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한한 상상력 저 너머로 - '인디애니페스트2021' 人비트人

글 입력 2021.09.19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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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되었던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주최 <인디애니페스트2021>에 다녀왔다. 2005년에 시작하여 올해로 17회를 맞이한 인디 애니페스트가 이번에 내세운 슬로건은 ‘人비트人’이다.

 

영어로 in between은 개재하는, 중간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용어로는 캐릭터의 동작 중 핵심이 되는 키프레임key frame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중간 프레임을 말한다. 인비트윈은 키프레임만큼이나, 아니 키프레임보다 더욱 중요한 프레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비트윈을 얼마나 늘이는지 줄이는지,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제작한 사람의 스타일이 크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번 <인디애니페스트2021>에서는 인비트윈을 人비트人이라고 표기하며 “또 한 번 보고 듣고 말하는 우리들의 사이를 이어주는, 인디 애니페스트!”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코로나로 비대면 만남을 이어가는 시국이기에 이 슬로건이 더욱 크게 와닿았다. 같은 것을 보고 함께 감상을 나누는 행위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서로 이어주기 때문이다. 팬데믹 속에서 사람이라는 키프레임을 잇는 중요한 인비트윈이 되어줄 <인디애니페스트>는 독립, 실험, 열정, 비전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며, 동시대 독립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꿈꾼다.


<인디애니페스트2021>은 독립비행, 새벽비행, 랜선비행, 아시아로, 아시아 파노라마, 해외초청, 릴레이 애니메이션, 스페셜토크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내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빌 플림턴 마스터클래스’와 ‘아시아로1’이다.

 

 


상상할 수 없는 상상력, 빌 플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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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애니메이션계의 악동’, ‘발칙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의 대가’. 모두 빌 플림턴에게 붙는 수식어들이다. 빌 플림턴의 애니메이션은 정말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잔뜩 과장된 캐릭터의 움직임과 행동, 그리고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만큼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신체는 빌 플림턴의 정체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스터 클래스의 상영은 1987년 작인 <당신의 얼굴>(원제-)부터 시작했다. <당신의 얼굴>은 90분 간 펼쳐질 빌 플림턴 세계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예고한다. 영상에 등장한 남성은 3분 22초 동안 노래에 맞추어 얼굴이 조각나거나 부풀어 오르고 터지거나 쪼그라들며, 고정된 프레임 속에서 한 사람의 얼굴로 얼마나 다양한 발상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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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플림턴 감독이 직접 선정한 총 13편의 작품은 그 뒤로도 그로테스크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뽐내며 이어진다. 그 중 스타일이 다른 몇 편의 작품이 있었는데, <선풍기와 꽃>, <햄버거가 될 뻔한 젖소>, <데미, 패닉에 빠지다>가 그렇다. <데미, 패닉에 빠지다>는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띈다.

 

<데미, 패닉에 빠지다>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마주한 빌 플림턴 감독이 각본가이자 제작자인 대니 레오나드에게서 스크립트를 받아 많은 협업자들과 함께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가족, 애인과 평범하고 보람찬 일상을 보내던 여성은 막연하게 느꼈던 역병이라는 재앙을 눈앞에 맞닥뜨리고 평화로웠던 일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경험한다. 결국 어머니를 떠나보낸 여성은 그 뒤로도 새로운 일상을 또 다시 살아간다.


이 애니메이션이 눈에 띄었던 것은 현재 우리가 지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을 다루기에 더욱 맞닿아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의 앞선 작품들과 달리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 플림턴의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메인 캐릭터로 선정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식물, 동물이다. 빌 플림턴은 그 특유의 상상력으로 사람이 아닌 것들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성격이 불어 넣어진 물건, 식물, 동물은 사람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행동과 생각을 함으로써 그 자체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의 작품 속에서 사람은 인격이 있는 존재보다는, 신체라는 ‘상상력의 장’을 가진 하나의 애니메이션적 도구로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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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데미, 패닉에 빠지다>에서 데미는 뉴욕과 가족과 애인과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고, 자신과 가족들의 일상을 덮친 감당하지 못할 재앙에 크게 슬퍼하지만 그 재앙을 딛고 다시 일어나는 인간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하게 보자면 다른 사람에게서 스크립트를 받아 제작한 작품이라서, 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빌 플림턴 감독 특유의 애니메이팅의 매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빌 플림턴의 포용력을 엿볼 수 있던 수작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빌 플림턴 감독의 대표작을 굳이 꼽으라면 아카데미와 각종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터되거나 수상했던 <뮤턴트 에일리언>,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 등 보편적으로 알려진 작품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마스터 클래스에는 이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빌 플림턴 감독이 이번 인디 애니페스트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빌 플림턴 애니메이션과 인디 애니메이션 산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채로운 아시아路



<아시아로>는 Asia Road, 즉 아시아路라는 뜻으로, 아시아 출신 감독들의 인디 애니메이션 단편을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그 중 고칼프 고넨 외 8명의 감독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아시아로1>을 관람했다. 3D 그래픽을 활용한 작품과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그린 2D 작품, 스톱 모션 작품 등 다채로운 기법을 사용한 애니메이션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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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로1>은 동족을 먹어야지만 공허와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가상의 종種들의 이야기를 통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고칼프 고넨의 작품 <랄>부터 시작한다. 그 뒤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언어유희와 동화책 삽화와 같은 사랑스러운 그림을 보여주는 코지 야마무라의 <북극곰은 심심하곰>에 이어, 알려지지 않은 야수를 연구하는 여성이 자연 속에서 야수를 마주하고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레넌 아다르, 네타 자이델의 작품 <관찰 대상>, 내성적인 소년이 연극부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수모와 수치를 로토스코핑 기법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 쉬바 사데그 아사디의 <크랩>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총 아홉 개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아시아로1>을 보고 나오며 83분이라는 시간 내에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기법과 분위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구성에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관람객들이 하나의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인디 애니메이션이라는 세계에 더더욱 큰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 ‘인디 애니페스트 2021’의 목적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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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본인이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거나 하게 될 창작자라면 더더욱 <인디 애니페스트>를 보러 가길 권하고 싶다. 특히 각 프로그램이 끝난 후 GV에서 아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디 애니페스트 2021>의 GV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해외에 거주하는 감독들과 거리적 한계 없이 질답을 나눌 수 있었다. 감독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조언, 에피소드 등을 들으면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인디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크게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 등 어떤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것과도 다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여 그 안에 새로운 세계의 규칙과 자신만의 상상력을 불어 넣음으로써 현실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지,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인디 애니메이션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온 <인디 애니페스트 202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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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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