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판소리와 오페라의 묘한 만남, '배비장전' -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

<배비장전> 관람기: <배비장전>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다
글 입력 2021.10.1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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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6회째를 맞이하는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은 10월 1일부터 9일까지 9일간 강동아트센터에서 열렸다.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 전막 공연은 물론 교육 프로그램과 갈라 콘서트, 국립오페라단과 협업 공연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오페라는 평소에도 접할 기회가 없어 꼭 경험해 보고 싶은 장르였다. 이번 기회에 9일간의 공연 기간 중 가능한 일정에 맞추어 관람하게 됐다. 그중 내가 관람한 공연은 <배비장전>.

 

더뮤즈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배비장전>은 2015년과 2016년 대한민국 창작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선정된 작품으로, 양반의 체면과 위선의 양면성, 슬기로운 여성을 상징하는 기생을 중심으로 사회 풍자와 해학을 담아낸다. 특히 이번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에서 판소리와 오페라가 만나 풍성한 음악과 다이내믹한 표현으로 재탄생 되었다. 판소리와 오페라의 만남이라니, 전통극에 오페라의 형식이 어떻게 녹아들었을지가 가장 궁금했다.

 

해당 작품은 작곡 박창민, 작사 강문숙의 작품으로 총 예술감독은 이정은이 맡았고, 연출 김태웅, 음악감독 이경민, 엘렉톤 김희은, 바리톤 염현준, 소프라노 이현주, 테너 윤주현, 최기수, 소프라노 한송이 등이 출연하였다. 오페라답게 다양한 음역대의 사람들이 등장함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배비장전>을 관람하고서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눈여겨 본 부분들을 중심으로 풀어냈다.

 

 

 

<배비장전>을 들여다보며: 주목한 장면 및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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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비장전>은 조선 후기의 소설로, 판소리 <배비장>을 소설화한 것이며 작자와 연대는 알 수 없다. 여기서 배비장이란, 배씨 성을 가진 비장, 즉 조선시대 고위적인 ‘감사’와 ‘유수’등을 보필하는 ‘무관 벼슬아치’를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러하다. 여색에 빠지지 않겠다고 아내와 약속한 배비장은 신임 사또를 따라 제주도로 발령길에 오르게 되는데, 한편 신임 사또는 그의 허위의식을 벗기기 위해 애랑과 방자 모두 합세하여 교책을 마련한다. 결국 계략에 넘어간 배비장은, 애랑이 배비장을 유혹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배비장이 적극적으로 유혹하다 개망신을 당한다. 결국은 기생을 탐하고 여색과 주색에 빠지는 양반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스토리가 주는 교훈은 ‘유부녀는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라나.

 

사실 스토리는 뻔한 내용이다. 전통극의 고증을 살리려 하다 보니 기존의 배비장전의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연출했고, 극적인 연출조차 없어 전체적으로는 진부하고 단조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내용을 전개하는 부분에 있어서 조금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도 있었다. 특히 아랑이 목욕 중이라는 팻말을 보고 배비장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목욕 중인 아랑의 모습을 엿보려는 장면은 ‘선녀와 나무꾼’의 장면을 연상케 하였고 개인적으로는 살짝 불편하게 느껴졌다. 젠더 감수성의 측면으로 바라보았을 때에는 여전히 전통극에서의 고질적인 한계가 느껴져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감상한 장면은 배비장과 방자가 서로 만담을 주고받는 장면과 마지막에 애랑, 방자, 신임 사또가 의기투합하여 배비장을 궁지에 몰아넣은 채 티키타카 하며 흥얼거리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양반과 종과 같은 신분에서의 단단한 벽을 허물고 시대적인 틀을 조금 비틀어 보려는 시도가 보였고, 이러한 연출에서 사회 풍자와 해학의 요소가 돋보였다.

 

무엇보다 해당 창작극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대사 곳곳에 시대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요소들이었다. 요컨대, “픽미픽미 픽미업”, "나리 카카오택시를 부를까요?”, “페이스톡을 걸어볼까?”, “저희 공연은 인터미션이... 없습니다. 바로 시작합니다!!”라는 대사가 있으며, 그 외에도 배우들이 방에 들어갈 때 QR코드를 찍고 소독제를 뿌리는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덕분에 전통극의 스토리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트렌드와 유행에 민감한 어린 연령대의 친구들 또한 해당 극의 소소한 현실 고증 단어에 반응하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는 전통극의 벽을 허물고 현대를 살아가는 관람객의 시대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쾌한 요소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배비장전>을 둘러보며: 주목한 공간, 장치, 장르적 특징



사실 <배비장전>을 관람하며 내용적인 부분보다 형식적인 부분에 더 눈길이 갔다. 아무래도 판소리와 오페라의 묘한 조합이 궁금했던지라 연출적인 부분을 더욱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요컨대, 무대 공간, 무대 장치, 배우들의 연기 및 발성, 판소리와 오페라를 결합한 새로운 창작극의 장르적 특성 및 차별점과 같은 부분들 말이다.

