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계의 숫자, 30 [도서/문학]

김애란의 단편 <서른>을 읽고
글 입력 2021.08.31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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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월 1일에 다가오는 새로운 한 해가 선물 같다면, 당신의 마음은 젊다는 것이고 아마 실제로도 젊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는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왼쪽에 ‘[문예중앙] 2011, 겨울’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이 작가가 단편 ‘서른’을 쓴 시기를 뜻하는 것인지 궁금해 찾아보았고, 김애란 작가는 1980년 생이었다. 그녀 자신도 ‘서른’을 쓸 때 서른 즈음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겨울이었다는 사실은 작품을 읽는 동안의 내 감상에 많은 것을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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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 수인은 자신이 따르고 의지하던 성화 언니로부터 그들의 추억이 담겨 있는 빵집 카드를 소포로 받고 둘의 과거를,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수인은 불문과를 졸업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선진국형 신개념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라는 곳에 들어가 다단계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성화 언니에게 느낀 것과 비슷한 것을 자신에게 느낀 혜미라는 학생을 다단계에 엮이게 만든 후에야 그녀는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화자는 서른이 되어 편지를 쓴다. 작품은 화자가 성화 언니에게 쓴 편지라는 서간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2.


 

인간의 손가락은 열 개라, 많은 것을 십의 단위로 끊어 생각한다. 물건 개수부터 나이 개수까지 정말로 많은 것이 그렇다. 십 대에는 새싹을 틔우도록 물을 잘 주고, 이십 대에는 줄기가 튼튼히 자라도록 볕을 많이 쬐고, 마침내 삼십 대에는 그럴듯한 꽃을 피워야 한다. 이것이 작품 속 ’20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라는 문장이 함의하고 있는 게임의 룰이다.

 

수인이 열아홉 재수생일 때 한국은 외환위기를 통과 중이었고 열심히 공부해 부모님께 효도해야 겠다는 마음을 더욱더 품게 된 것도 그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십 대에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누적된 탓에 그녀는 ‘빤해서 들을 게 없는 강연’에도 감동하였을 것이다. 20대를 ‘잘’ 보내지 못한(이 ‘잘’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것에 대한 대가는 30이라는 숫자를 앞두고 일시불로 치러야 한다.

 

처음 수인을 다단계에 끌어들인 전 남자친구의 ‘살아보니 사람이 제일 큰 재산인 거 같더라’라는 말은 지나고 보면 섬뜩해지는 구석이 있는데, 사람 사이의 관계 자체를 중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인맥을 다단계에 활용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치러야 하는 대가에는 20대에 자신이 가졌던 믿음의 대상들 또한 포함되는 것이다(애인, 꿈, 성실성 그리고 언니). 나이를 먹는 일은 빵집카드 포인트가 누적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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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품은 외적으로는 같은 독서실을 쓰던 언니에게 쓴 편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혜미에게 쓴 것에 가깝다. 재수생 시절 많은 것을 받은 언니의 엽서를 받고, 언니에 대해 생각하다, 자신은 그 누군가에게 ‘언니’가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의 글이다.

 

혜미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인이 이 편지를 부친다면 혜미가 있는 병원에 갔다는 의미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 편지를 부치는 일과 병원을 찾아가는 일은 사실상 동일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삼십 대를 맞이했고, 지나온 20대를 정리하기 위해 혜미를 보러 가기로 했다.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면 마음 한 켠에는 경악이, 한 켠에는 찜찜하지만 어쨌든 떨떠름한 응원과 비슷한 무언가가 자리 잡는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숲’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가사는 이렇다.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수인이 숲으로 돌아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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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에 살아서 참 억울하고 황당한 일 중에 하나는 타국들과 다른 이상한 나이 셈법이다. 극단적인 사례로 나는 늦은 생일 탓에 태어난 지 이주 만에 두 살이 되었다. 20대에 대한 아프니까 청춘이지 식의 신화화와 30대의 의무감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지워버릴 수 없다면, 현재의 2030을 무한 경쟁과 구직의 늪에서 구제할 수 없다면, 차라리 나이 셈법이라도 만 나이로 바꿔서 다 같이 두 살 씩 어려지는 게 현실적으로 도움 되는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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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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