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D.P.',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

'어떻게 해야 같은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글 입력 2021.09.1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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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 북한 대외 선전매체 ‘메아리’의 보도, ‘세븐일레븐’ 편의점 명예훼손 논란, 국방부의 공식 입장 등 끊임없이 이슈와 논란거리가 따르는 화제작이다. 처음에는 ‘군대를 모르는 내가 다뤄도 괜찮은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소위 말해 ‘남들 다 가는 군대’지만, 나는 가보지 않은 군대기도 하니 함부로 가타부타하기가 뭐했다.

하지만 만약 여성인 나에게도 의무적인 군 생활이라는 걸 경험할 수밖에 없는 날이 온다면?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군에 맡겨지게 된다면? 이런 생각과 함께 5화와 6화를 막 다본 지금. 나는 이제 주의 깊고 선하게만 다룰 수 있다면 이 작품이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어도 괜찮겠노라 믿는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DP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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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에 주의를 요합니다!
 
 

1. [D.P.], 당신이 경험한 게 전부가 아니다

  
때는 2014년. 드라마의 첫 장면은 신병 안준호(배우 이해인)를 괴롭히는 선임 황장수(배우 신승호)의 모습이다. 그리고 서사는 준호의 입대 하루 전날로 되돌아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입대 전날까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홀로 입영식을 치르고, 고된 훈련기간을 거쳐 그제야 헌병대로의 자대배치를 받는 준호. 하지만 빠릿하지 않으면 엎드려 뻗치고, 진흙 위를 구르고, 화생방을 견뎌야 하는 훈련과정보다도 그에게 참기 어려웠던 일은 내무반 내에서의 지독한 부조리였다.
 
못을 박아놓은 벽면에 일병 조석봉(배우 조현철)을 데려다 놓고 세게 밀치는 황장수와 ‘도대체 왜 저걸 당하고만 있어’라고 생각하기에도 무색하도록 공손한, 또는 태연한 내무반 안의 다른 병사들. 보아하니 그들에게는 황장수의 행동이 이미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이병이라면, 특히 ‘선임 마음에 안 드는’ 이병이라면 부조리에는 주인공도 별수가 없다. 석봉의 다음 차례가 된 준호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못 박힌 벽 앞에 서는데, 계속 밀쳐지다 위기감을 느낀 그는 결국 못을 피해버린다. 오로지 그것을 이유로 황장수의 (가래침을 모아 만든)로열젤리를 맛볼 뻔하고, 다음날엔 엄마의 편지를 낭독 당하고, ‘너 거지냐?’ 소리를 듣기도 하는 준호. 그때,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박범구(배우 김성균) 중사와의 인연으로 그는 군무 이탈 체포조 ‘D.P.’라는 보직을 제안 받게 된다.
 
D.P.(Deserter Pursuit)는 밖으로 나가 탈영병을 체포해 오는 병사들이다. 민간인처럼 머리를 기르고, 민간인들 사이에 녹아들어 불법적으로 군을 이탈한 자들을 잡는다. 그러니까 어느 군인에게나 절실할 ‘군대 밖’이, 임무가 생기면 활동하게 되는 근무지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충 재력 또는 인맥 덕에 그 자리를 꿰찬 듯한 상병 박성우(배우 고경표)는 임무를 받고 밖으로 나가 익숙하게 준호를 가라오케로 데려간다. 물론 그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 리는 없다. 준호가 박성우에게 휩쓸려 잔뜩 취해있던 같은 시간에, 체포해야 했던 탈영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이에 박성우와 그에 동조해버린 자신을 크게 원망하고 각성한 준호는 D.P.라는 보직에 주어지는 임무의 막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는데, 마침 부상으로 군 병원에 입원해있다 돌아온 상병 한호열(배우 구교환)을 새로운 조장으로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부조리와 탈영 사건,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던 군대 내에서의 배경들, 종국에는 준호의 내무반에서도 터지고 마는 커다란 사건까지. 드라마 D.P.는 준호와 호열, 그리고 석봉을 통해 ‘군기’를 빌미로 애매해진 인권에, 짙게 드리워진 군대의 그림자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군대의 경찰과도 같은 존재, 헌병대를 배경으로 하여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려진 D.P.속 군의 모습에 누군가는 “저거보다 심했어.”라고, 또 어떤 누군가는 “훨씬 덜했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저런 일은 없었어!”라고 단언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게다가 많은 관객이 자신 또는 주변 지인의 군 시절 경험을 토대로, 작품의 수위가 실제와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데 큰 관람 포인트를 갖곤 한다. 하지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당연하게도 우리의 경험은 그것의 전부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른 포인트를 가지고 D.P.를 한 번 더 정주행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점점 규모가 작아지기만 하고 있는 우리나라 군대에, ‘국방의 의무’라는 것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남 이야기가 아니게 될 수도 있으니까.
 

