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존재의 이유 - 2

글 입력 2021.10.0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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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다, 난 없다, 아무것도 없다.

 

간단하고도 명쾌한 답을 얻은 나는 거기서 더 나아가 본질적인 것들을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럼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내 주변에 관계하고 있는 것들은?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나의 정신 세계는?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생각들은? 살아 숨쉬는 이 육체는?

 

우선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에 대해 탐구해보기로 했다.

 

감정이란 어디서 온 것일까? 감정은 외부로부터의 반응이다. 기쁨은 내 기분을 끌어올려주는 무언가에 대한 반응이고 슬픔은 내 기분을 저해시키는 무언가로부터의 반응이다. 분노는 날 들끓게 만드는 무언가에 대한 반응이고 즐거움은 날 날아가게 만드는 무언가에 대한 반응이다.

 

즉, 감정은 외부와 내부의 교차로 인한 일종의 표출 활동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감정을 느껴야 하는가? 인간은 왜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전혀 불필요한 활동이었다면 우리 인간은 진작에 그것을 없애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잔존하는 이유는 감정이 분명 어딘가에 쓸모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어디에 쓸모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욕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먹는 것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채워지지 않으면 채울때까지 원한다. 설령 채워진다 해도 몇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금 우린 먹는 것을 원한다. 만약 음식을 제때 먹지 못하면 인간은 죽는다.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먹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죽을 때까지 먹는 것을 탐하게 설계되어있다.

 

우리는 맛있는 것을 먹는 행위를 통해 기쁨을 느끼고 맛없는 것을 억지로 먹음으로 인해 불만을 느끼게 된다. 기쁨이 오래 누적되면 즐거움이 되고 불만이 오래 누적되면 분노, 혹은 슬픔을 느끼게 된다.

 

잠 또한 마찬가지다. 자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필연적으로 졸음이 찾아오며 적당히 해소되지 못하면 우리는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졸음의 상태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행위를 통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다.

 

우리는 잠을 잠으로 인해 기쁨을 느끼고 잠을 자지 못함으로 인해 불만을 느낀다.

 

결국 이를 통해 감정의 기원에는 욕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감정은 욕구를 충족시킴으로 인해, 혹은 충족시키지 못함으로 인해 얻는 부산물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욕구, 우리 인간이 근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이 욕구란 녀석은 도대체 어떤 녀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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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는 살고자 함에서 온다. 욕구를 해소시키지 못하면 우리는 죽는다.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세계로. 우리는 그것을 본질적으로 두려워 한다. 사라지는 것을 무서워 한다.

 

두려워한다?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왜 두려워하지? 왜 두려움을 느끼지? 왜 두려움을 느껴야 하지? 왜 사라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인간은 없는 것일까?

 

왜, 한명쯤은 있지 않을까? 정말 한명쯤은...?

 

애초에 모든 욕구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본질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므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고 보는 게 맞는 것일까?

 

아니,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단 말인가..?

 

어째서? 어째서 인간은 완벽할 수 없지? 왜 그런 존재가 되려고 하지 않지? 왜 사람들은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지? 왜 욕구에 저항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왜 욕구를 당연시 생각하는 것일까? 욕구란 당연해야 한단 말인가?

 

살기 위한 모든 행동들, 욕구를 추구하는 모든 행동들은 정당하다고 여겨야 하는가? 그런 행동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용인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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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질문들은 통해 '두려움'이라는 키워드에 접근하게 된 난 '완벽한 인간'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떠한 욕구들로부터 자유로운, 욕구에 휘둘리지 않는, 욕구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두려움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연약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난 그런 두려움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약한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은 연약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은 자신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가장 효과적인 마음이다. 연약한 마음은 완전한 인간에서 멀어지는 길이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배척되어야 한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되기 위해 힘쓸 필요가 있고 기꺼이 그것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끊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가로막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욕구가 포함된다. 욕구를 이루지 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우린 완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욕구에 지배당하는 삶은 완전한 삶에서 멀어지는 길이다. 욕구로부터 나오는 감정에 지배당하는 삶 또한 완전한 삶에서 멀어지는 길이다.

 

그렇기에 욕구와 감정은 배척되어야 한다, 욕구와 감정은 옳지 못하다. 욕구와 감정은 지워야 한다.

 

무언가 먹고 싶다, 무언가 하고 싶다, 무언가 갖고 싶다, 무언가를 원한다라는 욕구는 잘못된 것이다. 그런 것들을 원해선 안된다. 그건 옳지 못한 행동이다. 그런 것들을 원하게 되는 순간 완전한 인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좋다, 기쁘다, 즐겁다, 행복하다, 싫다, 아프다, 힘들다, 슬프다, 울고싶다, 고통스럽다, 외롭다와 같은 감정들 또한 잘못된 것이다. 그런 감정들을 느껴선 안된다. 그건 옳지 못한 감정들일 뿐이다.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다면 이런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완전한 인간이 되는 길이다.

 

난 누구보다도 더 완벽하고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다.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해내는 것, 그것이 내 유일한 희망이다.

 

...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찾을 수 없던 내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여러가지 사고를 통해 완전한 인간에 도달하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고 실제로 그것을 이룰 수 있으리란 헛된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은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이어졌다.

 

본능은 그릇된 것이다. 그런 그릇된 본능으로부터 나오는 감정들은 단단히 뒤틀렸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선 위 두가지 요소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나의 새로운 삶의 목표는 본능을 부정하고 감정을 배척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할 이유이자 삶의 유일한 목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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