 

첫째, 무대가 이루어지는 공간, 강동아트센터에 관한 부분이다. 무대는 소극장임에도 불구하고 꽤 확 트인 넓은 공간을 자랑했다. 좁은 공간에서는 소리가 공간 안에 갇히면서 관람자의 귀에서 과도하게 맴돌면서 울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공간적 특성 덕분에 감상 시 소리가 아주 명료하고 길게 쭉 뻗어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오페라의 형식에 맞게 마이크 없이 생(生) 목소리만으로도 극이 원활하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시야가 확 트여있는 강동아트센터와 같은 공간이 꽤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넓은 무대 공간에 비해 좌석 간의 간격은 두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은 편이라 이 점은 관람 시 불편하게 느껴졌다.

 

둘째, 무대 장치이다. 생각보다 무대 장치는 특정할 것 없이 단조로웠다. 무대의 가장 왼편 아래에는 피아노를 담당하시는 두 분과 지휘를 맡은 음악감독님 한 분이 전체적인 무대의 음향을 담당하였고, 중앙에는 제주의 돌담길을 연상케 하는 비스듬한 경사길 2개가 다였다. 소품은 스토리상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들을 사용하였고, 조명 또한 대개 푸른빛과 주황빛을 기본으로 사용하되 그 외 따로 짚을 만한 특징 있는 기교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무대가 휑한 느낌도 있었고 사실상 기대했던 풍성한 음악과 다이내믹한 표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아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배비장전>이라는 극의 내용에 어울리는 반주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히려 피아노 이외에 다른 화려한 관현악 반주까지 덧대어졌다면, 등장인물들의 대사 전달에 방해가 되거나 전체적인 극의 흐름에 과한 느낌이 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두 피아노의 선율만으로도 이 넓은 무대의 음향을 심심치 않게 채울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다.

 

셋째, 배우분들의 발성이다. 무대를 감상할 때에는 무대 장치만큼이나 배우분들의 발성도 극을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 오페라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특이하게도 오페라에서는 뮤지컬에서와 달리 개인 핀 마이크를 쓰지 않고 오로지 배우분들의 생 목소리를 통해 대사를 전달한다. 무엇보다 오페라에서는 배우마다 다양한 음역대가 나뉘기 때문에 배우분들의 각자 다른 발성과 감상자의 다양한 소견에 따라 대사 전달력 또한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배비장을 연기한 배우분이 등장인물 중 가장 오페라에 최적화된 감성의 소유자로, 묵직하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인상 깊었다. 대사에 음을 달아 노래를 하며 스토리를 전달함에도 불구하고 쭉 뻗어 나오는 크고 깊은 목소리에 대사 하나하나가 명료하게 들렸다. 그 외에도 각자 다른 음역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배우분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마당 놀이패 또는 판소리와 비슷한 느낌의 발성이었는데, 몇 분은 대사 전달력 부분에 있어서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배우분들마다 발성의 차이가 있었기에, 이러한 부분에서도 해당 창작극의 판소리와 오페라의 미묘한 만남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배비장전>을 나오며: 전체적 감상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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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비장전>을 관람하고 나서, 내가 본 공연이 오페라인가 뮤지컬인가 혼동됐다. 이유는 '오페라'라고 하기에는 음악이 중심적으로 이루어지는 극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뮤지컬'이라 하기에는 배우분들마다 다양한 음역대의 사람들이 오페라적인 발성으로 노래하였으며 모두 개인 핀 마이크를 쓰지 않은 채 생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즉, 장르를 어느 것 하나로 명확히 구분 짓기 어려울 정도로 한데 다양하게 섞인 모습이었고 묘한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판소리와 오페라의 묘한 조합을 시도한 창작극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의의가 있었고, 오히려 앞으로 이러한 묘한 조합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가, 그리고 다양한 연출에서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느껴졌다. 그러니,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오페라를 보러 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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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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