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달과 진실, 그리고 철학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가벼운 철학 이야기로 떠나는 미술 여행
글 입력 2021.10.0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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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은 정치철학을 전공한 작가가 미술 작품에 담긴 철학을 위트있게 풀어낸 책이다. 작가는 말랑말랑한 언어를 사용해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을 일상의 언어로 쉽게 풀어내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의 각 챕터에서는 우리가 분명히 과거 철학 교양이나 윤리와 사상 시간 때 수업은 들었었지만, 단어와 문장이 어렵고 딱딱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해묵은 부분들을 시원하게 해소시켜준다.


미술사를 전공하는 큐레이터나 미술 분야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가독성이 좋아 책장을 술술 넘겨 가며 읽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상식에 가까운 역사 지식이나 기초적인 사회 문화의 현상과 미술 작품을 엮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독해하는 데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필자는 책을 구성하는 13개의 챕터들 중 2개의 주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뤄볼까 한다. 6장과 7장에 등장하는 자코모 발라와 구스타프 클림트가 바로 그 주인공 되시겠다.

 

 

 

가로등과 매화가 달빛을 대하는 방식

아름다움의 속도를 철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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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mo Balla,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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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몽룡, <월매도>

 

 

이 장에서는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인 자코모 발라의 <가로등>과 어몽룡의 <월매도>라는 작품을 비교한다. 두 작품은 모두 ‘달’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는데 그 쓰임새가 다르다. 전자에서는 미래주의를 표방하는 작가답게 자연의 소재인 ‘달’을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인 ‘가로등’에 비해 작게 그려 나타내고 있다. 반면 후자에서는 <월매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을 만큼 ‘달’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으며 매화와 어울리도록 표현한다.


작가는 자코모 발라의 작품을 20세기 초의 산업 혁명의 분위기를 그대로 화폭에 옮겨온 듯한 그림으로 설명한다. ‘가로등’은 급변하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미래주의는 역동적이고 연속된 이미지로서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힘과 속도의 기계를 찬미했던 미래주의자들은 과거의 유산 중 부드럽고 유약한 아름다움의 가치를 폄하하기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이는 이탈리아의 파시즘이라는 사상과 연결되고 대중 선동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월매도>는 미래주의가 그토록 염증을 느꼈던 과거의 미학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자연과 어우러짐은 여유로움, 느림의 미학으로 이어진다. 인간이 만든 빛으로 자연의 빛인 달빛을 죽이려 했던 미래주의자들과 달리 <월매도>는 자연의 이상향을 품고 있다. 작가는 ‘빨리빨리’ 문화가 일상화된 현대사회 속에서 <월매도>가 지니는 조화로움이라는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동시에 ‘달’이 상징하는 희망과 낭만, 이상에 대해서도 말한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Fly Me To the Moon’이라는 곡이 있다. 유명한 재즈 스탠다드이자 OST다. 많은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해서 불렀지만, 그중에서도 계속 기억에 남아 종종 찾아 듣게 되는 건 역시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엔딩 버전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달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OST로 자주 쓰이는 건 멜로디가 좋아서도 있겠지만 ‘Fly Me To the Moon’의 가사가 함의한 메타포 때문일 것이다.


가사는 환상적이다. 노래를 부르는 화자가 환하게 비추는 달빛 속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여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호소력이 짙은 목소리는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의 조상님들은 실지로 해보다도 달을 사랑하는 낭만적인 분들이었을지 모른다. 비록 조선이 서양의 근대 문명이 개화하는 속도를 쫓아가지는 못했을지 모르나, 우리는 우리 안에 달과 같은 꿈을 끌어안고 사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클림트는 혹평에 시달렸을까

정의를 위한 불의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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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 <법학> <의학> <철학>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오스트리아 빈 대학 천장화 연작을 고를 것이다. 그런데 클림트가 그린 이 <철학>, <의학>, <법학>은 당시 미술계에서 도마 위에 올라 화제가 되었었고, 현대에 와서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19세기 말의 오스트리안 빈의 미술계는 보수적이었다. 클림트가 그려온 의뢰작품의 상태를 보고는 자신들이 기대했던 웅장하고 찬란한 위상의 학문 이미지와는 달라 크게 실망하였다.


달리 해석하면 클림트가 그만큼 시대를 앞서나가고, 혁신적이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는 다소 불편한 진실이더라도, 진실을 드러낼 줄 아는 화가였다. 가식적인 묘사로 학문의 밝은 면만을 포장하여 나타내기엔 그 이면에 감춰진 심오한 의미를 전부 표현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을 테다. 그리고 그의 소신대로 탄생하게 된 <철학>, <의학>, <법학>은 오늘날 걸작으로 인정받게 된다. 안타깝게도 원본이 세계 전쟁의 와중에 불타 소실되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오늘날 예술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시대의 풍조에 영합하기 급급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고 있다고 해도 모른 체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예술적 우상, 위인의 작품을 보고 그들의 스타일과 정신세계를 그대로 답습하려고만 한다. 어떤 이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할 것이지만, 자신만의 것에 대해 깊게 고민한 적이 없는 예술가들에게 이 말은 좋은 핑곗거리가 될 뿐이다.


이들이 처음에 예술을 하면서 마음에 품었던 ‘게임체인저’에 대한 야심은 그저 사방으로 흩어진 꿈의 잔재일 따름이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유행에 편승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닐까. 목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으나, 적어도 진지하게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가슴 속에 불꽃 하나쯤은 꺼트리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예술가들을 봐도 대부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확신하고 그대로 표현한다.


그렇게 그들의 언어는 설득력을 갖게 된다. 또한,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은 그들의 언어를 통해 진실의 일부를 경험하게 된다. 클림트가 가지고 있던 진실은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계엔 통하지 않는 진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작품은 재평가를 받는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세상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통찰로부터 탄생한 것이라 그럴 터이다. 이렇듯 클림트의 천장화는 예술 꿈나무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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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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