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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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윽. 쓰윽. 코를 찌르는 은행 열매를 갓길로 치우고 한 번에 쓰레받기에 담는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이미 짓눌려 으깨진 열매와 생생히 살아서 누군가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열매.

 

1년의 결실인 열매를 즈려 밟고 재수가 없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을 대신해 빗자루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은행 열매를 온몸 가득 품어준다.

"수고했어. 내가 고이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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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슥. 부스슥. 빛바랜 단풍잎을 갓길로 치우고 한번에 포대에 담는다.

"이제 곧 추워져. 너에게 옷을 선물할게."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계절이 변하는 순간을 알리는 단풍잎.

 

그렇게 사람들은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걸 깨닫고 빗자루는 떨어진 잎들을 모아 사람들의 옷을 길고 두껍게 만든다.

"수고했어. 덕분에 사람들이 따뜻해졌어."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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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류장에서 우산을 기다리고 있다. 햇빛이 쨍할때, 천둥 번개가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올 대, 먹구름이 몰려올 때, 구름 한 점 없이 맑을 때, 찬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 때, 언제든 우산이 오길 기다린다.

언제 올까?

물음도 없이, 의심도 없이 계속 기다린다.

 

문득 사람들이 정류장에 오면 그녀에게 몇 번 버스를 기다리냐고 물어본다.

"우산이요"

햇빛이 쨍할 때,  

" 아, 소나기 때문에요?"

비가 올 때, 

"아, 가족 기다리시는구나."

추울 때,

 "아, 이번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오죠."

동문서답이지만 다들 꼭 우산 잘 가질 수 있길 바란다고 덕담을 하고 자신의 버스에 올라탄다.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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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이 바스락거리는 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그녀는 14번 버스 창문에서 우산을 보았다.

 

버스가 지나간 후, 그녀는 우산 없이 그대로 혼자였다. 그리고 정류장에서 나와 저 멀리 걸어 나갔다. 늦은 가을의 비는 그녀를 흠뻑 젖게 했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걸었다. 그녀의 마음 속 우산은 무엇보다 선명하게 그녀를 가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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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한 해를 보내며 잊어버린 소중한 사람을 떠올릴 즈음, 가을.

 

천고마비라는 말이 있을 만큼, 누군가와 밖에서 만나기 좋은 날들이다.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궁색한 핑계를 대며 내가 바빴던, 못 만났던 이유를 말하고 앞으로 자주 보자고 이야기하며 마무리 짓는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설레었던 그 순간을 다시 찾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를 탓하며 잠을 청해본다.

"올해도 이렇게 끝인가 보다"

진심 어린 말들이 위선으로 포장되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만남을 이어간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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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느끼는 그를 마주해본다. 그리고 순간을 거슬러 처음 만난 때를 생각해 본다. 이성적인 사고로는 태어날 수 없는 그가 날 감싸고 있다.

 

그가 태어나기 전, 나는 그를 모른 척했다. 아닐 거라고 내 마음을 다독이면서 외면했다. 그리고 갓난 아기는 계속 울어댔다. 이내 모른 척할 수 없었고 어루만져 줘야만 했다.

 

어느덧 커질 대로 커진 그는 오히려 나를 감싸 안아 날 짓눌렀다. 계속해서 날 힘들게 했고 버거웠던 나는 그를 떠나기로 했다.

"갈게.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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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다. 얼마 만에 찾아온 자유인지 벅찼다. 하지만 곧 자유의 행복도 느낄 수 없었다.

 

그가 없어졌기 때문에.

 

나는 선물은 사라지고 찢겨져 버린 포장지였고 더 이상 살아 숨 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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