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도 철학도 어렵다면,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글 입력 2021.10.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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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행위 예술가 중 한 명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전을 준비하고, 전시회를 진행하는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였다. 마리나의 예술에는 '과연 예술인가?'라는 물음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저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행위일 뿐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리나의 창작물을 '예술 작품'이라고 칭할 수 있는지에 관해 늘 의문이 있었고, 판단할 수는 없을지언정 적어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의 입으로 그의 예술에 관해 직접 듣고 나니 이것은 예술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나가 예술이라고 칭해온 그의 행위에는 그만의 철학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철학에 관해 알게 되니, 멀게만 느껴졌던 마리나의 예술 세계가 조금은 가깝게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나는 하나의 예술 작품엔 작가의 견해, 즉 철학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관객들은 그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철학이 무엇일지 골똘히 탐구하기도 하고, 작품에 관한 자신만의 해석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예술과 예술의 감상을 재미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예술은 철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또 새로운 철학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술 작품을 학문으로서의 철학과 연관 지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쑥스럽지만 '철학'이라는 말이 학문적인 의미를 갖는 순간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철학의 놀라운 통찰력과 의외의 재미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긴 하지만, 아직 철학을 어렵게 느끼는 탓이다.

 

또 예술은 예술가 개인과 관객 개인의 철학을 담아내고 촉발시킨다고만 생각했지, 예술 밖에서 존재하는 철학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까지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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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기에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은 나에게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었다.

 

첫머리부터 미켈란젤로는 몰라도 그림은 안다는, 그 유명한 '천지창조'와 이름은 알아도 내용은 모른다는 니체의 철학을 엮어내더니 빈 병을 그린 그림에 공자와 베버,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을 동시에 담아내는 신선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과하지는 않지만 절대 감추어지지도 않는 작가의 개그 본능, 유머 감각은 덤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태피스트리 작품을 다룬 12장이었다. 작가처럼 나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한 벽면을 가득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태피스트리 작품에 감탄한 경험이 있었기에, 수많은 어린 소녀들의 눈과 손을 앗아갔다는 그의 탄생 비화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철학이란 우리의 삶에 이론적인 영향은 어느 정도 줄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큰 영향력도 관련성도 없는 책 속의 학문에 불과하다고 여겨온 나의 짧은 생각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질적인 사회 문제의 깊은 뿌리도 철학을 돋보기로 삼아 파고든다면 새로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철학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듯이.


책장을 덮으며, 또다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생각했다. 그가 거쳐온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그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그를 바탕으로 창조된 범상치 않은 예술 세계를 떠올렸다.

 

철학도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둘은 다른 공통점이 있다. 다가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에 대한 해답 역시 가장 앞부분, '들어가는 말'에 제시하고 있다. "저도 노는 겁니다. 같이 놀아요."

 

예술도, 철학도, 예술의 철학도, 철학적인 예술도 그저 즐길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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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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