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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은 본가를 방문하지 못했다. 아마 많은 분이 그러실 듯 일이 많았던 탓이다. 물론 고작 며칠일 것이지만, 애매하니 남은 것들과 급히 서울로 돌아와야 할 일정을 이유로 기차표를 끊지 않았다. 서울에서 일을 하는 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 모두가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듯싶다. 이 사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걸까, 추석 주가 끝난 주중의 시작과 함께 뜻밖의 소식을 접하였다. 부모님의 상경이었다.

 

10월 이일이 대체 공휴일이니 나와 동생을 보러 직접 서울로 오시겠다는 말씀이었다. 다소 갑작스러웠지만, 문득 그저 가족의 시간을 위해 부모님이 서울로 오신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짚어보았다. 전무했다. 과거 대입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것이나 방 계약을 위해 함께 서울에 온 적은 있지만, 단지 얼굴을 보고자 이렇게 움직이신 적은 없었다.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 생각나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바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인 <동경 이야기, 1953>였다.

 

<동경 이야기>는 자식을 만나기 위해 동경으로 직접 기차를 타고 온 노부부의 모습과 이후 고향을 찾아온 자식들의 모습을 그리는 영화이다. 노부부는 자식들의 얼굴을 보고자 동경으로 향하지만, 자식들은 이유가 생겨서야 부모를 찾아간다. 두 집단이 함께하는 시간 또한 차이를 지닌다. 자식들은 며칠 동안 동경에 머무는 부모를 부담스러워하며 이후 고향을 방문한 후에도 일이 끝나자 당일 다시 동경으로 떠난다. 도리어 둘째 아들의 미망인이 된 며느리 노리코가 동경은 물론 시골에서도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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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부모와 자식들이 함께하는 동경의 모습을 담지 않는다. 노부부가 자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가 시작되는 시점과 마무리되는 시점이며, 그 공간 또한 자식들의 집이다. 동경을 함께 구경하는 이도, 이 구경을 구체적으로 권하는 이마저 타인이다. 구체적인 장소를 언급하는 최초의 인물은 노부부의 사위이다. 그는 자신의 부인에게 '고궁에라도 모셔다드릴까'라고 질문하지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는 핀잔을 듣는다. 직후 그는 다시 장인 내외의 일정을 물으나 딸은 그저 오빠가 어디라도 모시고 나갈 것이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그러나 장남인 오빠마저 부모와의 외출에 실패한다. 외래 환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들의 첫 번째 동경 나들이는 무산된다.


아들의 집에서 며칠을 보낸 노부부는 딸의 집으로 가지만 여전히 외출하지 못한다. '오늘 저녁에라도 고궁에 모셔다드릴까'란 남편의 말에 딸은 되려 자신이 모부님이 뭘 하고 계셨냐고 질문한다. 어제 저녁부터 집에만 셨계다는 말에서야 딸은 그러자고 답한다. 하지만 고궁 구경은 끝내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전화를 걸어 둘째 며느리 노리코에게 부모님의 동경 관광을 부탁하는 딸의 모습만이 해당 씬의 모지막을 구성한다. 그렇게 노리코의 휴가가 사용되고 나서야 뒤늦은 동경 나들이가 시작된다. 결국 노부부의 일과를 파악한 이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위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 역시 유사한 관계인 며느리다.

 

동경을 구경하는 장면에서도 부모와 자식간의 방향성은 뚜렷하다. 전망대에 올라 노부부는 자식들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질문한다. 늘 자신의 아래로, 자식에게 고정된 부모의 시선이다. 이 방향성은 노부부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들에게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실패로 돌아간 첫 외출을 준비하던 와중 노부부의 아들은 점심은 어떻게 먹을 것이냐는 아내의 질문에 백화점 식당가는 어떠냐고 답한다. 이는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에게 번화한 동경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본인의 자식들 때문이다. 어렵게 동경을 찾은 부모님과의 나들이 속 본질이 새로운 가정의 외출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노부부가 꾸려왔던 핵가족의 해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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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너무나 쉽게 왕진을 나가는 것 또한 이를 보여준다. 아들은 집을 나서기 직전, 자기 혼자서라도 시부모님 내외를 모시고 나가야 하지 않겠냐는 부인의 말에 그럼 집은 누가 지키냐고 답한다. 이제 아들이 지켜야 할 것은 나이 든 부모님과 함께했던 가족이 아니다. 그의 부인과 두 아들이 있는 그만의 가족이다. 아들과 부모 세대 간 분리된 가족의 모습은 손자와 며느리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외출이 실패로 돌아가자 노부부의 손자는 짜증을 내고, 다음을 말하며 자신을 달래는 엄마에게 '다음에 가자고 한 뒤 간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부부에게 '다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자연스레 과거를 말하며 다음을 논하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노부부는 근원적으로 배제된다. 두 사람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고, 간 적이 없다는 이전의 다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현재가 두 사람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되는 셈이다.

 

이전과 다음을 말하며 진행되는 대화의 공간 역시 인상 깊다. 어린 모자의 대화 장소가 장남의 진료실인 까닭이다. 즉 이곳은 새로운 가장의 공간이다. 장남이 자신의 새로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장소로 늙은 아버지는 이곳에 발 들이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다. 새로운 질서의 세계이기에 과거의 질서를 대표하는 그에게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노인은 그저 다다미 바닥에 앉아 손자가 노는 바깥을 바라볼 뿐이다.

 

이렇게 영화는 초반부터 가족을 구성했던 질서의 변화와 부모가 가지는 시선의 일 방향성을 지적한다. 자식의 위를 볼 때 상호적인 교류가 이뤄지지만, 그 자식이 다시 부모가 된다면 기존 가정에 존재했던 상호성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위를 향하던 시선이 필연적으로 아래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상경'을 선택한 노부부의 모습은 이미 해체를 암시한다. 아래로만 향하던 그들의 방향이 역전되었다면, 관계 역시 한 번 더 변화한다. 서로를 향하던 시선이, 한쪽으로 기울다 사라져버린 셈이다. 그들의 며느리 노리코가 유일하게 그들과 마주하는 이유 역시 그러하다. 노부부와 그녀 사이 놓여 있던 아들이 없기 때문이다. 자식과 부모가 아니기에, 그리고 사이의 자식마저 사라졌기에 이들은 서로를 아래로만 혹은 위로만 바라볼 필요가 없다. 가족이 아니기에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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