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외면이 아닌 직면을, 머물러있기 보다는 나아가기를 [영화]

글 입력 2021.10.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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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잊고 사는 기억들이 있다. 마주하면 아플 것임을 확신하는 기억들이 특히 그렇다. 폴에게는 아주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났던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그랬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애써 외면해오는 기억이었다. 폴은 부모님의 사진에서도 일부러 아버지를 잘라낼 정도로 아버지를 외면해왔다. 꿈에서 등장하는 아버지는 자신을 향해 고함을 칠 정도로, 아버지는 악몽 그 자체였다. 그렇게 폴은 다정하고 상냥했던 어머니의 기억 일부분만을 간직한 채로, 나머지는 다 외면해온 것이다.


아마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극성맞은 이모들의 사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도 모를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채로, 아버지는 평생의 악몽으로 외면하고 흐릿한 기억 속 어머니만을 가슴에 품어두며. 그렇게 기억은 저편으로 묻어두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폴의 인생은 어느 날 마담 프루스트의 등장으로 180도 바뀌게 된다.


마담 프루스트는 기묘한 여성이었다. 햇빛이 잘 드는 낮에는 곰처럼 큼직한 자신의 강아지와 함께 우쿨렐레를 들고 공원에 가서 한참을 뚱땅이는 한량 같아 보이다가도, 항상 문틈 사이로 자신의 집 밖에 누군가가 지나가지는 않는지 살펴볼 정도로 비밀스러웠다. 자신의 집 안에 잘못 들어온 사람에게는 기억을 잊게 하는 효과가 있는 `아스파라거스` 차를 줘서 자신의 집을 소수의 사람 외에는 극도로 숨겼다.


그렇게까지 해서 그녀가 숨기고자 했던 비밀은 그녀의 집 깊은 안쪽에 있다. 녹음이 가득한 비밀 정원이었다. 집주인도 모르게 자신의 집을 정원으로 개조했다. 그 정원 한가운데에는 둥근 테이블이 있었고, 그녀의 비밀스러운 손님들은 그 테이블에 앉아 마담 프루스트의 차를 받아 마셨다. 자신이 과거 들었던 음악이 흐르는 그곳에서 다디단 마들렌까지 한 입 먹고는 단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기억 저편으로.


마담 프루스트의 차는 그녀만큼이나 기묘했다. 음악을 들으며 그 차를 마시면 잊고 있던 기억 속으로 되돌려버리니 말이다. 그런 차를 끓일 수 있는 그녀가 폴을 가만 둘 리가 없었다.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잊고 외면하다가 결국 입까지 다물어버린 폴에게 마담 프루스트는 그에게 과거를 보여주기로 했고, 폴은 그렇게 외면해왔던 과거를 다시 직면하게 된다.


처음 폴이 마주했던 기억은 다디달았다. 자신을 보며 이모들은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 이야기했고 자신의 아버지와 그 친구는 아코디언 연주자가 될 것이라 말하며 옥신각신했다. 그 가운데에서 어머니는 이야기했다.

 

 

어느 쪽도 원치 않아요

내 아들은 자기 뜻대로 살 거예요

멋진 가족이라면 그가 어느 장단에 춤출지

결정하지 않을 거예요. 어느 쪽도 원치 않아요

내 아들은 자기 뜻대로 살 거예요

이 아이를 한 남자로

키우는 법을 가르쳐 주는 건

세상이 아녜요


사랑 한 스푼

꿀 한 스푼

햇빛 한 줄기가

그의 무지개가 되고

모래 한 줌이

그의 성이자 그림을 그릴

크레용이 되겠죠

필요한 건 그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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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답고 기묘한 경험을 한 이후로 폴은 홀린 듯이 마담 프루스트를 지속해서 찾아가게 된다. 잊어왔던 기억을 다시 직면해낸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항상 달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행복해 보이다가도 말싸움을 했고, 어느 날 어린 프루스트의 눈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들어오게 된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거친 폭력을 행사하고 있던 것이다. 그토록 외면해왔던 안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이다. 그 이후 폴은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아버지의 폭력을 마주하고 펑펑 울게 된 이후로 다시는 마담 프루스트를 찾아가지 않았다. 또다시, 외면하기 시작했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이 영화의 기반이 되는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은 옳았다. 폴은 처음 기억을 직면하며 행복한 진정제를 받아왔다. 하지만, 영원히 진정제만을 받을 수는 없었고 그는 결국 독약을 잡아 먹어버렸다. 그 쓴맛에 폴은 놀라 도망쳤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기억과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은 공존할 것이다. 평생 행복한 기억들로만 뱃속을 가득 채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빛은 언제나 그림자를 가져온다. 행복한 기억은 어느새 다시금 불행했던 기억을 함께 끌고 온다. 그러면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그 기억을 마음속에 숨겨둔다. 마치 못 볼 것을 봐버렸다는 듯이, 마치 폴처럼. 몰랐던 때로 되돌아가고 머물러있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독약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진정제가 필요하다.


마담 프루스트는 폴이 기억을 외면한 채로 머물러있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결국 폴의 집으로 그녀는 약초와 레시피를 보내줬고, 폴은 고민 끝에 다시 기억을 직면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담 프루스트의 레시피를 따라 직접 차를 해 먹고, 음악을 듣고, 마들렌을 한 입 먹었다.


그리고 그는 되찾았다. 자신의 아버지는 레슬러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퍼포먼스를 했다는 기억을 말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장면과 동일한 장면이 링 위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퍼포먼스였을 뿐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레슬링 쇼는 결국 어머니의 승리로 끝나고, 둘은 진한 키스를 하며 링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듯이 어린 자신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폴의 오해였다. 아버지는 가정폭력범이 아니었으며,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는 듯한 장면은 어디까지나 행복한 레슬링 쇼를 위한 연습이었다.


아마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장면에서 그래도 폴이 도망쳤으면 폴은 영영 오해를 벗지 못했을 것이다. 영원히 아버지는 가정폭력범으로, 어머니는 가엾은 존재로 그에게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폴은 기억을 직면하기로 했다. 오랜 시간 마들렌을 준비하고, 음악을 준비하고, 마담 프루스트의 레시피를 따라 차를 우려냈다. 그리고 과거에서 벗어났다.


외면이 아닌 직면을, 머물러있기보다는 나아가기를 선택한 폴. 우리는 폴과 같은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픈 과거를 직면하기 두려워 외면하고 머물러있을 때, 다시 한번 그 고통을 마주 보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할 수 있을까?


마담 프루스트는 폴에게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남기며 긴 여행을 떠났다. 과거에 머물러 스스로의 삶을 살지 못하는 폴을 위해, 우리를 위해 아주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는 한마디였다.


Vis ta vie! (네 인생을 살아!)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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