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플리 증후군을 아시나요 ② [영화]

글 입력 2021.09.21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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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글은 "[Opinion] 리플리 증후군을 아시나요 ① [영화]"와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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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가득히>와 <리플리>에서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있다면, 주인공 리플리의 성격이 단연 대표적이다. 두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리플리의 본성은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우선 전자의 경우, 영화 속 리플리는 상당히 당돌하고 자기표현에 충실하며 계획성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스스로가 비교적 하위 계층에 속해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귀족층인 필립이나 프레디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 오히려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는 데 더없이 솔직한 모습을 보일뿐더러 필립과 그의 연인 마지에게 실없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나아가 원작에서처럼 <태양은 가득히> 속 리플리는 연속적인 살인 행위에 그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바로 이 ‘죄의식’의 유무가 두 영화의 주인공을 가르는 핵심적인 지점이 아닐까. 앞서 언급한 <태양은 가득히>와 달리 <리플리>의 주인공은 번번이 고의로 살인을 저지른다기보다 자신을 직접적인 위험이나 위협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별 도리없이 타인을 해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리플리가 매 살인 행위에 조금이라도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는지는 정확히 파악할 방도가 없지만, 확실한 건 <리플리>의 주인공이 훨씬 감정적이고 섬세하며 유약한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리플리는 극히 이성적이고 견고한 냉혈한의 모습에 가깝다.

 

이것이 곧 르네 클레망 감독이 <태양은 가득히>에서 리플리와 필립을 수직적 상하 관계로 두기보단 오래 적부터 알고 지내던 수평적 친구 사이로 설정한 이유가 될 것이며 같은 선상에서 안소니 밍겔라 감독이 <리플리>에서 처음부터 둘을 친구 관계로 두지 않고 계층 격차라는 새로운 변수를 발생시켜 리플리보다 디키를 더욱더 우월적인 지위에 놓아둔 까닭일 것이다.


말마따나 영화 <리플리>의 초반에서부터 주인공은 매우 점잖고 예의 바르며 다소 조용한 청년으로 등장한다. 당당하다기보단 소심한 편에 가깝고, 남들 앞에서 자신의 보잘것없는 모습을 하루하루 감추기에 급급하다. 파도에 덮쳐 곧 쓸려 내려갈 모래성처럼 그의 내면은 늘 위태롭고 불안정해 보인다. 그래서 <태양은 가득히>의 주인공보다도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더욱 닮아 있는 <리플리>의 주인공에게 더욱 마음이 가고 연민의 감정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현대인의 자취가 은밀히 엿보이는 <리플리>의 리플리에게서 자꾸만 대담무쌍한 거짓말이 튀어나올 때마다 이제는 관객으로서 은근한 희열감과 죄의식을 동시에 느끼며 괜스레 들키지는 않을까 함께 조마조마 해하고, 종국에는 그의 행보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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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리플리는 왜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되는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리플리를 현대인의 선상에 두고 다시금 관조한다면, 그가 동경하는 인물인 디키는 인간이 평생토록 욕망하는 대상 그 자체로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듯, 리플리는 시간이 갈수록 디키를 더욱 갈망하고, 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며 점차 돌이킬 수 없는 욕망에 젖어 들어간다. 아이러니한 건 인간의 욕심이 과하면 과할수록 매번 새로이 피어오르는 욕망의 물결로 인해 결국에 가장 근원적인 욕구는 시간이 지나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리플리가 서명 위조, 거짓말, 다른 사람 흉내 내기에 소질이 있다고 했듯이 그는 타인의 눈을 속이는 감쪽같은 행위에 천재적인 재능과 소질을 보인다. 리플리의 뛰어난 흉내 내기 재주와 대쪽같이 들어맞는 완벽한 재즈 취향의 일치로 디키는 단번에 리플리에게 엄청난 관심과 호감을 보인다. 그러나 리플리가 강박적으로 지니고 있던 불안정한 심리와 성격 그리고 자격지심이 디키를 만나 더욱 극대화되면서 리플리는 서서히 디키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늘 마음속으로만 곱씹고 품어오던 부유층의 삶이 지금 당장 눈앞의 이탈리아에서 훤히 펼쳐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자신도 그와 함께 귀족 문화를 영유하고 직접 체험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손을 뻗을수록 저만치 멀어지는 꿈처럼 원체 자유분방하고 금방 권태를 느끼는 성격의 디키는 리플리의 집착에 슬슬 넌더리를 표하며 그를 멀리하게 된다.


<리플리>에서 디키가 리플리를 멀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체스 사건의 여파가 크다. 리플리가 디키의 눈에 들어 그의 집에 얹혀살기 시작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날은 욕실에서 두 사람이 함께 체스를 하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공기를 잠식하고 서로가 바삐 체스판에 눈을 굴리고 있던 와중, 리플리는 별안간 디키에게 그가 기대어 앉아 있는 욕조에 들어가도 되냐고 묻는다. 다소 의미심장하고 미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 장면은 리플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동성애적 성향이 일순간 발현된 것이라는 평면적 차원을 넘어 리플리의 디키를 향한 집착과 열망이 더욱 강렬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리플리에게 처음으로 무언의 께름칙함을 느낀 디키가 암묵적으로 그의 물음에 거절을 표하며 욕조를 박차고 나가자 리플리의 얼굴이 곧 수면 위로 비친다. 사방팔방 흔들리는 욕조 속의 소용돌이 물결은 리플리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완벽히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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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플리>에는 주인공을 비추는 이러한 반사적 이미지가 많이 사용된다. 예컨대 기차에서 잠든 디키의 체취를 몰래 맡다가 들켜버린 순간 차창으로 리플리의 고개 돌린 모습이 비친다. 또 디키를 사칭하고 다닐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을 때 테이블 유리 위로 리플리의 형상이 반사되는 장면이 있으며 이후 약혼자의 죽음에 자신을 의심쩍어하는 마지가 곧장 집으로 찾아오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리플리의 모습이 욕실 벽면으로 비추어진다. 마지막으로 선박에서 또 다른 사건을 벌인 뒤 털썩 주저앉아 있는 리플리를 양면의 거울이 비추는 이중적 연출이 대표적이다. 영화에서 거울, 유리, 물면 등을 통한 물체의 반사는 리플리가 죄의식과 욕망의 감정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낄 때마다 계속해서 등장한다. 여기서 되비침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릇 거울은 실제보다 왜곡되고 일그러진 이미지를 보여주기 마련이다. 따라서 <리플리>에 등장하는 모든 반사적 이미지는 리플리의 왜곡된 마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당장 눈앞에 닥친 죄의식의 현장을 잊고자 그저 거울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만 싶은 그의 소망이 조각조각 담겨있는 듯도 하다.


