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ge를 따라서] 꽃의 여왕, 장미(1)

장미를 따라서
글 입력 2021.09.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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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공간들은 냄새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너무 익숙해져서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 냄새들 중 우리가 기분 좋게 인식하는 것들을 향기라고 지칭한다. 갓 따온 과일의 신선한 달콤함, 구워지는 빵의 구수함, 목욕 후 바르는 바디로션의 향긋함 까지 향기는 삶의 곳곳을 떠돌아다닌다. 사람들은 공간을 부유하는 향을 언제 어디서나 즐기고 소유하고 싶어한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존재를 소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재료를 가열했다 식혔다 갖은 방법을 이용하여 결국 소유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들이 향수의 전 단계, 향료다.


향수에 이용되는 향은 무궁무진하다. 레몬처럼 흔히 알고 있는 향부터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직접 느끼기 전까지는 상상되지 않는 향도 있다. 정말 많은 향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 단 하나만을 택하라면 어떤 향을 택해야할까? 향수를 구성하는 향 하나하나 모두 중요하고 기념비적인 향료들도 많지만, 그 중 중요한 한가지를 뽑으라면 나는 망설임없이 ‘장미’를 택할 것이다. 장미가 없는 향수는 많지만, 장미가 없는 향수 시장은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장미는 많은 향수들의 노트(note)를 구성하며 유행도 타지 않는 클래식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미 없는 향수는 입맞춤 없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향수하면 떠오르는 여러가지 플로럴(Floral)노트들 중 고고한 여왕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장미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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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미의 종류



첫번째, 로즈 다마스크


로즈 다마스크는 수세기 동안 중동에서 쓰여왔으며 19세기쯤 유럽으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량의 대부분이 불가리아에서 자라나며, 나머지는 시리아, 터키, 이란, 인도 등에 분포되어 있다. 로즈 다마스크는 주로 ‘로즈 오또(Rose otto)’의 형태로 추출된다. 로즈 오또란, 로즈 에센셜 오일로 수증기 증류법으로 추출된 오일을 말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추출된 로즈 오또는 좀 더 맑으며 가볍고 화사한 느낌을 준다.


두번째, 로즈 센티폴리아


또 다른 이름으로는 로즈 드 메이, 즉 5월의 장미라고도 불리는 종이다. 오랜 거장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여 ‘화가의 장미’라고 불리기도 한다. 로즈 센티폴리아는 프랑스,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에서 재배되지만 가장 많은 생산량을 차지하는 건 모로코이다. 주로 용매 추출법을 이용하여 ‘로즈 앱솔루트(Rose absolute)’의 형태로 추출되며, 이때 로즈 앱솔루트는 로즈 오또와는 확연히 다른 향을 보인다. 더욱 깊고 진하며 특유의 스파이시한 매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두 종류의 장미가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알려져 있다. 장미는 주로 새벽이나 이른 오전에 수확하는데, 이는 그 시간에 수확한 장미의 향이 가장 진하고 풍성하기 때문이다. 조금 게으름을 피우면 어느 새 머리 꼭대기에 태양이 떠올라 강한 빛을 받은 향은 풍성함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수 많은 노고 끝에 정말 많은 양의 장미가 수확되지만 결과물로써의 로즈 앱솔루트는 적은 양이 추출된다. 보통 1kg의 로즈 앱솔루트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대략 3톤에서 4톤의 장미 꽃잎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로즈 앱솔루트는 꽤나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낮은 수율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크기변환]장미추출.jpg

 

 

 

2. 향과 이야기


 

그렇다면 도대체 장미는 어떤 향일까? 아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장미 향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쉽지 않다. 향을 글로써 말로써 표현한다는 것은 늘 쉽지 않지만, 장미는 더욱 그렇다. 천연 로즈 앱솔루트는 말 그대로 수백 가지의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물질들이 모두 명백히 밝혀진 것 또한 아니다. 재배 방법이나 수확 시기부터 그 해의 강수량, 흙의 구성, 재배지의 고도 등에 의한 차이가 생겨 같은 ‘로즈 앱솔루트’로 불리더라도 그 향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만큼 장미의 향은 단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 장미를 설명할 수 있는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장미’, 그 자체일 것이다.


