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까마귀

3화
글 입력 2021.10.05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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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진 몇 조각을 손톱에 얹고 기계로 굳히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손톱이 알록달록하게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탐내던 반짝이는 동심이 손 위로 얹어진 듯했다. 오직 나만의 기준으로 형성된 엉성한 미(美)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누군가 세련된 취향의 사람이 본다면 쟤는 왜 유치원 조카가 칠해준 것 같은 손톱을 자랑스레 보이고 다니냐며 속으로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만족했다.


 

-이제 기념사진을 찍을게요.
 
H는 무슨 신성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나는 이곳저곳 저마다의 일정한 질서의 무질서를 자랑하는 소품들 사이로 손톱이 보이게 손을 들이밀었다.
 
-손을 조금 더 오므려주시고 왼쪽으로….
 
창밖의 나뭇잎 사이로 부서진 저녁 즈음의 지는 무렵 햇살이 손 위로 흩어져 무늬처럼 쏟아졌다.
 
고양이와 작별 인사를 하고 또 기념사진까지 찍고 나서야 세상과는 단절된 것 같았던 그 공간을 꿈에서 깨듯 빠져나왔다. 손톱 위 얹어진 알록달록한 비즈들만이 그게 꿈이 아니었다는 ‘토템(영화'인셉션'에서 등장하는 개념으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게 하는 작은 물건)’처럼 남아있었다.
 
 

KakaoTalk_20211005_190851957.jpg

 
 
밖으로 나와보니 9살 바다에서 보았던 것 같은 노을이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기분이 한껏 좋아져 네일 사진을 애인과 친구들 이곳저곳에 보내 자랑했다.
 
엄마한테도 보내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턱없는 생각임을 인지하고 빠르게 단념했다. 스물아홉이나 먹어서 무슨 어린애 같은 짓이냐고 꾸지람 들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홉 살 때나 열아홉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꾸지람을 들어왔다. 그럼 대체 나는 언제 어린애 같을 수 있었던 거지?
 
생각이 이쯤 미치자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를 만나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을 좀 했지만 여전히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짧은 만남 후 집으로 돌아와 씻은 뒤 침대에 누웠다. 손톱들은 제각기 다른 빛을 내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이라도 보는 기분으로 그것들을 한참을 바라보다 몽롱하게 잠들었다.
 
*
 
잠에 든 나는 아주 이상한 꿈을 꿨다. 꿈에서 까마귀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주 거대한 까마귀였는데, 나뭇가지와 까마귀 집도 거대했던 것으로 보아서는 그냥 내가 작아진 것일지도 몰랐다. 까마귀는 무언가를 물고 총총 뛰어서 자신의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거대한 까마귀가 낯설지 않았다. 조금은 의지하는 마음까지 들어가며 까마귀를 따라갔다.
 
자연스럽게 걷고 싶었는데 걸음이 불편했다. 몸을 내려다보니 나는 작은 까마귀였다. 큰 까마귀를 따라 나뭇가지 위를 총총 뛰었다. 나뭇가지 멀리 둥지가 보였다. 저기가 집이구나. 큰 까마귀는 계속 뒷모습만 보여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놓치면 어떡하지, 마음 졸여가며 나는 짧은 다리로 총총 그의 뒤를 쫓았다.
 
이윽고 우리는 둥지에 다다랐다. 거대한 둥지는 제각기의 반짝이는 조각들로 빛나고 있었다.
 
큰 까마귀는 둥지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서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까마귀는 우리 엄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락없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세상이 지겨운 듯한 그 눈빛과 한 올의 잔머리도 허용하지 않고 뒤로 싹 묶은 올백머리에 높은 코까지 영락없었다. 다만 입만이 검고 단단한 부리가 되어 무언가를 문 채 앞으로 쭉 나와있었다.
 
큰 까마귀는 부리를 흔들며 나와 둥지를 번갈아 가며 가리켰다. 아마 나보고 둥지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 같았다. 나는 지시를 따라 반짝거리는 것이 가득한 둥지 집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리된 엄마 집과는 전혀 다른 집이었다. 큰 까마귀는 내게 총총 다가오더니 내내 물고 있던 무언가를 내게 툭, 던져 주었다. 다름 아닌 조개였다.
 
9살 때 내가 주머니에 몰래 숨겨온 조개. 시간이 지나 변색된 조개껍질 속에선 보석 같이 생긴 것이 들어 있었다. 보석은 붉은빛으로 발광(發光)하고 있었다. 이십 년 전 그날 보았던 바로 그 노을의 색으로, 보석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의 눈은 더 이상 텅 비어있지 않았다. 대신에 붉은 노을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는 나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나 역시 엄마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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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끝

 

 

[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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