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첫 창작오페라 '허황후',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

글 입력 2021.10.1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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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2021서울오페라페스티벌-최종.jpg

 

 

올해로 6회를 맞이하는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에 또 한번 다녀왔다. 지난 주에 관람한 <라보엠> 이후로 두 번째 관람하는 오페라이다. 이번 주에는 2000년 전, 가야사의 시작을 알리는 김수로 왕과 허왕후의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조명한 창작 오페라 <허왕후>의 무대를 보고 왔다.


철기와 각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가락국을 방문한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은 김수로의 자애롭고 열성적인 태도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이어 김수로는 활발한 해상 무역과 수준 높은 제철기술, 민주적인 통치를 바탕으로 찬란한 철기문화 국가를 탄생시킨 왕이 된다.

 


포스터-허왕후 최종.jpg

 

 

1세기 경 6개의 연맹국이었던 가야는 김해지역의 풍부한 철과 제철기술로 주변 국가에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바다와 내륙을 이용한 교역체계는 대외적으로 힘을 과시할 수 있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그런 가야를 김수로가 통일시키면서 독립적인 정치체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독특한 문화는 한때 고구려, 백제, 신라와 대등할 수준이었다. 그러나 50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야라는 국가를 떠올리면 제철기술이 굉장히 발달했었다는 내용 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오페라 <허황후>는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가야를 잊혀진 제국, 전설적인 내용으로만 뇌리에 남지 않도록, 가야의 균형잡힌 고대사를 정립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기에 박수쳐주고 싶은 부분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오페라는 가야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기에 내용은 이미 대충 짐작이 가는 내용이긴 했다. 그래서 더욱 무대 장치나 역사를 고증한 소품들에 대해 보다 집중해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의상, 소품, 배경의 삼위일체가 조화를 이루었고, 무엇보다도 제철 과정에 있어서 세밀한 묘사가 돋보였다. 유려한 곡선의 토기, 말을 잘 타고 부렸던 가야 사람들의 문화와 지혜가 돋보이는 말안장, 오동나무로 만든 가야금 등이 시선을 끌었다. 무대 요소 하나하나의 배치에서 아주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신경 쓴 티가 났는데, 그런 부분들로 인해 독특하고 예술적인 가야의 문화를 확실하게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일주일 전에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 <라보엠>을 감상하고 왔기에 한국말로 된 아리아가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조금은 있었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다. 분명 우리말로 된 노래를 듣는데 우리말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도 들어 무대 앞에 대사를 보여주는 화면으로 자꾸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허황혹의 아리아 '해맑은 웃음 뒤에 강인함이'와 김수로 아리아 '백성의 마음을 아는 왕이 되겠노라' 등 시적인 가사가 두드러지는 아리아를 들으며 모국어로 마주한 아리아는 생생함을 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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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통일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2시간의 짧은 시간 내에 요약하다보니 조금은 아쉬운 부분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무용수들로 인해 다시 극에 집중할 수 있었다. '최선희 가야무용단'의 무대였는데, 사뿐사뿐한 발걸음과 날개 짓 하는 듯한 자유로운 움직임은 잠시도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여러 명의 무용수들이 단체로 원을 그리고, 부채를 들고 우아하게 턴을 도는 모습들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끝나고 프로그램북을 통해 확인했는데 "가야의 춤을 세상 끝까지"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달해가고 있는 전문 무용단이라고 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장면들에 무용수들을 통해 몰입도를 유지하는 방식도 지혜로운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다수의 연주자들이 만들어낸 풍성한 화음은 출연진들의 연기와 조화를 이루었다. 오케스트라, 합창단, 무용수들과 출연진들 모두가 온전히 자기 일에 집중해서 만들어낸 작품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작스레 온몸에 전율이 이는 순간마저 있었다.


클래식과 성악가의 아리아가 주가 되는 오페라는 뮤지컬과는 분명히 다르다. 사실 나는 오페라는 요즘 같은 시대에 어렵게 느껴지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길게 이어지는 텍스트보다는 영상 매체가 주가 되는 시기이며, 순한 맛보다는 자극적이고 얼큰한 맛을 추구하는 시대, 짧고 강한 메시지를 원하는 시대에 극 전체가 노래로 진행되고 자주 접하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든 성악 발성으로 진행되는 오페라가 과연 매력적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주 연속 오페라를 감상하니 뮤지컬과는 또 다른 매력이 오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뮤지컬이 살얼음을 동동 떠다니는 두눈 번쩍 떠지게 할 정도로 차가운 식혜라면 오페라는 깊이 우려낸 숭늉 같다. 극 전체가 노래로 이어지는 부분은 음악에 분위기가 더해져 그 상황이 마음 깊숙이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고, 가열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으나 조용한 환경에서 메시지에 집중하여 넋을 놓고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창작 오페라나 어린이 교육용 오페라 등은 오페라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 나라의 역사와 고유의 정서를 담은 창작 오페라가 계속해서 제작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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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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