장미는 단순한 꽃 향기만 지니지 않는다. 꽃잎의 포슬포슬한 건조함과 동시에 그 위에 알알이 맺혀있는 물방울의 촉촉함이 느껴진다. 꽃의 중심부의 눅진한 달콤함과 잎사귀의 맵싹함도 함께 느껴진다. 꽃 특유의 화사함 그리고 나무의 진중함도 섞여있다. 말 그대로 팔방미인이다. 그래서일까, 장미는 고대부터 사랑과 미인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붉은 장미가 정열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관련된 일화로는 클레오파트라가 있다. 유혹의 대가로 여겨지는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와의 사랑을 위해 방 전체를 발목 높이의 장미 꽃잎들로 채웠다고 한다.


또한 장미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연관된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아프로디테가 죽을 만큼 사랑하던 애인을 향해 가던 길에 장미 덤불의 가시에 발을 베였고 그때 베어 나온 피가 장미에게 아름답고 선명한 붉은 빛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장미의 붉은 빛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는 페르시아에도 존재한다. 어느 날, 꽃들은 그들의 여왕인 연꽃이 자꾸 밤에 잠을 잔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자 하늘의 신이 하얀 장미를 꽃들의 여왕으로 임명해버린다. 그러자 흰 장미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나이팅게일이 날아올라 장미를 껴안았고 가시에 가슴을 찔려 피를 흘렸다. 다음 날 흘러내린 피에서 붉은 장미가 피어났다고 한다.



[크기변환]장미그림.jpg

 


그러나 장미가 사랑과 아름다움만을 상징했던 것은 아니다. 장미는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도 종종 쓰여왔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로마의 네로 황제는 단 한번의 연회를 위해 장미꽃잎 4만 세스테르티우스(고대 로마의 화폐 단위)를 썼다고 한다. 또한 로마인들은 장미의 향을 음식과 와인 그리고 목욕에도 적용했다. 비록 동시대는 아니지만 1888년에 그려진 Lawrence Alma-Tadema의 그림 를 보면 황제의 손님들이 장미에 거의 익사하듯이 파묻혀 환영 받는 듯한 모습이 담겨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호사스러운 권력의 과시를 위해 장미를 이용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보인다.

 

*


이 외에도 장미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어쩌면 세상 그 어떤 꽃의 이야기를 합쳐도 장미보다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만큼 장미가 가진 복합적이고 오묘한 향기는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다. 장미는 굳이 다른 향들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완성된 뼈대를 이룬다. 예를 들어 은방울꽃을 보면 그 향이 유일하게 존재하기에는 여리고 투명한 탓에 자주 다른 플로럴 노트들과 함께 쓰이곤 한다. 그러나 장미는 장미 단일노트로서 완벽하게 존재한다. 또한 이미 그 안에 다양한 향을 머금고 있어 많은 조합에서 최상의 시너지를 보여준다. 우디, 프루티, 머스크, 그린, 오리엔탈 등 거의 모든 향의 노트들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때로는 청순하고 또 때로는 농염한 장미의 모습을 느낄 때면 왜 고대부터 사랑의 꽃이라 찬양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할 만큼 흔한 향이면서도 천연 오일은 꽤나 고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장미. 너무 진하거나 올드한 향 아니냐는 의견에 은근한 호불호가 있는 향 이기도 하다. 장미를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더, 더, 많은 장미 향을 접해 보기를 권한다. 세상은 넓고 장미는 무궁무진하다. 향이란 것은 늘 취향이 존재하지만, 그만큼 의외의 취향을 발견할 가능성 또한 가장 높으니 말이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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