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쩌면 진짜 한류 [음악]

글 입력 2021.09.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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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가 불러온 한류 열풍이 일본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진 지도 꽤 지나 이제 그 선두 주자는 BTS로 대표되는 한국 아이돌 음악이 차지했다. 역사적으로 활발하게 서로의 문화를 주고받았던 중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유럽까지 한국의 음악과 문화가 퍼졌다. 미국에서 들어온 팝에 한국적인 맛을 더한 케이 팝이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 진정한 한국의 매력을 담기에는 부족하다. 우리만의 전통과 문화가 섞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범이 내려와 대취타를 울리니 무궁화가 폈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즐겨 들었던 국악은 영화 전우치의 OST 중 하나인 궁중악사다. 판소리 같은 추임새와 피리 소리 같은 가락이 한껏 흥을 돋워서 꽤 자주 들었다. 원래 국악이 이렇게 신나는 노랜가 하고 싶어 다른 것도 찾아 들어봤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요즘 세대인지 ‘찐’ 국악에는 그다지 취미를 못 붙였다. 요즘 음악에 국악적 요소가 적당히 섞인 것들만 귀에 들어왔다. 그런 노래를 찾아 헤매다 ‘온스테이지’에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들었고, 그 뒤로 국악과 팝의 조합을 갈구하는 내 취향은 더 거세게 불탔다.

 

 

 

 

‘범 내려온다’의 영상에서 노래보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춤이 먼저 내 시선을 끌었다. 단순하면서 우스꽝스럽게도 느껴지는 몸짓을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댄서들이 멋졌다. 장군의 갑옷이나 사또 복장 같은 우리나라 전통복을 차용한 의상도 무대에 잘 녹아들었다. 노래도 팝에 국악을 살짝 더하던 이전의 노래랑 다르게 우리 노래인 판소리에 팝을 살짝 더했다는 점이 특히나 매력적이었다. 요즘 것에 우리 것을 살짝 더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것을 요즘 방식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것을 찾고 있었기에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조합은 완벽하게 내 욕구를 충족했다.

 

 

 

 

라비의 ‘범’이 다음 먹잇감이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운 여름만 되면 시원하고 경쾌한 소리를 주로 하는 일본 락이나 강한 비트에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힙합을 주로 듣는. 발라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날도 더워 죽겠는데 이별의 슬픔을 칭얼거리는 노래를 듣고 있자면 더 숨이 막힌다. ‘범’도 계절이 변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름에 들을 노래를 찾아보다 발견한 곡이었는데, 국악적 요소가 들어갔지만, 우리가 보여주지 않던 정서가 담겼음에 끌렸다. 들어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공격적인 느낌이 강하다. 구슬프거나 흥을 돋우는 것이 우리 음악에 담긴 정서라 이 색다른 느낌의 정서는 꽤 매력적이었다.

 

 


 

‘범’이 은근히 공격적이었다면 August D의 ‘대취타’는 대놓고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임금의 행차 때 연주하던 대취타라 그런지 힙합에서 말하는 스웩(swag)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BTS 멤버인 슈가의 곡이라는 점이 이 노래를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최근에 나온 BTS의 노래는 부드러우면서도 감성적인 가사와 트렌디한 멜로디의 곡이라 이런 묵직한 비트의 노래가 그 멤버의 곡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노래를 듣는 동안에도 그 미묘한 괴리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떠올리면 여전히 괴리감이 느껴지지만, August D라는 한 명의 가수라 생각한다면 그룹 내에서도 새로운 색을 보여주는 것이니 나쁠 건 없다. 오히려 이렇게 우리 것의 색을 선명하게 담는 노래를 그룹으로서도 하나쯤 해줬으면 싶다.

 

 


 

CL은 2NE1 시절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이었다. CL의 솔로 곡 ‘멘붕’때 부터 역시 YG 소속 가수답게 힙합 느낌이 세고 자기 개성이 강한 음악을 하는구나 싶었던 게 ‘+HWA+’ 뮤직 비디오를 보고 나서 더 확고해졌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인 종친부를 배경으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그녀만의 느낌을 담은 랩을 뱉는 모습은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어릴 적 자주 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를 각색한 가사에서 느껴지는 어른의 매력이 만드는 대비는 CL이 더는 아이돌이 아닌 한 명의 아티스트임을 증명했다. 소녀 같은 모습으로 일맥상통하던 걸그룹 시절부터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던 그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발전하고 있음에 그녀의 팬으로 남아있었던 걸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불휘는 깊되 척화비는 거두시게



대중가요는 힙합, 발라드, 팝처럼 미국 문화가 주류를 이루다 보니 어디서 찾아 듣지 않는 이상은 우리 전통 음악이나 판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 문화나 예술이 사람으로부터 태어나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기에 사람에게서 잊힌다는 건 죽음이나 다름없다. 누군가가 그 흔적을 남겨두지 않는다면 어느 시대에 잊힌 문화와 예술은 그 이후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많은 사람이 듣고, 보고, 찾는 것만이 살아남아 후대로 이어져 문화로 태어난다.


이미 세상은 모든 세계가 이래저래 엮인 글로벌 사회가 됐다. 우리 것만 찾겠다며 모든 새로운 문화를 배척하고 내 것만 지키려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자연도태 이외에 다른 결과는 기대 못 한다. 21세기에 척화비를 세우는 짓은 내 목에 내가 칼을 쑤셔 넣는 것밖에 안 된다. 그렇다고 줏대 없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다 받아들였다가는 우리의 본질을 잃어버린다. 근본 없는 생존을 오래도록 이어가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선택지는 뿌리를 지키면서 새로운 것을 나름의 기준으로 수용하는 것뿐이다.


국악이나 판소리처럼 우리 것을 담는 노래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의 손에서 많이 만들어져야만 한다. 지금은 젊은 우리도 언젠가는 기성세대가 된다. 기성세대는 젊은이였을 적에 만들어 둔 것을 그다음의 젊음에게 물려주는 순간부터 기성세대가 된다. 인간사회에서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젊은이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지금 젊은이들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아이돌이기에 그들이 우리의 문화를 양지로 끌어와 대중문화로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 것만 지키는 태도가 아닌 우리 것을 다양한 문화의 색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태도를 지향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문화인의 역할이다.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 나가는 젊은 세대가 우리의 것을 등한시하는 순간 우리의 것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자유를 외치는 시대에 이를 강요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젊은 세대에게 사랑받으며 한국의 것을 세계로 퍼 나르는 아이돌이 우리 것을 노래에 담고, 팬으로서 그들의 작품에 사랑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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