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눈부신 너와 나 끝의 커튼콜, 다시 안녕 [음악]

글 입력 2021.09.2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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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시간에서 우리는 많은 걸 보고 느낀다. 그 속에서 공유되는 모든 것은 새로운 시작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기존의 기억을 각색하기도 한다. 나는 일생에서 끊임없이 맺고 끊어지는 관계의 순간을 커튼콜이라 부르기로 했다. 커튼콜은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의 박수에 답하기 위해 출연진들이 다시 무대로 나오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관객의 박수는 2시간의 감사와 기억의 되새김, 그들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축하 등의 의미가 담겨있다. 일상에서 겪는 사소함부터 어떤 날의 거대한 사건까지, 그 안에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커튼콜과 매우 닮았을 것이다.

   

 

 

 

태연의 <커튼콜>은 4년 전 발매된 앨범의 수록곡으로 그녀의 팬인 나로서는 익히 알고 있던 곡이었다. 얼마 전 콘서트를 그리워하며 보던 직캠을 계기로 오랜만에 한 곡만을 무한 재생하는 독특한 습관을 다시 선보이는 중이었다. 종일 듣고,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감상하다 보니 4년 전 이 곡을 들었을 때 지나쳤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한 권의 책을 다독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처럼 숨겨진 의미와 여러 방면에서의 해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사에 대한 설명이 공식적으로 나온 건 없어서 나의 해석이 작사가의 의도와 조금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곡의 가사로 여러 의미를 곱씹어본 점, 의도와 다르더라도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 점을 생각하면 더없이 짜릿하기만 하다.

 

 

마치 암전 같은 밤 까만 벽 무대 위로

길고 어지럽던 얘길 꺼내봐

한 편의 희곡 같던 공연 막이 내릴 때

커져가는 맘이 시간이 또 너를 불러내

눈부신 너와 나 끝의  Curtain Call 바람처럼 안녕

감히 망칠까 나 못한 말 내게 다시 와줘

조명이 날 비추고 네 모습을 가려

눈부셔 슬펐던 우리 Curtain Call 그 순간처럼 안녕

멋진 대사 같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넌 뒤를 돌아서)

이미 비어버린 무대 위엔 나 홀로

뻔한 비극 끝이 났지

허무하게도 (정말 허무하게도)

안타까운 순간 순간 (전부) 돌아보게 돼 또

눈부신 너와 나 끝의 Curtain Call 바람처럼 안녕

감히 망칠까 나 못한 말 내게 다시 와줘

조명이 날 비추고 네 모습을 가려

눈부셔 슬펐던 우리 Curtain Call 그 순간처럼 안녕

시간 가면 잊혀 어떻게든 견뎌

끝이 나면 다시 시작이니까

다만 두려운 건 끝이 없는 엔딩일까봐

단 한번 사랑과 숱한 Curtain Call 무뎌지지 않아

참아 보려 나 애써봐도 난 자꾸 아파

무대 뒤 넌 떠나고 (나는 널 놓치고)

난 아직 여기에

기억에 갇힌 채 다시 Curtain Call

그 순간처럼 안녕 (다시 안녕)

다시 안녕

다시 안녕

 

 

곡의 화자는 가수이다. 막을 내린 공연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으며 관객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를 커튼콜에 비유했고, 비어버린 객석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사로 풀어냈다. 이미 지나버린 순간에 외치는 안녕이기 때문일까, 멜로디는 밝지만 어딘가 쓸쓸함이 많이 묻어난다. 실제로 많은 가수가 무대 위의 자신과 집으로 돌아온 자신을 구분 짓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수만 명 앞에서 뛰었던 가슴은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여전하지만, 이곳에서는 혼자라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온다고. 그들은 막을 내린 공연 앞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공연은 막을 내렸고 관객은 다시 나를 불러냈다. 빛나는 조명은 나를 비추느라 너를 가렸지만, 우리의 시간은 찬란했기 때문에 눈이 부셨고, 아쉬운 마음이 공존했기 때문에 슬픈 커튼콜이었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객석은 비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한순간 찾아온 공허함을 꿋꿋이 버티고, 끝을 맞이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쉽게 그러지 못할 걸 알기에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있다. 넌 이미 돌아섰고 공연은 끝이 났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미련하게 남아 기억에 갇힌 채 다시 한번 너를 불러내 본다. 다시 안녕을 고해본다.

