아버지가 제안한 결혼식 반주 부탁을 거절하다 마주 못해 수락한다.

 

쉽게 풀리지 않는 인생의 한 과정과도 같다. 현실적인 문제로 좌절당한 피아노와 결혼으로 움츠러든 지원은 더 이상 도전하지 않았고, 도전하지 않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긴다. 그런데도 놓지 못하는 피아노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게 된다. 그런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부모님의 사랑과 유명한 사람처럼 휘황찬란하지 않아도 잔잔하게 이어가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지원의 성장 과정이 지친 마음을 소복하게 안아준다.

 

성장에 욕구가 강했던 지원은 아무나 칠 수 있는 결혼식 반주가 자존심에 굉장한 스크래치였을 것이다. 하다못해 고향에서 올라온 아버지가 자취방에 선물한 '치자'라는 꽃은 지원에게 익숙하면서 진절머리 나는 명사이자 동사의 역할을 한다.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았던 아버지는 지원이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한다. '지원아 피아노 치자!' , 콩쿠르에서 손가락이 굳어버린 지원은 트라우마로 남은 그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갖가지 상상을 한다.

 

남의 여자를 사랑하다 철저히 독신으로 죽은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가 쓴 곡이 신부 행진곡 쓰이고,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사랑한 작곡가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이며, 배척당한 작곡가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도 유대인이다. 그리고 그 둘의 곡은 모두 결혼식에 쓰인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3막에 나오는 혼배 합창곡은 신부가 입장할 때, 그리고 예식을 마친 신랑 신부가 이동할 때는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의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다.

 

본래 결혼행진곡의 구성도 이 모양인데, 아무 곡이나 쳐서 결혼식이라도 망쳐볼까? 전 애인의 결혼식 반주를 피하기 위해 친구에게 없는 형편에 소고기까지 쏘기로 약속하며 대타를 구해보지만, 그것이 결국 또 도망치는 중이라는 걸 지원 스스로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굳이 진실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결혼식 반주 대타이자 관객인 우리들에게 감정을 솔직히 고백한다.

 

위기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성장을 젊은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통해 뮤지컬로 들려준다. 자신의 상처를 피하지 않고 직접 들여다본 지원의 다음 날은 어떨지 모르나, 그는 계속 피아노를 칠 것이고 웨딩 플레이어라는 직업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결혼식의 축복을 누구보다 앞에서 지켜볼 지원에게 '결혼식'의 에너지와 새 출발을 알리는 설렘은 지원에게 가장 필요하고 지원이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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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플레이어>는 1인 창작 뮤지컬로, '유지원'역에 총 네 명의 배우가 연기하며 젠더 프리 캐스팅임과 동시에 중성적인 극 중 이름 덕분에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배우 정연, 최유하, 이시강, 김지훈이 캐스탱됐고 현재 9월부터 공연 중이다. 올해 12월 26일까지 혜화역 2번 출구 근처 바탕골 소극장에서 4인 4색의 1인 창작 뮤지컬을 볼 수 있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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