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두 개의 세상이 만나는 경계에서 시작되는 노래

영화 《코다》
글 입력 2021.09.2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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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는 농인인 양친이나 후견인 사이에서 양육된 자녀를 일컫는 용어다. 80%의 농인이 농인과 결혼을 하고, 농인 부모가 청인 자녀를 출산하는 비율이 약 90%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다수의 농인 부모는 청인 코다와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청인 코다들은 어릴 때부터 농 문화와 청인 문화 사이 가교 역할을 하며 농인의 통역사이자 보호자로서 살아간다. 농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가족을 청인 중심의 세상에서 보호하고 대변해야 하는 코다는 국가를 불문하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고 한다. 국가적으로, 혹은 국제적으로 조직을 두어 활발히 소통하고 관련 의제를 논의하기도 하는 이들은 '농인과 청인의 경계'라는 표현으로 흔히 수식된다.

 

지난 8월 말 개봉한 《코다》는 농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코다 루비가 노래라는 새로운 꿈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이다. 노래가 취미인 루비는 좋아하는 동급생인 마일스를 따라 학교 합창단에 들어가고, 선생님으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음대 진학을 준비하자는 제안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루비가 통역사 역할을 하지 않으면 일상과 경제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 가족 때문에 시간을 내어 진학을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가족의 생업인 어업에도 문제가 생겨 식구 중 유일한 청인인 루비가 절실히 필요해지는 상황이 되고, 루비는 더욱 어려워진 환경 속에서 꿈과 가족 사이를 고민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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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의 가족은 화목하다. 빠듯한 경제 상황과 척박한 노동 환경 속에서도 모두가 힘을 모아 생계를 이어나가고, 부모님은 여전히 사이가 좋으며, 오빠인 레오는 본인 역시 농인임에도 청인 동생이 가족의 품을 벗어나 꿈을 좇을 것을 권유하고 북돋는다. 겨우 잡은 물고기를 헐값에 사들이고 얼토당토않은 명분으로 세를 부과하는 업자와 농인과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청인 어부들 때문에 이들의 일터는 하루하루가 투쟁이지만, 갖은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대안을 찾아 나가는 가족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루비의 친구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들에게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미세한 균열과 상처가 내재하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루비는 농인 부모를 두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고, 시간의 대부분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여 개인적인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 일상이다. 좋아하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다가도 가족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바로 달려 나가야 한다. 결국 음대 진학 준비에까지 차질이 생기자 루비는 가족에게 오랜 설움을 고백한다. 가족 역시 이러한 상황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청인의 의사소통 방식만을 고집하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루비의 부재는 당장의 안전과 직결된다. 청인의 언어만이 오가고 농인을 소외하는 세상이기에 요구되는 불필요한 희생이자 갈등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 부조리의 잔해는 결국 개인의 영역으로 떠넘겨져 마땅히 극복하거나 받아들여야 할 사정으로 치부되고 또 다른 희생과 갈등을 낳는다.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농인과 농인 가정을 대하는 사회의 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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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는 농인의 언어와 청인의 언어 사이 경계에 서 있는 통역자인 동시에, 두 언어의 영역이 부딪치고 불화하는 상황을 가까이서 목격하고 경험하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영화 속 루비 역시 마찬가지다. 두 영역을 원활하게 연결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도 두 영역이 서로 어긋날 땐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수도 없이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루비에게 노래는 자신을 규정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도구이다. 노래는 루비가 두 영역 사이의 중간자라는 상대적 위치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위치에 있게 하는 수단이다.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가족들과 자신을 무시하고 따돌리는 동급생들 때문에 노래를 타인에게 들려준 적이 없었던 루비는, 용기 내어 들어간 합창단의 선생님인 미스터 V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본격적으로 노래의 꿈을 꾸게 된다. 미스터 V는 루비가 노래를 통해 스스로 혼란에서 벗어나 자신을 뚜렷하게 규정할 수 있게 하는 산파의 역할을 한다. 그는 루비가 처음 학교에 왔을 때 동급생들이 놀렸다던 ‘농인 같은’ 소리로 노래를 해보라고 지도한다. 소리를 내는 데 소극적이었던 루비는 지도를 받고 당당하게 본연의 소리를 이끌어낸다. 감추고 싶었고 지우고 싶었던 상처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다. 타인이 조롱하든, 혹은 동정하든 상관없이 그저 자신의 생이 오랫동안 만들어낸 유일한 목소리였음을,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노래가 되어 누군가에게 전해질 수 있음을 자각하며 루비는 여태 느끼지 못한 자유를 경험한다.

 

루비는 결국 농인 가족의 생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음대 진학을 포기하고, 가족은 합창단 발표회에서 처음으로 루비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다. 루비의 재능을 반신반의했던 가족은 자신들이 들을 수 없는 루비의 목소리에 청인 관객들이 감동하는 광경을 보며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그의 세계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루비의 아빠는 발표회가 끝난 밤 딸에게 노래를 청하고 그의 목을 만지며 울림을 손끝으로 느낀다. 경계에 속박된 딸이 아닌, 그 자체로 온전한 루비의 세계에 다가선다. 다음 날 가족은 루비를 음대 오디션 현장에 데려다주고, 루비는 몰래 잠입한 가족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보며 수어와 함께 노래한다. 루비의 세계를 이해하고 다가선 가족들에게 이제 루비가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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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인 루비의 고민과 혼란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코다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더욱 크게 외치고 드러내는 방향을 견지하며 루비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청인과 농인을 가르는 이분법적 시각이 아니라 두 영역이 융화되고 공존하는 경계의 이야기를 가시화한다. 루비의 목소리가 혼자에만 머무르지 않고 노래가 되어 누군가에게 전해지며 생기는 작은 변화들로 인해 루비와 가족의 관계는 회복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고 들으며 서로의 세계에 손을 내미는 지점에서 루비도, 가족도 점차 자신을 완성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만난 한 코다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수어와 농문화가 어째서 농부모의 것이기만 하냐, 내가 그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고 그 언어가 이미 나에게로 왔으니 그것은 나의 언어이고 나의 문화이지 않냐.” 그렇다. 그렇게 코다 월드에서 코다의 언어와 문화는 전승되고 있었다. (박상은, ‘농인과 청인의 경계에 선 '코다'의 삶…"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루비가 음대 진학에 성공하고 가족은 농어를 사용하며 친밀하게 다가오는 청인 동료들과 함께 어업 생활을 순조롭게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결말은 여전히 농인과 장애인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현실의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두 개의 영역이 손잡는 곳에서 루비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가족이 또 다른 대화의 장으로 나아가듯 새로운 시작이 가능해진다는 메시지는 시사하는 감동이 크다. 루비는 ‘나의 언어’이자 ‘나의 문화’로 노래하고 가족 역시 그들의 언어와 문화로 루비의 노래를 느끼며 다음 악장을 준비한다. 작게 흘러가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그에 귀 기울였을 때 비로소 새로운 노래가 시작되는 것이다. 경계와 경계 너머의 세상을 대담하게 맞닥뜨리기를 선택한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조용히 빛나는 용기를 본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악장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지금의 세상에도 가장 필요한 마음이리라 생각한다.

 

 

참고 기사


박상은, ‘농인과 청인의 경계에 선 '코다'의 삶…"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국민일보 2017. 8. 1.)

이길보라, ‘[삶의 창] 나는 코다다’, 한겨레, 2016. 7. 22.

이지선, ‘농인의 자녀, 코다의 삶’, 한국일보, 2021.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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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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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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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mtank96
    • 의미 있는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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