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이란 늘 불가항력적인 것 - 세븐 씬 [연극]

글 입력 2021.10.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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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씬〉, 이혼 이후 두 남녀의 30년을 일곱 장면으로 엮어낸다. 무수히 많은 인생의 순간 중에서 그 일곱 가지의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극의 구성에 있어서 그 일곱 장면의 선정은 결코 무의미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의 사건 나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관계에 유의미한 교류가 이루어진 순간들로만 구성된 것 또한 아니다.

 

그저 30년이라는 그들의 시간을 고르게 섞어 아주 공평하게 일곱 장면을 뽑아낸 것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들과 꽤 큰 전환점이 되었을 순간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그 일곱 개의 씬을 통해 필연적으로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함께 겪었던 '이혼'이라는 사건을 기점으로 갈림길에서 이별하듯, 평행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관계의 끝맺음이라고 여겨지는 사건 이후에도, 그들이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삶이 되어 흘러간다.

 

모든 건 다 망가진다고.

그건 당연한 건데,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한 거라고 했거든요.

 

 

 

누군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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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장소는 삼일로창고극장, 소규모의 블랙박스형 극장이다.

 

공연장으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객석과 무대의 단차를 최소한으로 줄여둔 것처럼 공간의 분리감이 거의 없었으며, 무대 주위를 둘러싼 형태의 일렬의 객석 배치는 마치 런웨이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무대 구성이었다.

 

객석으로 들어서 무대를 둘러보면, 곳곳에 기울어진 가구들과 구멍 난 바닥, 그 틈을 채우고 흩뿌려진 나무 조각과 같은 무대 소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르지 않은 바닥, 동떨어진 소품들, 무질서한 배치는 극의 내용과 분위기를 상징하는 현장의 프롤로그와도 같이 느껴진다.

 

이 시각적인 프롤로그에 집중하고 있다 보면, 곧이어 스피커에서는 무언가 뜯고, 긁고, 부서지는 듯한 마찰음과 파열음 같은 소리가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질적인 소리는 무대장치와 한데 어우러져 결핍과 불안함의 심상을 떠올리게 하며, 본격적인 극의 시작에 앞서 몰입을 고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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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른 후, 남자의 이삿날이다. 새집으로 옮겨진 가구들은 바닥과 맞지 않아 기울어지고 흔들린다. 이 불협화음은 가구의 문제인지, 바닥의 문제인지,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남자는 잠시의 짜증을 뒤로한 채 애써 수평을 맞추어내려 한다. 이사를 도와주던 일꾼은 아무리 비뚤고 기울어도 가구를 사용하는 집 주인이 바르게 사용하면 된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난다.

 

이윽고 여자가 등장한다. 쇼윈도 앞에 멍하게 서 있다. 가방 가게 점원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여자는 무언가 큰일을 겪고 오는 길이라 한다. 점원의 말에 의하면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매일같이 어떤 가방을 바라봐왔다고 한다. 점원은 증언에 그치지 않고, 계획에 없어도 가방을 사고 나면 좋은 곳으로 떠날 일이 분명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여자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이라도 하는 듯이 그 가방을 사기로 한다.

 

짧은 암전과 함께 남자와 여자는 처음으로 무대에서 마주하게 된다. 등장과 함께 아주 잠시 동안 맞물리는 듯했던 두 사람의 대화는 금세 예상을 빗겨난다. 그들은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다른 공간에 있는 것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남자의 시간과 여자의 시간은 더 이상 함께 흘러가지 않는다.

 

숫자 7은 완전한 수라고 여겨진다. 일곱 장면으로 구성된 남자와 여자의 인생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완전하고 완전하지 않은 인생의 기준은 무엇이며, 과연 누가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는 다만, 저마다의 완전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수평이 맞지 않는 가구가 고른 바닥을 만나면 흔들리고, 수평이 맞는 가구일지라도 고르지 않은 바닥을 만나면 흔들린다. 도리어 수평이 맞지 않는 가구와 고르지 않은 바닥이 만나 견고할 수도 있으며, 만약 흔들린다면 가구의 다리를 갈아 길이를 맞추거나, 무언가 틈에 끼워 넣어 수평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 고장이 안 나는 상태가 아니듯이, 고장이 나면 언제든 고쳐가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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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을 관람하며 눈에 띄는 연출 장치들이 있다. 이 장치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극의 경계를 흐리게 하여 몰입감을 높이기도 하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하는 관극 포인트이기도 하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주목하게 된다는 것은, 이 작품의 매력이다.

 

첫 번째, 관객의 시선. 관객들은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객석 덕분에 다양한 각도와 시선으로 극을 관람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인물의 정면을 보며 다른 누군가는 뒷모습을 보며, 때로는 여자의 시선 혹은 남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된다.

 

관객들은 그들의 삶을 수십 가지 다각도의 시선에서 지켜보게 되며, 각각의 시선에서 느껴지는바 또한 저마다 다를 것이다. 다른 자리에서 보는 장면들은 어떤 새로움이 느껴질지 궁금해서 재관람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극에 너무나 잘 어우러지는 연출이 작품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두 번째, 시간과 공간. 무대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차원에 존재한다. 평행하지만 다른 시간이 흐른다. 극의 초반에서, 처음으로 두 사람이 마주하는 장면이 끝날 때쯤 두 사람은 얼핏 서로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로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끝내 그 끝은 닿아있지 않다. 서로를 빗겨나간 시선은 인물 너머의 어딘가를 응시한다.

 

묘하게 엇갈리는 두 사람의 시간은 무대라는 3차원의 실제 배경, 그 이상의 입체감을 부여한다. 마치 평행세계를 보고 있는 듯 흘러가는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통해, 누구에게라도 특별하지 않을 법한 아무개의 이야기 같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

 

인물들이 겪어나가는 장면들은 하나하나 특별할 것 없이 일상적인 것들이라 실제 존재하는 그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본 것 같은 경험이기도 했다. 아울러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흐리는 무대와 객석의 배치를 통해 <세븐 씬>만의 장점이 두드러질 수 있었다. 다양한 각도에서 인물들을 지켜보고, 단지 관객일 뿐만 아니라 극 속 하나의 인물로서 소극적으로나마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삶은 불가항력적이다. 때로는 개인의 힘과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이 닥쳐오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세븐 씬〉은 그런 것들을 마주하는 데 있어 너무 앞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너울치는 파도에 밀려가더라도,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 된다고 말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상처가 나더라도 시간은 어떻게든 지나가고 다시 아물기 마련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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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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