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초록은 마흔 가지 색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도서]

글 입력 2021.10.07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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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마흔 가지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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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미술관에 들어서면, 지금 같은 전시를 관람하는 이 사람들은 어떤 배경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일까 궁금해지곤 한다. 조용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거나, 함께 온 일행과 그들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공간. 고요함 속에서 같은 작품을 바라보지만 각기 다른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펼쳐 나간다.


도서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의 저자 이진민은 미국의 가수 조니 캐시(Jonny Cash)의 음악을 따 말한다. ‘초록은 동색이라 하지 말고 조니 캐시가 노래하듯 초록은 마흔 가지 색이라고 말하며 좋겠다.’ 이 문장이 곧 책이 말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이진민은 정치철학자로서 작품 앞에서 철학과 인간의 삶을 떠올린다. 이러한 그의 미술관 이용법은 나의 것과는 아주 다르다. 나는 보통 나라는 개인의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즐긴다. 여러 작품을 스쳐 지나다 유독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만나면 잠시 멈춰 생각한다. 그림의 어떤 부분이 나의 마음에 들었을까. 작품의 제작 방식, 소재와 색감, 크기, 그리고 주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면서 어떤 것이 나의 마음을 이끌었는지 찾아가는 길이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나의 중요한 경험과 연결되었는지, 지향하는 가치관과 맞닿아 있는지 고민하는 게 나의 미술관 이용법이다.


반면 저자는 나에겐 낯설게 느껴지는 철학의 관점을 마음에 품고 미술관으로 향한다. 작품 앞에서 그가 공부하고 연구했던 철학의 내용을 떠올린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고 신은 죽었다 말한 니체를 생각하고, 사과나무를 그린 작품을 보곤 홉스와 로크를 떠올린다.


멋진 감상법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의 감상법만이 정답이라 말하지 않다. 이 또한 작품을 관람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니 가만히 들어보고, 자기만의 관람법을 찾아보길 권한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자.

 

 


투명한 유리병 앞에서 공자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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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반도, <메이슨 자 / 여름 빛>, 2000

 

 

저자는 리카 반도(Rica Bando)의 유리병 그림 앞에서 떠올린 생각을 공유한다. 유명한 브랜드 메이슨 자에서 만든 견고하고 실용적인 유리병. 저자는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그로 인해 늘 조심하게 되고, 안에 담긴 것을 모두 여과 없이 보여주는 유리병을 좋아한다 말한다. 리카 반도의 그림을 보면서 이러한 유리병의 특징들을 되짚어보고, 이내 논어의 군자불기(君子不器)에 대한 생각을 이어간다.


군자불기란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이상적인 인간형인 군자는 마땅히 이러한 모습이어야 함을 이른 말이었다. 공자가 살던 시대는 사용하는 용도별로 각기 다른 그릇이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한 가지 사고에 갇힌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며, 두루두루 어울리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리카 반도가 그린 유리병이라면 어떨까 질문을 던진다. 내용물을 모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유리병 뒤에 놓인 풍경도 내비치는 투명함에서 공자가 말한 군자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미술과 함께 철학도 한 걸음 가까워졌다. 공자와 군자불기, 어쩐지 듣기만 해도 어려운 옛 것이란 느낌이 들었는데 책상에 놓인 투명한 유리병을 떠올리니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철학자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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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구스타프 클림트, <철학>, 1900. <의학>, 1901. <법학>, 1903

 

 

저자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가 그린 <철학>, <의학>, <법학>을 보면서 추상적인 세 개념에 담긴 클림트의 깊은 사유를 읽었다. 당시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 강당의 천장화를 의뢰받아 세 그림을 그렸지만, 포르노그래피와 다를 바 없다는 공격을 받았다.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 흔히 철학과 의학, 법학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전혀 다르다. 대학 측에서는 세 학과의 가치와 긍정적 메시지가 담긴 그림을 생각했을 텐데, 예상치 못한 결과물에 부정적인 반응을 쏟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르게 보았다. 클림트는 대학과 학문의 세계를 보기 좋게 포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의 그림 속에서 인간은 어린아이로부터 청년이 되고, 노인이 되기까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모호하게 그려진 철학의 형체는, 철학 또한 인간의 모든 괴로움을 해결해 줄 수 없음을 말한다. 곧이어 그린 <의학> 또한 죽음이라는 최대의 공포로부터 인간을 온전히 보호할 수 없음을 전한다. <법학>에서도 학문의 한계와 어두운 이면을 말하는 방식은 이어졌다. 법이 만드는 정의로운 사회의 밝은 면보다, 죄에 대한 처벌과 형벌의 무거움을 강조했다.


그러나 클림트의 그림은 세 학문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진 않는다. 다만 학문이 표면적으로 지닌 빛나는 가치와 이상향에만 취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학문으로 인간이 삶에서 겪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니 자만하지 말고, 늘 신중하게, 본인의 위치와 역할을 분명히 하며 연구할 것을 말한다. 저자와 클림트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자신만의 사고를 작품을 통해 풀어내는 클림트 또한 한 명의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철학자가 된다.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과 이용법>은 이렇게 그림 앞에서 철학의 세계로 들어올 것을 이끈다. 공자의 사상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 것처럼, 책을 통해 어렵게만 느껴진 철학과 미술을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다.


저자 이진민의 미술관 관람기를 들었으니, 이제 각자의 관람법을 만들어볼 차례다.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면,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공부했거나 관심을 두고 있었던 분야를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그것은 꼭 철학이 아니어도, 경영학이나 사회학, 컴퓨터공학 아니면 물리학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학문이 아니라면 평소 좋아했던 가수의 음악, 너무 맛있어서 아껴 먹었던 점심 식사, 그 어떤 것을 떠올려도 좋다.


이렇게 누군가의 추천이 아닌 나의 주관에 따라 새로운 길을 열어갈 때, 사고하는 힘이 길러진다.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형 콘텐츠와 플랫폼이 넘치는 시대, 우리가 그토록 찾는 건 바로 사유하는 능력이었다. 힘들어도 나의 것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보면, 우리는 모두 철학자가 된다. 그 시작을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과 함께 해보길 추천한다.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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