 

그녀가 담담하게 전하는 쓸쓸함을 들으며 내가 관객이었을 때 느꼈던 공허함이 생생하게 떠올랐고, 이내 곡의 화자가 관객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무대 뒤 넌 떠나고 난 아직 여기에’의 가사는 텅 비어버린 객석을 바라보는 가수의 입장이 아닌 무대 뒤 모습을 감춘 가수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을 나타낸 것만 같았다.

 

늘 누군가의 팬을 자처했던 나는 공연이 주는 공허함과 쓸쓸함을 너무나도 잘 안다. 화려한 무대를 밑에서 바라보며 그들과 내가 이 순간을 함께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벅차오르지만, 공연장을 나서면서부터 과거가 되어버린 그 시간은 2시간의 신기루로 바뀐다. 서로 시선을 얽히며 주고받았던 이야기는 막을 내림과 동시에 휘발되는 것 같았고, 거대한 하나로 보이던 것이 실은 아주 작은 개개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허무함에 쉽게 휩싸이고 말았다. 이를 달래기 위한 커튼콜을 목청껏 불러보지만, 가끔은 더 큰 아쉬움이 생기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공연을 관람하고 나서 현타(현실자각타임)를 느낀다고 한다. 저마다의 이유에서 기인한 감정이었고, 주로 공허함과 허무함, 쓸쓸함이었다. 커튼콜이 끝나면 서로의 안녕을 빌어줘야 함에도 또다시 와달라 외치고 싶은 마음이 매번 목 끝까지 차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아쉬움과 그리움을 끌어안고 멀어지는 상대에게 안녕을 외친다. 그래야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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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가사를 오랫동안 곱씹으면서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꼈던 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그 결과 이 곡은 공연만이 아닌 우리의 인간관계와도 닮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제 커튼콜이 끝나버린 공연에 대해 아쉬움과 경의를 표한다면, 인간관계에서의 커튼콜은 이별을 맞이하며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떠오르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도 커튼콜이 존재했던 적이 더러 있었다. 몇 년을 함께 지낸 친구와의 관계가 도화선에 불이 붙듯 순식간에 타버려 사라진 적이 있다. 그때 우리의 마지막 커튼콜을 생생히 기억한다. 장소는 각자의 집이었고, 수단은 메신저였다. 같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같은 시간 속에서 각자의 감정을 토해내며 내뱉었던 인사는 끝끝내 우리 관계의 마침표를 찍게 했다. 마침표를 찍기까지의 시간은 짧았고, 방법은 보잘것없었다. 찰나의 커튼콜에서 우린 언제일지 모를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며 안녕을 나눴지만 5년이 지나버린 지금, 그것은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여전히 미운 감정은 존재하지만 지난 시간이 빛났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우리의 커튼콜 역시 눈부셔서 더욱더 슬펐다.

 

*

 

평소 멜로디보다 가사에 더 큰 의미를 두는 편이라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 큰 주의를 기울인다. 작사가는 누구인지, 왜 이런 단어와 비유를 했는지, 어떤 경험을 기반으로 이러한 표현이 나왔는지, 숨겨진 해석이 있는지 등 좋아하는 곡이라면 어떻게든 그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가사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 가수가 곡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나 작사가의 말을 찾으려 했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커튼콜>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약간의 직관적인 가사까지, 누군가는 뻔한 내용을 담은 가사라 할지라도 이미 이 곡에 꽂혀버린 이상 해석이 필요했었고, 공식적인 설명이 없다면 스스로 해야만 했었다. 늘 작사가의 비하인드를 들으며 타인의 생각에 감탄만 했었지,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려 노력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이었고, 그 길의 끝은 좋다는 말로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앞으로도 나의 커튼콜은 무수히 존재할 것이고, 그 속에서 다양한 일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예견할 수 없는 커튼콜이지만, 만남과 이별이 반복될 거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그 변치 않는 사실에 따라 나를 위해, 상대를 위해 안녕을 외쳐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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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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