 
2. 그래서 에디터가 제시하는 D.P. 관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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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는 누구나 한 번쯤 짚고 넘어갈 만한 시간적 배경이 있다. ‘작품이 2014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D.P.를 관람하면 이 드라마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추 보이기 시작한다. 2014년은 특히나 군 부조리의 해였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웃픈 농담’으로서 나돌기에는 너무 참혹한, “참으면 누구, 터지면 또 다른 누구”라는 문장이 아무렇지 않게 오르락내리락했다. 특히 이 문장 속 두 인물은 모두 군 부조리의 피해자였고, 각자 다른 반응을 취했지만 결국 아무도 해피엔딩을 맞지 못한 채 언론에 보도된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즉, 군대에서의 부조리는 참는다고 멈출 수 있는 것도, 터뜨린다고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의미하는 일종의 표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D.P.는 사실적이면서도 이유 있는 훌륭한 미장센으로 그러한 시간적 배경을 적절히 그린다. 2014년 국군의 날 당시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군의 기강은 전우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병영을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고 연설했다. 또, 2014년은 신형 군복이 3년간의 혼용 기간을 지나 드디어 완전히 군에 자리 잡힌 해였다. 그래서 안준호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피자가게의 텔레비전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식 연설 장면이 흘러나왔고, 이후 안준호는 훈련기간 동안 구형 군복(일명 ‘개구리’)을 착용하다 자대배치를 받는 동시에 신형 군복(일명 ‘디지털’)을 보급받는다.

둘째로는 드라마를 보는 중간마다 D.P. 관련 2차 콘텐츠들과 온라인 커뮤니티(혹은 주변 지인)의 무수한 경험담 또는 고증들을 살피는 작업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비하고, 그 ‘안’을 들여다보며 그들을 작품 속 ‘병사1,’ ‘병사2’ 또는 특정 주요 인물 자리에 삽입해보는 것이다. 특히 후자의 작업은 우리에게 꽤 괜찮은 통찰력을 안겨준다.

그 일례로, 당장 D.P. 관련 유튜브 영상과 댓글만 살펴도 꼭 한 번은 마주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PTSD 온다.’ 특정한 일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말이 하고 싶을 때 요즘 네티즌들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온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전제가 함께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런 반응들이 많이 보일수록, 부조리가 아니더라도 군 생활을 하는 동안 D.P.에서 그려지는 것들과 유사한 재질의 상황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소리일 수도 있겠다. 군은 언제나 일반 사회에서보다 엄격한 환경과 생활 속에서 자아내지는 병사들의 노고로 이루어지는 곳일 테니까. 그런데도 이를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바로 네티즌들의 반응 사이사이 적지 않게 보였던 다음 내용에 있다. D.P.가 ‘지금 군대를 놓고 보았을 때도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고, 2014년을 배경으로 함에도 ‘군대는 여전하다’라는 반응을 얻는 이유가 다음 언급 속에서도 일면을 드러낸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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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개구리 시절 군 생활했던 나보다
꼭 유치원 보이스카우트 군대 다녀온 애들이 더 난리다.’

