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틀 포레스트, 사람과 사람 [영화]

글 입력 2021.09.27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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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일본의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가의 만화 원작이며, 모리 준이치 감독이 2015년과 2017년에 사계절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한국에서도 2018년 임순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리메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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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던 주인공 이치코는 어느 날 별다른 이유 없이 고향 코모리로 돌아온다.

 

코모리는 토호쿠 지방의 작은 마을인데, 상점이 없어 장을 보기 위해서는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까지 나가서 농협의 작은 슈퍼나 가게로 가야 한다. 가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라 자전거로 30분이 걸리고 겨울엔 눈 때문에 1시간 반을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옆 마을의 큰 슈퍼까지는 거의 하루가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치코는 돌아왔다. 그녀가 돌아온 이유에 대해 영화는 설명을 곁들이지 않는다. 하루하루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치코의 일상과 그녀의 독백, 그리고 푸르른 코모리의 풍경 속을 들여다보며, 관객들 또한 그 이유를 조용히 짐작해 낼 뿐이다.


 

“뭔가에 실패해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고 생각해.

맞은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도는 듯 보였겠지만

조금씩은 올라갔거나 내려갔을 거야.


그런 거면 조금 낫겠지.

 

아니, 그것보다도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면서 그래도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옆으로도

내가 그리는 '원'도 점차 크게 부풀어 조금씩 '나선'은 커지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힘이 나더구나."


- 리틀 포레스트 中 엄마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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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느 날 엄마가 고등학생 딸인 이치코를 두고 집을 떠나며 시작되는데, 집을 나간 엄마가 어느날 이치코에게 보내온 편지는 이러하다. 나는 B와 함께 영화를 보았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엄마와 딸인 이치코의 관계에 대해서 그와 함께 꽤 오랫동안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중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B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대략적으로 2가지 유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관계의 첫 번째 유형은 '타원'이었다. 설명을 돕기 위해 종이에 타원을 그려나간 그가 말했다.

 

"가까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는 유동적인 관계지.

하지만, 절대 어느 정도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아."

 

그리고 나서, 그는 타원 바로 옆에 포물선을 그렸다.

 

"반면, 포물선은 보편적인 이차곡선의 형태를 띠는데

한순간 아주 가까워졌다가도 아주 멀어져,

스치는 관계를 의미해.


영원한 관계가 아닌 거지.

너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해.

멀어진 친구들일 수 있고,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일 수 있지.

어느 순간, 삶에서 뒤처지고, 나아가 잊히는."

 

"그러네."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동안 '포물선'처럼 나를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파라노마처럼 휙휙. 셀 수 없이 많은 장면들이 지나갔다. 내가 만난 그들은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되었을까.

 

하지만 그들이 궁금한 것은 겨우 잠시, 나는 늘 '타원'처럼 나의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B의 말처럼 이나 우리의 삶은 가까워지는 것과 멀어지는 것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모두 우리의 의지에 앞서, 삶이 불쑥 건네 마주치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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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너무나 멀어져 버린 이치코와 엄마의 관계가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더욱이 가까이에 머물며 ‘타원’이 되어주어야 하는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그래서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는 이치코가 안쓰러웠다. 떠나 버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치코의 입장에 대입해서, 억울함도 느꼈고 화가 났다.


그런데 B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이치코에게 쓴 엄마의 편지를 다시 천천히 읽어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삶이 불쑥 건넨 것들은 가끔 불청객들처럼 마음을 괴롭게 한다. 무례하게 찾아와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에, 엄마는 자신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떠난 뒤에는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그린 ‘원’들이 결국은 자라서 ‘나선’이 되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치코 또한 마찬가지다.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쳇바퀴 돌듯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이치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을 테니까.


이치코도, 나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엄마의 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의 관계가 ‘타원’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은 혼자만의 여행을 하는 중이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만의 ‘나선’이 점점 커져 제자리를 벗어나게 될 만큼 성장한 후에, 그들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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