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유의 맛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미술도 처음, 철학도 처음이라면
글 입력 2021.10.0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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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날씨가 좋은 날이면, 걷다가도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고 사진으로 남기곤 한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 쉽사리 그 감동을 느끼긴 어렵다. 물론 내 기기나 실력 탓이겠지만, 바람이 불던 느낌과 하늘을 보며 눈이 편해지던 그 실제적 순간은 사진과 분명한 괴리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하늘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우연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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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인상 : 해돋이>, 1872, 캔버스에 유채, 48 x 63 cm, ⓒ 마르모탕 미술관

 

 

인상주의의 시초, 모네의 <인상 : 해돋이>는 풍경의 실제보다 더 실제를 담아낸 회화로,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감동을 표현했다. 해가 떠오르는 무렵의 차분한 순간을, 약간은 흐릿한 붓 터치로 살려냈고, 일렁이는 물결과 해와 배의 그림자도 물감을 툭툭 얹기만 해서, 무게감과 방향을 드러냈다.

 

보랏빛, 푸른 빛, 해의 붉은 빛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실제 현장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그의 그림은 분명 사진처럼 명확하고 분명하지는 않지만, 당시 풍경을 바라보던 감상자의 시각을 온전하고 따뜻하게 담아내고 있다.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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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네 회화의 매력처럼 이민진의 책,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에서도 미술 작품들을 실제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이 책은 1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림을 보면서 자연스레 철학자들의 사유에 빠져들 수 있다.

 

즉 그림과 철학에 재미를 붙이게 하는 아주 묘한 책이다. 저자는 자신을 다정한 철학자라고 설명하며,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대하면서, 혹은 삶을 살아가면서 즐거운 철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냈다고 한다. 머리말에 있는 “저도 노는 겁니다. 같이 놀아요”라는 구절은 독자를 더 설레게 만들고 있다.

 

 

 

이 사과는 어떻게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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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빨간 사과에 대한 서로 다른 욕망”에서는 홉스, 로크의 사상과 함께 호세 에스코페의 <사과나무와 크로커스>, 톰 시에라크의 <빨간 모자> 작품을 비교한다. 유명한 철학가의 이름에 살짝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지만, 저자는 철학자들과 독자를 ‘절친’으로 이어준다. 우선 홉스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라고 표현하는데, 아래 글에서 위 이론을 아주 재치있게 설명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이렇다. 어떤 들판에 사과나무가 서 있고 잘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데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원시인이 다섯 명 있다고 치자. 사과를 냠냠 먹었더니 맛있다. 오늘은 하나 먹으면 족하지만 내일도 또 먹고 싶다. 그런데 다른 놈들이 다 먹어치울까 봐 불안하다. (중략)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선빵’을 날리는 게 최고다. 그러다 보니 틈만 나면 서로 쥐어뜯고 싸우는 전쟁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p.77-78)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읽기 쉬운 단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재미있고, 홉스가 말하는 자연 상태 안 인간의 모습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홉스는 성악설을 지지하고 있다고 보지만 저자는 인간은 원래 악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두려운 인간”일 뿐이라고 서술한다. (p.79) 지금껏 홉스의 사상을 여기저기서 자주 접했지만, 이렇게 입체적으로 홉스를 바라보고 알게 된 적은 처음이었다. 호세 에스코페의 그림 속 검은 배경과 대비되는 탐스러운 사과는 홉스가 주장한 이론 속 사람들의 시각에 대입하도록 한다.


두 번째로는 홉스보다 더 늦게 태어난 로크에 관해서이다. 로크는 홉스가 주장한 자연상태보다는 인간은 적절하게 선을 지키며 공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로크의 시각에서는 톰 시에라크의 <빨간 모자>처럼 자연상태에서도 어린아이 역시 안전하게 자신의 몫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로크는 자연법, 자연상태 자체는 괜찮지만,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사회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렇게 저자는 같은 주제를 그린 그림이더라도 다른 시각으로 보도록 하고, 이는 두 사상가의 생각을 비교해보면서 깊이 사유하도록 만든다.

 

 

 

무용과 용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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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에서는 “가로등과 매화가 달빛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제목으로, 자코모 발라의 <가로등>과 어몽룡의 <월매도> 작품을 비교하면서 철학적 사유를 확장하고 있다.


미래주의자 자코모 발라의 <가로등>은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광경처럼 표현되어 있다. 중심에서 쏟아져나오는 빛은 관객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에 반해 어몽룡의 <월매도>는 <가로등>보다는 은은한 밤 풍경이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달의 존재를 확인한다. 발라의 그림 속 달은 가로등에 가려져 큰 빛을 내지 못하지만, 어몽룡의 달은 어두운 주위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라는 가로등이 주제이면서 왜 굳이 달을 위쪽에 끼워 넣었을까.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발라가 가로등이 뿜는 인위적인 빛만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달빛을 죽이고 과학 기술만을 예찬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미래주의의 한계였고 이는 우리에게 흑백사고를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되었다.

 

한편 발라의 달과 다르게 어몽룡의 <월매도> 속 달은 강렬하지는 않지만 달 주변 어두운 색이 달 자체를 빛내고 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는 법이라는 걸, 즉 장자의 말처럼 용(用)과 무용(無用)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치게 한다.

 

*

 

이처럼 책은 이렇게 다양한 주제로 그림을 비교하며 철학으로 생각을 쌓아 올린다. 그래서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유에 뿌리를 내려, 예술을 삶에 적용시킨다. 더구나 하나를 먹으면 계속해서 먹고 싶어지는 귤처럼 달아서 읽기도 수월하다.

 

올가을,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부담 없이 꺼내 읽을 수 있는 책,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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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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