이 언급 안에는 자신이 복무했던 때의 부조리가 더 심했고 자신은 더 힘들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성격과, 훨씬 편해진 ‘요즘’ 군대 복무자들이 D.P.에서 등장하는 부조리에 왜 공감하고 ‘PTSD가 온다’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마음이 숨어 있다. 즉 정말 힘들었던 ‘예전의 진짜 군대’를 다녀온 자신은 괜찮지만, 자신보다 어리고 더 편한 군 생활을 한 이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조리를 보고 불평할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논리 덕에, 군 부조리는(특히 꼭 필요하지도 않은 억지 부조리는) 더 안전하게 시대를 관통하여 지금까지도 건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논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은 지독하게도 힘들었던 이병 시절의 분노를 후임을 통해 보상받고자 하거나, 그것을 반드시 다음 기수에게도 그대로 돌려주려 하는 무의식적 행위의 기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D.P.의 조석봉, 그는 황장수 무리의 각종 가혹행위와 방관에 철저히 시달리며 직접 고통스러워했던 인물이다. 심지어는 그런데도 준호에게 “우리는 나중에 애들한테 잘해주자”라고 이야기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에는 내무반에 자주 있지도 않았던 준호의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로, 후임들에게 오밤중의 폭언과 기합을 선사한다. 물론 석봉은 준호의 잦은 부재로 책임지고 가르쳐야 하는 후임들이 늘어나 본의 아닌 손해를 더 보기도 했다. 고참의 지시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해본 적도 없는 내리 갈굼은 조금 어설픈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 대사와 진심으로 분노한 것 같은 그의 몸짓 등을 곱씹어보면, 그의 행동에도 앞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마음이 어느 정도는 분명히 수반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가 뭘 얼마나 맞았다고! D.P.라 부대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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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포인트는 ‘조석봉’이라는 캐릭터 그 자체에 있다. D.P.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꼭 한 번쯤은 조석봉의 감정선을 주목하고 쫓아보자. 그러면 당신은 사실 준호와 호열보다도 견고하게 다듬어져 있고 메시지 또한 가장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는 주인공으로서의 조석봉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먼저, 과거 석봉은 미술학원에서 간디처럼 착하다는 의미로 ‘봉디’라는 별명을 가진 자상한 선생님이었다. 학원생의 그림에 본인보다 더 애정을 가지고 그것을 들여다보던 석봉. 유도선수였던 중학교 시절도 있었지만, 사람을 때리는 게 힘들어 관둔 후로는 그저 만화를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았다. 그런데 입대한 후로부터는 그런 것을 제대로 회상할 겨를도 없었다. 어떤 훈련과 일과보다도 괴로운 것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선임과 함께 덩그러니 남아있는 일이었다. 기호와 취향을 조롱당하고, 못이 박힌 벽으로 밀쳐져 뒤통수를 다치고, 황장수의 아래에서 엎드려뻗쳐 인간 의자 역할을 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개처럼 두들겨 맞고 지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불로 지져졌으며, 무엇보다 강제된 그의 자위행위는 황장수와 루이강만의 재미있는 ‘대공포 발사쇼’였다.

석봉에게는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넘쳐흐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특히 내무반에서는 다른 후임들의 직관까지 더해졌다. 물론 그들도, 준호도 함부로 선임들을 제지할 수 없다는 것쯤은 모르지 않았다. 그들이나 석봉이나 입을 꾹 다물고 참아야 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 “그곳은 군대고 석봉을 괴롭히는 이들은 선임이니까.” 그렇게 석봉은 다부진 체격과 웬만한 유도실력을 갖추고도 온 마음으로 모든 가혹행위와 방관들을 참아냈다. 그래서 스스로부터가 그런 부조리를 맨몸으로 감당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았고, 더욱이 맞후임이었던 준호에게는 절대 그 고통을 대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준호가 한 잘못으로 대신 혼이 나도 그를 배려해 석봉은 괜찮다고 말했으며, 준호가 영창에 갔을 땐 초코파이와 그림 메모를 챙겨 건네주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준호는 D.P. 활동을 하느라 부대와 내무반을 자주 비웠다. 그래서 툭하면 부재중인 준호에 석봉의 막내 생활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준호의 맞후임은 자연스럽게 그의 책임이 되었을 테고, 이전에는 준호만 잘 보듬으면 될 줄 알았는데, 후임의 후임까지 대신 보듬으려니 선임들의 질책과 폭력은 또 석봉에게 세트로 돌아갔을 터. 완전히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이자율 높은 빚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준호에게만큼은 좋은 선임이 되고 싶었던 석봉. 그가 준호에게 한다는 부탁이라곤 나갈 때 드로잉 펜 하나만 사다 줄 수 있느냐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준호는 탈영병 수사에 도움을 주었던 허기영의 빅맥세트는 사 갔음에도 석봉의 드로잉 펜은 잊어버렸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 그였지만, 그때 석봉의 속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있었을 것이다. 친구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 가서도 끓어올라 넘치기 시작한 분노를 어쩌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부탁을 잊고 미안해하는 준호에, 뒷전으로 밀려버린 드로잉 펜과 자신이 정말 똑 닮은 처지에 있노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4화 즈음부터는 온순했던 그가 완벽히 변했다. 선임의 지시라지만, 워낙 마음이 약해 유도를 그만두기도 했던 석봉이 오밤중에 후임들을 깨워 뺨을 때리고, 세차게 폭언하며 그들에게 기합을 주었다. 자리를 자주 비워도 그들의 맞후임인 준호의 이름을 외우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 여기에는 끝까지 준호를 챙기려는 마음도 수반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리를 비운 사이 석봉이 어떤 생활을 버텨왔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준호는, 오히려 맞후임들을 자상하게 돌려보내고는 그를 질책한다. 배려는 배려대로 했는데, 석봉은 못된 선임만 되어 정말 철저히 드로잉 펜이나 같은 꼴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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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드디어 찾아온 황장수의 전역 날. 지독하게도 자신을 괴롭혔던 황장수가 이제야 부대를 떠난다는 생각과 그간의 고통스러웠던 날들에 석봉은 억지로 나온 배웅 자리에서도 분노에 서려 떨리는 몸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라는 듯, 결국 훈훈한 분위기를 깨고 사과를 요구한다.

