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름의 지속가능한 문학 - 0%를 향하여 [도서/문학]

글 입력 2021.10.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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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루빈과 뉴욕 언더그라운드」(2018) 상영 후, GV에서 외국 감독에게 김승옥을 소개한 학생. 데이비드 린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데이비드 린치 얼굴만 나오면 혼자 킥킥 웃던 사람. 아트나인 영화 상영 중에 들어와서 스크린에 자신의 실루엣을 투사시킨 관객들. 지아 장 커의 「24시티」(2008) 상영 때 극장에서 나와 함께 잠들었던 관객.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트리 오브 라이프」(20011) 상영 때 우주 탄생 시퀀스를 견디지 못하고 잠이 든 관객들. [……] 이와이 슌지 회고전에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 울던 분. 「기생충」이 끝나자마자 “봉준호 천재”를 외치던 학생. 무비 올나잇 보고, 아침에 존비가 되어 극장을 나오던 사람들. [……] 앉은키로 자막 다 가리던 분. 나 지금 영화 보는 중이야, 어, 이따가 거기서 만나, 아니 영화관이라니까,라고 영화 상영 중에 전화 통화 했던 분. 한날한시 같은 상영관에서 나와 함께 영화를 봤던 사람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사람들. 나와 한 공간에 있다가 두 번 다시 못 만나게 된 사람들. 또 만났지만 또 만나더라도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 몸짓들. 오직, 잔상으로만 기억될 얼굴들.

 

『0%를 향하여』(문학과지성사) p.344 中

 

 

오늘 소개할 소설은 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이다. 근래 나는 문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들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우리의 생활 속에 시와 소설이 계속 존재한다면, 또는 존재하려면, 문학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 걸까.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접근성이 너무나도 커져버린 오늘날, 스토리에 대한 대중적인 욕구에 있어서 소설은 기존의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오늘날의 영상예술, 영상문학 장르들은 현실의 상황과 감정들을 너무나도 잘 담고 있어 책을 펴고 싶은 마음을 앗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대중적 정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소설은 소설만이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이제 작가는 소설로만 구혈될 수 있는 특이한 문학적 형식을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제시한다. 서이제 작가는 2018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하여 제도권 문학의 소설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는 등단 이래로 실험적인 형식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문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문학과지성사의 계간 《소설 보다》 시리즈에 두 차례나 이 계절의 소설로 선정되었으며,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자로 호명되기도 하였다. 지난달에는 첫 소설집 『0%를 향하여』를 대중에 선보였기 때문에 이제는 서점에서도 서이제 작가의 작품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서이제 작가의 소설들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독특한 형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우리의 일상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들이다. 독특한 서사 구조와 실험적인 기법들은 영화를 전공한 작가 특유의 재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이러한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마치 세련된 편집의 독립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의 거칠고 투박한 화면 배치에서 느낄 수 있는 일상적인 감성이 있듯이, 서이제의 작품들은 특유의 장면 구분 기법을 통해서 예술적 아우라로부터 벗어난 일상적인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0%를 향하여」에서 이러한 서이제 소설의 특징들을 한껏 만나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 독립예술영화 관객 점유율은 1%대로 떨어져버렸지만, 독립영화계의 안팎 위치한 각각의 인물들은 각자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척박한 독립영화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삶과 그로부터 벗어나길 선택한 삶, 그리고 그곳으로 새로 진입하려는 삶들이 얽혀 있는 오묘한 관계들을 소설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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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소설에서 기술되고 있는 상당수의 이야기가 허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은 현실에서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서 자꾸 소개하면서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자꾸만 허물어 버리려 한다. 가령 다음 부분에서 이러한 특징이 드러난다.


 

3·1운동이 있던 해, 한국 최초의 상설 영화관 단성사에서 김도산의 「의리적 구토」(1919)가 상영되었다. 키노드라마 형식으로 된 이 영화는 한국 최초의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한국 영화 필름이 유실되었기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 중 이 영화를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재 이 영화는 문서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0%를 향하여』(문학과지성사) p.306 中

 

 

작가는 과거와 현재의 사실을 반복적으로 소설 속에서 소개하고, 그 바탕 위에서 등장인물들을 움직인다. 또 소설의 이야기가 더 깊어지려고 할 무렵에 다시 현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독자가 가상 세계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집중을 환기시킨다. 심지어는 이야기의 출처에 대한 각주를 달아, 소설 텍스트 주변에 현실적인 곁텍스트(paratext)를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충격적인 구성은, 가히 ‘소설의 미래’라고 불러도 좋을 가치 있는 소설적 기법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영어로 fiction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허구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인간은 세계의 단편적인 경험들을 연결해서 그것을 하나의 종합적인 이야기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을 선형적으로 연결해나가는 과정에는 맥락의 과장과 생략이 개입하며, 작가의 전략적인 개입을 통해 훌륭한 예술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선택적인 과장과 생략이야 말로 인간이 예술을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 작위성과 공작성의 토대 위에서 하나의 예술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이제 작가는 자신이 각 장면에 작위적으로 개입하기보다, 현실적 혹은 역사적 근거에 기대어 소설을 완성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예술적 아우라가 완성되기보다는 현실의 개입으로 예술적 찬란함이 사라지고, 소설은 지극한 현실의 영역으로 내려오게 된다. 서이제의 작품은 예술(art)와 작위성(artificial)의 영역으로 나아가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natural)의 영역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소설들은 다소간 현실을 왜곡시켜 예술적 색채를 획득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환상성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결국 오랜 시간 소설과 함께 살아가려면 소설 역시 현실의 영역에 함께 존재해야 할 것이다. 서이제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낯선 사실 언급들은 익숙한 현실의 모습을 우리에게 다시금 인식시켜주며, 주변의 존재들을 직시할 수 있는 환경에 독자들을 위치시킨다.


*

 

사실 이러한 기법 자체는 서이제의 소설에서만 나타나는 독창적인 방식은 아니다.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소설은 정지돈 작가이며, 한국문학에 있어서 사실은 인용하는 이러한 메타적인 문학 부류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명칭으로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현실의 인용을 도입하는 이러한 독특한 부류는, 넓게 보자면 박솔뫼 작가나 손보미 작가의 소설 작법까지도 포함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쓸 수 있을 것 같은(「수영하는 사람」 中)” 소설에 대한 박솔뫼 작가의 지향 역시 지속가능한 문학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앞으로도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정체성과 분류에 대한 연구는 필요할 것 같다.

 

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에서는 독립예술영화 관객 점유율이 1%대가 된 한국의 현실이 인용되고 있다. 예술계의 이러한 단면은 안타까운 것이지만, 그 안팎에 위치한 각각의 인물들은 나름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 점유율이 더 내려갈지도 모르지만, 매순간 서로에게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0%를 향하여’ 가더라도 그 삶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껏 극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몇 명쯤 될까. 나는 헤아려지지 않는 얼굴들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빛이 있고 어둠이 있다. 어둠이 있고 빛이 있다. 빛, 빛, 어둠, 빛과 그림자가 벽에 부딪힌다. 영화. 아무래도 영화 같은 건,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 독립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미래가 없고 [……] 미래가 없고 [……] 미래가 없다. 나는 언제까지, 이 생각을 언제까지 지속시킬 수 있을까. 지속시킬 수 있을까. 고개를 돌려보니, 할머니가 보인다. 빛. 어둠. 빛. 어둠. 연말이었고, 그렇게 밤이 지나고 있었다. 계속. 밤은 지나고 있었다.

 

『0%를 향하여』(문학과지성사) p.354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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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제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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