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재원과 함께한 이주일 [사람]

글 입력 2021.09.23 09: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이주일 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가장 우울할 때, 그리고 가장 즐거울 때도 혼자 있을 때다. 이 두 양극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 나 하나라는 것은 다행인 일이고, 조금은 슬프고 가끔 은밀하며, 어쨌든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내가 상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와는 별개로 혼자가 아닌 생활은 그것만으로 크고 작은 피로가 쌓이는 일이다. (지금 생각하니 어떻게 기숙사 생활을 7년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8월 말, 갑작스러운 취직으로 다시금 상경을 해야 했고 본가에 내려와 있던 나는 부랴부랴 부칠 짐을 싸 두고, 급한 짐만 캐리어에 넣은 채 서울로 향했다. 집을 구하지 못한 채였기 때문에 2주 동안 친구 ‘재원(가명)’의 집에서 묵으며 출퇴근을 하고, 주말엔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로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2주라는 시간 동안 작은 방에서 둘이 부대끼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흔쾌히 수락해준 친구가 더욱 고마웠다.

 

 

 

재원과 함께한 이주일



재원은 나의 고등학교 친구다. 입학 정원이 적었고 전교생 기숙사형 학교였던 탓에 친구들끼리 더 친밀하기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졸업 이후에도 자주 만나는 친구들 중 하나다. 재미있고 귀여우며, 쿨하고 의리까지 있는 재원을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재원과도 2주간 좁은 한 집에서 살아봤던 경험은 없어, 미안한 마음이 컸다.


새로 들어간 회사에 출퇴근하며 배우는 일에 적응하랴, 방을 알아보며 다른 할 일까지 하느라 바빴던 나를, 마찬가지로 출근하는 직장인 재원은 성심성의껏 신경 써 주었다. 함께 저녁을 챙겨 먹으며 일과를 이야기하고, 퇴근 후 어떤 날에는 미용실에 들렀고, 주말에는 같이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KakaoTalk_20210922_200122484.jpg

- 첫 출근 날 내 저녁식사를 준비해 둔 재원 -

 

 

서울에서 집을 알아보러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부동산들을 돌아다니며 집들을 돌아보는 일은, 특히 이 코로나 시국에는 상당히 힘든 일이다. 이 지치고 어쩌면 따분할 수도 있는, ‘남’의 집을 고르는 일에 재원은 열심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 만에 열 다섯 군데의 집을 알아보고, 계약도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집을 계약하러 갈 때도, 그리고 이삿날에도 재원은 함께 해주었다. 내가 짐을 풀고 청소하는 동안, 재원도 내가 머무를 집을 열심히 닦았다. 지금껏 꽤 많은 짐 정리와 집 청소를 해 왔는데, 그 중 가장 재미있고 빠르게 끝났던 날이었다.

 

 

KakaoTalk_20210922_200122484_02.jpg

- 잘 먹고 잘 살았던 재원과 나 -

 

 

 

이주일 후



이제는 제법 오래된 재원과의 친구 관계 속에서, 나는 이미 익숙한 느낌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감사함을 알고 있고, 그 의미가 내게 얼마나 큰지도 잘 느끼고 있다. 하지만 재원과 함께 한 이주일 동안, 우리는 그동안 서로 몰랐던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KakaoTalk_20210922_200122484_03.jpg

- 글 내용과는 상관 없는 먹짱들의 진심 어린 계획 -

 

 

재원은 ‘호의에 대한 거절’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호의로 건넨 사탕이나 주전부리를 내가 ‘괜찮아’ 하고 거절할 때가 서운했다고 했다. 반면 ‘부탁’은 상황에 따라 상대가 들어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부탁에 대한 거절’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나는 놀랐다. 나의 경우는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상대가 크고 작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점에서, 내게 부탁은 호의보다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다. 한편 호의의 경우 모든 호의가 상대에게 받아들여질 필요는 없으며, 더불어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부담이 되는 것도 싫었기에 상대적으로 거절이 쉬웠다.

 

하지만 재원과의 대화를 통해 나와는 생각이 다른 경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상대가 내가 오래 알고 지낸 재원임이 새로웠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여도, 함께 산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얼마만큼 아느냐에 관한 문제는 역시 별개였다.


재원과 함께한 이주일 동안, 즐겁고 따뜻한 기억을 많이 만들었다.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하고 즐거운 나지만, 함께 사는 것의 즐거움, 그리고 그 안에서의 색다른 편안함을 느꼈다. 언젠가 내게도 누군가를 초대해 함께 살 기회가 온다면, 재원이 내게 준 기억만큼 다른 상대에게도 그 비슷한 감정을 나눠주고 싶다.

 

따뜻함과 새로움, 그리고 편안함을 준 재원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한다!

 

 

KakaoTalk_20210922_200122484_04.jpg

- 떠나는 날 재원이 싸준 직접 만든 사과잼 -

 

 

 

아트인사이트-허지은.jpg

 

 

[허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