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거북이니까 느려도 돼

그런데 사실은 나도 토끼를 꿈꿔
글 입력 2021.09.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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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붙들어두는 것 같던 코로나 속에서도 시간은 정직했다.


어느새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많은 것을 갖고 싶어 손을 모래밭에 파묻고 달렸지만 정작 멈추어서 움킨 손을 펴보니 모래알들이 손가락 사이로 죄 흘러내린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뛰어간다. 그 뒷모습에 조바심이 들어 결국 다시 또 무작정 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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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내가 쉴 틈 없이 늘 바쁘게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여느 에세이집 제목처럼 얘기하자면 ‘할 일은 많은데 너무 한가해’ 상태랄까. 이 모순 속에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진다.


한가롭게 차를 마시다가도 준비해야할 것들이 떠올라 한숨이 나오고,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도 주변 지인들의 부지런한 행보에 조바심이 들었다.

 

*

 

내가 뒤처지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만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전에는 막연히 내가 잘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는데 요샌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나는 길치라서 모르는 장소에 가야할 땐 늘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준비하고 집을 나서야 했다. 무슨 일을 하든 그랬다. 내가 먼저 준비하고 도착해야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불안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했는데 왜 지금 같은 곳에 있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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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상 속에서 문득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빠른 변화 속에 나 혼자 천천히 가면, 밀려드는 불안과 노력을 놓아버리면 나는 사회에서 도태될까?


그렇다면 나는 자의로 도태되겠다.


*

 

자의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나는 유독 남이 시키는 것을 싫어했다.

 

오죽했으면 어릴 적 설문지의 ‘싫어하는 것’ 문항에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을 적어내기도 했다. 같은 일인데도 남이 시켜서 하면 흥이 안 나고 괜스레 하기 싫어졌다. 선생님은 웃으며 ‘연주야, 남이 시켜서 하는 건 누구나 싫어하지!’하셨지만 정말 그런가? 내가 좀 꼬인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취업 준비가 어떻게 다가왔겠나. 일단 내가 스스로 ‘취업’을 하고 싶은 것은 분명했기에 그를 위한 준비를 했다. 자격증을 따고, 자격시험과 공모전을 준비하며 남들이 한다는 건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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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삐 달리다 보니 졸업이 목전이었다. 생각지 못하게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어 잠깐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뭔가 이상했다. 나는 왜 휴학 없이 졸업하고 싶었을까? 나는 왜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꿈꾸게 되었을까? 내 방학은 언제부터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시간이 되었을까?


분명 내가 결정한 일, 내가 목표로 한 일인데 대답이 선뜻 나오질 않았다.


내가 유별난 게 아니었다. 다들 그렇게 살았다. 힘들어하는 주인공에게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그렇게 살아.’하는 대사가 너무 싫었는데 내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너도 그렇게 하라고.


‘자의로 도태되는’ 것은 정말 가능한 걸까?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 혼자 천천히 간다는 것이 가능키는 한가?


*

 

우리는 누구나 남들보다 빨리 달리고 싶어 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동경하고, 그들처럼 살기를 꿈꾼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느린 것을 백안시하게 된다. 심지어는 소설을 읽을 때조차도 서사의 진행이 느리면 하차를 선언하기도 한다.


우리는 달리는 말처럼 빠른 전개를 꿈꾸기에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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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거북이가 되기로 했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겠다는 게 아니다. 천천히 여유 있게 살겠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 그냥, 나 스스로를 거북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거북이를 느리다 탓할지언정 그 속도에 의문을 갖지는 않으니까.


같은 속도라도 빠르게 뛰지 못한 토끼는 비난을 받지만 조금 빨랐을 뿐인 거북이는 칭찬을 받는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조금 빠른 거북이인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몇 번이나 문장을 고치고 멈춰 섰다. 그냥 허울 좋은 자기위로 아닌가? 영혼 없이 찍어낸 뻔한 문장 같나? 싶어서 자꾸만 손을 멈추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나쁜가? 이 글은 그냥 지친 나와 같은 이유로 지쳤을 사람들에게 보내는 자기위로다. 이 글을 쓰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늘 하던 취업 준비를 하며 바쁠 것이고, 때때로 불안할 것이다. 그럴 때 그냥 입으로 내뱉어보는 것이다.


'나는 거북이니까 느려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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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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