“미안하다고 말하십시오.”
“...알았다, 알았어. 미안하다, 미안해. 됐지?”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잠깐의 정색과 가벼운 받아치기식 사과, 방관자들의 분위기 무마였다. 그래서 그 날밤, 결국 석봉은 탈영한다. 자신의 고통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사과를 던지고 떠난, 내무반 사람들 모두에게 그를 우습게 만든, 황장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렇게 조석봉의 감정선을 쫓아 결말 앞까지 다가가 보면, 사실상 그의 입장에서는 황장수와 루이강만이 가해자가 아니다. 그가 그렇게 되기 전까지 안 도왔든, 못 도왔든, 군대라는 곳의 시스템 속에서 마지막까지 그를 헤아릴 줄 몰랐던 준호나, 마이웨이 군 생활을 추구했던 호열이나, 그 내무반의 심한 부조리를 알면서도 딱히 짚고 넘어가지 않았던 범구, 기영이나. 조석봉에게는 모두가 같은 자들이다. 그런데도 이미 막다른 길에 다다른 석봉을 말리며 “바뀔 수도 있잖아, 우리가 바꾸면 되지.”라고 말하는 호열은 얼마나 그를 힘 빠지게 하는가. 그는 더 설명하고 격분할 기운도 없다는 듯 냉소적인 코웃음을 친다.

황장수 무리의 가혹행위를 그들 중 한 명만 제대로 짚었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석봉의 운명. 오랫동안 지울 수 없는 상처는 남더라도, 끝까지 버티고 전역하여 그것을 조금이나마 묻어줄 행복을 만났을지도 모르는 석봉의 삶. 하지만 그는 결국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석봉의 코웃음은, 자신의 운명 하나 바꾸지 못한 곳에서 행여라도 더 큰 것이 바뀔 수 있을 리 없다는 의미다. 그놈의 6·25 때 쓰던 수통이 전부가 아니고.

끝으로 1화에서 석봉은 말했다. “아픔 없는 교훈에는 의미도 없지. 인간은 희생 없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까.” 그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한 대사였다. 그리고 6화 끄트머리에서 석봉은 또 이렇게 말했다.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이 일맥상통한 그의 믿음과 마음이 결국에는 적중했고 관객들을 울렸다. ‘만화’와 ‘오타쿠’는 그것을 조롱하던 황장수 무리보다 우위에 있었고, 허구적 서사의 캐릭터였을 뿐인 석봉의 2014년 코웃음은 2021년인 지금도 누군가를 눈치 보게 만들었다.
 
 

3. 군대, 지금은 좋아졌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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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는 확실히 적나라하다. 한국의 군을 배경으로 함에도 전 세계에 공개되었고, 해외에서는 군대 관련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호평을 사고도 있다. 우리나라 콘텐츠 소비자들도 열광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도(9월 15일 기준) D.P.는 콘텐츠 순위 TOP10의 반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편 8월 27일 D.P.가 공개되자, 9월 6일 국방부는 지금까지 각 군에서 폭행,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혁신적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브리핑했다. 또, 일과 이후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 환경을 조성해 가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듣던 중 반가울 뻔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다음날인 9월 7일, 해군 내 집단 따돌림 및 자살 사건과 그에 대한 대령의 은폐 시도가 군 인권센터를 통해 밝혀졌다. 사건은 피해자가 부친상으로 2주간 청원 휴가를 다녀온 뒤부터 ‘꿀을 빨고 있다’는 이유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겨레 인터뷰에서 D.P.의 원작 웹툰 작가 김보통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의 세대가 우리와 같은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도록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이 상처가 왜 생겼고, 누가 상처를 줬고, 어떻게 해야 같은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에는,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내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덧붙이자면 ‘이제는 좋아졌다’는 말이
‘그러니 이걸로 충분하다’로 귀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류는 그렇게 진보해 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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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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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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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래하는곰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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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소미
    • 노래하는곰좋은하루 보내세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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