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는 누구 편이야? - 매거진G Vol.2 [도서/문학]

적의 적은 내 친구인가?
글 입력 2021.09.0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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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G>는 ‘적의 적은 내 친구인가?’라는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질문을 독자에게 묻는다. 인간은 관계 맺기의 동물이다. 나의 편을 늘리고, 적을 배척하며 구별 지으며 살아왔음에도 내편과 네편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짓기는 어렵다. 또한, 나의 안전을 위해 내 편과 네 편의 경계를 강하게 경계 지을 수록 나타나는 혼란과 갈등은 오히려 나를 위험에 빠트리게 만든다.


지식교양잡지 <매거진G>의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런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다룬, ‘관계, 혹은 경계짓기’다. 1호에서 나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것에서 시작했고, 그 두번째에는 나를 둘러싼 경계에 대해 고찰한다. 관계, 혹은 경계 짓기를 통해 만들어진 나의 울타리 속은 나의 편이다. 그러나, 이내 내 울타리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은 곧 적이 되는가? 등 다양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누구에게는 자연스러운 상호과정이지만, 누구에게는 관계가 생존의 필요악인 관계에 대한 고찰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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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섹션 에서는 역사, 심리학, 식물세밀학, 에세이, 비평을 통해 관계 맺기의 경향을 살펴본다. 첫 장을 장식하는 아티클 <영원한 동맹? 그런게 있을리가…>는 ‘동맹’의 관계를 18세기 유럽,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의 지난 역사를 통해 살펴본다. 한때는 적이었지만, 어떤 때는 내 편이 되어버려 공동의 적을 무너뜨리는 경우를 역사라는 거울에 비춘다. 역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뿐이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관계’를 정의하는 <편 가르기의 심리학>이라는 아티클에서는 개인은 나의 허술한 성을 쌓아 올리고, 이 허술한 성을 지키려 예민하게 주시하고, 적을 밀어내려고 한다. 편 가르기에 집착하는 이들은 외부의 적을 다양하고, 복합적이기보다는 단편적이고 부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섹션 에서는 우리 생활에서 나타나는 관계 속 분란, 갈등을 다룬다. 이번 섹션에서는 특히 미디어 환경에서 구별 짓기를 통해 저널리즘에서 생성하는 내러티브 즉, 이목을 집중시킬 새로운 사실을 제조하는 공식을 말한다. 그리고 내러티브를 위해 이분법으로 구별 짓는 요소의 대립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에서 ‘딥페이크’는 실체를 재현한다는 점에서보다, “악의를 가진 자들의 머릿속에 있던 내러티브를 실재로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비평 <하지만 그럼 고슴도치는요?>에서 우리가 흔히 하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그에게 다가가려는 시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생각은 어쩌면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는 날카로운 말이 보인다.


 

“돌이킬 수 없는 상실과 꺼지지 않는 살의는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류되며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그들에게 산다는 것은 적과 한 팀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건 이 함께 살아감이 갈등의 해소와 무화가 아니라 그것의 보존으로부터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세 번째 섹션 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의 관계에 관한 생각을 더 넓은 범위로 넓혀줄 아티클이 있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개인이 만들어낸 ‘상상의 적, 상상의 친구’, 최초의 사회인 가정에서 가족을 적으로 돌린 개인의 내밀한 사정을 들여다본다. 반대로 인류라는 거대한 단위에서 살펴보는데, 인간의 야만성을 그래픽 노블로 표현했다.

 

네 번째 섹션 에서는 친구와 적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가장 적당한 거리의 이방인을 조명하며, 이방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과학 기술의 관점에서 바라본 아티클 <기술과의 수고스러운 관계 맺기>에서는 첨단 기술인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통해 방향이 달라진다고 한다. 즉, 새로운 기술에 마냥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과학 기술이 만들어지는 과학기술 생태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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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관계 맺기는 아직도 어렵다. 내 전부였던 친구가, 친구에게는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 이전에는 나의 전부였던 친구라는 존재가 지금은 멀어져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도, 나와 타인은 복합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버린, 각박해진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예전부터 이어왔던 관계를 끊어내고 있는 중이다.

 

혼자가 편한 나에게 ‘내 편과 네 편’을 구분 짓는 게 피곤하다 느껴지던 찰나,  다양한 분야의 필진들을 통해 한 개인이 생각할 수 있는 ‘나와 타인의 관계’의 범위 그 너머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 주변의 생활 속뿐 아니라 더 넓은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글들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한 차원 더 높여주는 지식교양잡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잡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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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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