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기운,지운] 홀로/어느 날의 일기/혼자가 아닌

5장/6장/7장
글 입력 2021.09.2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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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갑자기 혼자가 되어버린 일은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과의 다름을,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요즘 지은은 심심할 때마다 일기장을 읽는다. 일기장 속 기운과 다른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다. 비슷한 점이 많아서 같이 살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은과 기운은 언제나 세상과 서로를 향해 귀를 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었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알았다. 각자의 습관과 취향을 존중했고 차이가 그들의 사이에서 문제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자연스레 서로의 것이 스며들었기에 어느 순간 지은과 기운, 지운이가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해졌지만, 엄연히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었음을 지은은 느낀다.

이제 지은은 기운과 반반씩(혹은 지운이와 셋이서) 나누어 가졌던 것들을 오롯이 혼자서 즐긴다. 그러다 보니 기운을 만나기 전, 어렸던 자신이 좋아했던 것들을 하나씩 찾게 되었다. 지은은 혼자가 되고 나서 새로이 보이는 것이 있어서 좋았다. 한편으로는 기운의 목소리가, 때로는 지운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제 지은의 집에는 낮게 온종일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 뿐이다. 그래서일까. 혼자 사는 집은 지은에게 너무나 넓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은은 아무와도 같이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고양이, 강아지와 같은 반려동물과도, 지운이와도. 지은은 귀여운 아이들을 보면 그저 그들을 귀여워하는 일에서 끝내고 싶었다. 지은이 곁에 사람을 많이 둘 수 없었던 것은 항상 누군가를 자신이 상처 입힐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기운은 그런 지은을 보며 아무도 고슴도치인 줄 모르는 고슴도치 같아, 라고 말하고는 했다.

 

지은이 일기를 오랜 시간 단 한 줄 혹은 몇 개의 단어뿐이어도 써온 것은 남들보다 흐릿한 기억을 붙들기 위한 방법이었다. 어떤 사람은 사소한 것조차 사진을 보듯 선명하게 기억한다는데, 지은의 기억은 물을 잔뜩 탄 붓으로 그린 수채화 같았다. 세상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흐릿하게 바라보는 지은의 세계를 조금씩 진하게 물들여준 것은 지은의 곁에 있어 준 사람들이었다. 단연 기운과 지운이의 역할이 컸다.

지은이 양양에 내려와 서핑을 배우기로 한 건 활동적인 기운과 지운이의 에너지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들의 부재 이후에야 들었기 때문이고, 그 일이 꽤 재미있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다.

 

*

 

“이제 혼자서도 능숙하게 잘 타시네요. 아드님보다 더 잘 타겠어요.”

지은은 서핑강사의 오해를 정정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느새 친밀해진 강사와 서프보드 위에서 잔잔하게 파도를 타는 시간은 지은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큰 파도를 타는 짜릿함도 좋지만 잔잔한 물결을 느끼는 것도 좋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서로의 신상에 관해 묻기보다는 각자가 몰두하고 있거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묻고 답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좋아서 몰두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세계를 지은은 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베이킹을 좋아한다는 강사의 집에 초대받아 처음으로 빵을 구워봤다. 자신의 손에서 탄생한 먹을 것을 바라보는 지은의 사진을 기운과 지운이에게 보냈는데, 꽤 멋진 빵의 자태를 보고 놀라 바로 영상 전화를 걸어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며 슬며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곳에 내려와 지은은 오랜 시간 동안 일기를 쓴다. 한 앨범의 모든 트랙이 돌아가고 다시 돌아가는 동안 쓸 때가 많다.

 

 

혼자서 오롯이 공간을 꾸미고 시간을 보내는, 타인의 온도가 항상 곁에 머무르지 않는 세계가 궁금했다. 이제 지은은 그 세계에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다. 사실 여태껏 단 한 번도 누군가로부터 독립한 적 없었던 지은은 종종 자신이 세 번째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세 번째 삶은 고슴도치인 줄 몰랐던 고슴도치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 고슴도치를 기꺼이 품어준 곁의 사람들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되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혼자가 아니었던 어느 날의 일기

   

 

10월 29일

 

지운이와 기운이 노는 소리가 방문을 넘어 들어왔다. 읽던 책을 덮고 겉옷과 지갑을 챙겨 문을 열었다. 둘은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자기들 방으로 들어가 외투를 들고나왔다.

따라오게?

응!

네!

예전이라면 밖은 추우니 집에 있으라며 돌려서 이야기했을 텐데, 이제는 내게 말 한마디 안 건네는 그들을 상상하면 상처 입을 것 같다. 내 안온한 휴식을 방해하는 귀여운 부자. 결국 오늘도 간단하게 집 앞 편의점에서 나와 기운은 맥주를 지운이는 코코아를 마셨다. 지운이는 신나게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가 잠이 들었다. 잠든 지운이를 기운이 업었고, 나는 부자의 등을 바라보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지운을 업은 기운의 등이 마냥 지쳐 보일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설령 무겁다고 느낀다면 그 무게를 대신 가져가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가 아닌

   

  

기별도 없이 기운이 찾아왔다.

 

“하룻밤만 재워줘.”

지은은 기운을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났다.

 

*

 

그들은 한 공간에 오랫동안 함께 있어온 것이 무색하게 몇몇의 공통분모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겹치는 취향이 없다. 지금도 기운은 한낮의 소파에 드러누워서 낮잠 시간을 즐긴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낮잠 시간이란 걸 가져본 적 없는 지은은 한낮의 햇살을 베고 잠이 든 적이 없다. 태평하게 코를 고는 기운의 코를 잡아 비틀어도 그는 일어나지 않는다. 잠귀가 밝은 자신과는 또 다른 점이다. 예민한 자신 때문에 그들이 같이 살 때 현관에는 슬리퍼가 항상 놓여있었다.

 

하루라도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과 하루라도 맛있는 걸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은 사람과 말소리가 좋아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 태연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조심스러운 사람과 부주의한 사람.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과 밝음을 좋아하는 사람.

지은은 가끔 그들이 눈의 나라와 해의 나라에 살아서 영원히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을 지은은 그렇게 여겨왔다. 자신과는 반대편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은은 기운과 지낸 시간 동안 그들 사이의 차이를 힘겹게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지은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만 곁에 두었다.

 

그들은 말하자면 눈을 치워서 길을 만들고, 상대의 머리에 모자를 씌워주며 살아왔다. 지은은 항상 자신이 모자를 쓰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는데, 돌이켜보면 그 모자를 챙겨준 건 기운이었다. 지은 또한 기운보다 먼저 일어나서 미리 눈을 치워두었다. 지운이는 지은이 부지런히 치운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보여주었고, 기운이 가끔 까먹을 때면 그 대신 지은의 모자를 챙겨주었다.

지은은 덕분에 이제 기운과 지운이가 없어도 까먹지 않고 햇빛이 강한 날 나갈 때는 꼭 모자를 챙긴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항상 들고나가는 편이다. 지은은 자신이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전히 지은의 벽에는 항상 기운과 지운이가 챙겨주던 모자가 걸려있다. 여기서는 대부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은의 모자들을 보면 분명 기운은 웃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지은의 집에 처음 오자마자 현관에 걸린 지은의 모자들을 보고 웃었다. 지은은 그들이 없어서 그들을 더 자주 생각하고 떠올렸다. 그래도 자신의 집에 몸은 하나이지만, 세 개의 마음이 머무르고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다음 장 '거짓말'

 

 

[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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