더불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주인공 리플리 외에도 <리플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두 사람 피터(잭 데이븐포트)와 메레디스 로그(케이트 블란쳇)가 사실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가상 속 가상의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피터는 유일하게 리플리의 꾸밈없는 모습을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이로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메레디스는 섬유 재벌 가문의 규수로서 줄곧 디키 행세를 하고 다니는 톰 리플리에게 별안간 푹 빠지게 된다. 여기서 두 사람은 리플리의 내면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전한다. 피터는 리플리의 인간성과 양심을 상징하며 메레디스는 리플리 내면의 허영심을 끄집어내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만큼은 리플리의 어지간한 변덕에도 끄덕없이 늘 그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찬사의 손길을 보낸다.

 

 

마지 셔우드는 영화 후반부 톰의 짐 속에서 디키의 반지를 발견하게 되고 톰을 추궁하다가 살해당할 뻔하지만, 때마침 피터가 등장하여 죽음을 모면하는데, 이는 톰 리플리에게 아직 남아있는 인간적인 면이 내면의 악마를 잠시 붙들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선상 장면에서 톰은 메레디스와 피터 두 인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을 강요받게 된다. 화려한 거짓의 삶을 위해 두 명을 살해한 죄인에게 진실 담긴 삶을 누리는 사치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글.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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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리플리가 연인을 잃은 마지 그리고 자신을 디키라고 생각하는 메레디스와 이중약속을 잡아 둘을 우연으로 만나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때 마지는 피터와 함께 등장한다. 리플리의 이중 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결국 그의 내면이 투영된 두 인물, 메레디스와 피터가 본디 서로를 알고 있는 사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메레디스는 처음부터 리플리를 디키라는 인물로 잘못 알고 있었고, 마지와 피터는 리플리를 리플리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둘 사이의 오해가 기막히게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재밌는 지점은 마지가 디키를 통해 피터를 알게 되었다면, 메레디스와 피터는 어떤 식으로 서로를 알게 되었는지 영화에서 일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리플리 내면을 상징하는 두 사람이 별다른 소개 없이 이미 서로를 알고 지내던 사이였음을 기본으로 전제한다. 리플리가 파국을 향해 치달음에 따라 그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메레디스와 피터가 계속해서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이유다.


어찌 보면 지나친 우연이라고도 판단될 수 있지만, 그것은 두 인물이 리플리의 내면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기에 그의 뜻대로 순순히 전개가 흘러간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내면의 마음은 지속해서 리플리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한다. 리플리의 의도대로 카페에서 이중약속이 잡히기 바로 전날, 메레디스와 피터는 다시 한번 마주친다. 둘의 우연한 만남이 있었기에 극의 긴장감이 극도에 달하며 리플리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게 되었으므로 결국 이야기는 리플리의 내면에 집중하면서 그의 이면을 따라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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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 역시 흥미로웠지만 우리는 피터, 메레디스뿐만 아니라 디키의 연인으로 나오는 ‘마지’에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양은 가득히>에서나 <리플리>에서나 마지는 타인을 헤아리고 포용하는 이타적인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 특성은 영화 <리플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바야흐로 프레디를 만나고 자신과 더는 전처럼 어울리지 않는 디키의 모습에 리플리가 한창 상심에 빠져있을 때였다. 오랜 시간 연인으로서 디키와 함께해오며 그의 변덕쟁이 기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마지는 그런 리플리의 곁에서 그를 응원하고 위로한다.

 

같은 선상에서 비록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마지가 리플리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해준다거나 위로해주진 않았을지언정 필립의 장난으로 리플리가 등에 화상을 입자 마지는 그를 성심성의껏 치료하고 보필해주며 어렵사리 필립과 자신으로부터 떠날 것을 정중하게 요구한다. 그러나 두 영화에 등장하는 마지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마지는 필립에게 거듭 사랑을 확인받으려 노력하는 결핍의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질투심이 많은 인물로 나온다. 또 걸핏하면 필립과 말다툼을 하고 싸우는 충동적이고 직선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와 반대로 <리플리>에서의 마지는 보다 능동적인 인물로 구현된다. 디키에게 종종 투정을 부리기는 하지만, 그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또 사랑하는 연인이 죽은 후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마지가 그의 죽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슬퍼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리플리>에서의 마지는 그가 결코 자살했을 리가 없다며 역으로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두 영화에서 리플리의 성격 역시도 비슷한 듯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리플리가 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데 반해 <리플리>에서의 리플리는 대체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따라서 <태양은 가득히>와 <리플리> 속 서로 다른 성격을 보이는 마지와 리플리를 비교해가며 보는 것도 두 영화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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