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뮤즈로 비틀어 보는 세계, 윌리엄 웨그만 '비잉 휴먼' [전시]

글 입력 2021.08.30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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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세계관과 캐릭터라는 말은 더이상 게임이나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지 않는다. 두 단어는 매니악한 분야라고 여겨지는, 특정 소수가 즐기는 콘텐츠만이 아니라 엔터업계나 예술 분야에서도 점점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가수가 발표하는 앨범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세계관을 구축하기도 하고, 콘텐츠 생산자가 만들어놓은 세계관에 대해 상상하고 표현하며 다른 소비자들과 관심사를 공유한다. 본래의 인격과 모습을 뜻하는 '본캐'를 떠나 '부캐'를 만들고 소비잘이 다양한 '캐해'(캐릭터 해석)를 활발히 하게 된 것도 비슷한 선상에 있는 것 같다.
 
작가들의 작품세계라는 것도 어찌 보면 큰 틀 속에서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특별한 뮤즈를 전면에 세우는 작가에게는 색이 뚜렷하고 분명한 세계가 있다.
 
*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뮤즈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뮤즈는 예술가의 집착과도 같은 끈질긴 관찰의 대상처럼 무언의 파트너일 수도 있지만 예술가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 사진의 거장인 윌리엄 웨그만에게는 다양한 뮤즈가 있었는데, 50여 년 전 그의 가족의 일원이 된 바이마라너(Weimaraner) 반려견 한 마리가 카메라 앞에서 능숙한 모델의 자질과 열정을 뽐내며 작품의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되었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사진작가의 이름을 본 따 반려견의 이름을 ‘만 레이(Man Ray)’로 지었다. 이후 만 레이는 생기 있는 모습을 자랑하는 웨그만의 첫 번째 반려견 뮤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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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 Cut to Reveal, 1997
칼라 폴라로이드 Color Polaroid
24 x 20 inches (61 x 51 cm)
© William Wegman

 

 

1970년대 후반 웨그만은 완벽한 크기, 강렬한 색상, 즉시성이라는 특성을 지닌 대형 폴라로이드 사진을 이상적인 표현의 수단으로 삼아 즉흥적이고 우연한 순간의 포착을 작품에 담았다.

 

폴라로이드 시대가 저물자 웨그만은 디지털 사진으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새로운 매체에서도 사진크기, 뚜렷한 색상, 스튜디오 촬영 등 폴라로이드 작업의 필수 요소를 재탐구하였다. 웨그만의 작품 세계에는 반려견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작가는 엄선된 세트장, 의상, 소품을 통해 입체주의, 색면회화, 추상표현주의, 구성주의, 개념주의를 포함한 예술 사조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다.

 

웨그만은 다양한 사진 장르에 매료되어 풍경, 누드, 초상, 르포르타주, 패션 포토그래피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윌리엄 웨그만 작품의 주제는 과연 반려견에 불과한 것일까? 전시에 등장하는 주부, 우주 비행사, 변호사, 성직자, 농부, 도그 워커 등 각양각색의 의인화된 반려견 모델에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자신감에 찬 위풍당당한 태도에서부터 유약하고 결단력 없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인간다움에 초점을 맞춘 웨그만의 작품을 이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별한 뮤즈


 
뮤즈는 본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학문과 예술의 신으로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다고 알려져있다. 이 의미가 계속 사용되며 예술가들에게 지금도 뮤즈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사람이나 모델의 의미로 쓰인다.
 
윌리엄 웨그만은 그의 반려견인 바이마라너와 오랜 뮤즈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주제에 맞는 자세와 표정, 눈빛으로 자신이 얼마나 영특하고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 모델인지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특별한 모델이라는 호기심으로 작품을 들여다보겠지만 눈을 오래맞추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 당신에게 떠오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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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리 Psychology Today, 2000

흑백 폴라로이드 Black & White Polaroid
24 x 20 inches (61 x 51 cm)
© William Wegman

 

 

'우리같은 사람들'과 '환각' 섹션에서는 모델이 바이마라너였기에 가능한 몇 가지 감상이 있었다. 머리색, 얼굴색과 주름으로 할 수 있는 구분이 옅어진 상태에서 다양한 계층과 성별, 직업을 가진 바이마라너들이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조금 새로웠다. 자세히 보면 주제와 찰떡처럼 어울리는 눈빛을 한 바이마라너들에게서 같은 시대를 각자 살아간다는 동질감이 느껴졌다면 믿을 수 있을까.
 
 

바이마라너의 세계 속으로

 
바이마라너들은 앞서 말한 섹션에서처럼 인간의 옷을 입고 비숫한 사고를 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분명 그들만의 세상을 갖고 있기도 했다.
 
 
36085_Cursive Display_2013.jpg
흘린 모양새 Cursive Display, 2013

피그먼트 프린트 Pigment Print
43 x 34 inches (112 x 86 cm)
© William Wegman

 
 
사실은 인간과 함께 색면추상과 입체파 사조를 누렸음은 '색채면'과 '입체파' 섹션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세계에서 바이마라너는 잭슨 폴록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창조하고 조르주 브라크의 먼 친척이 되기도 한다.
 
웨그만은 이 예술가들과 기존의 추상미술, 입체파 작가들에 맞서 새로운 시도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우리가 알던 미술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작품 속 바이마라너들의 독보적인 오브제 활용과 자세를 통해 말하고 있다.
 
바이마라너들은 사실 인간을 통해 공 물어다주기 등의 운동을 하고 있었고, 화려한 패션 아이템도 활용할 줄 아는 뛰어난 미적 감각도 갖고 있었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은 위트처럼 느껴지지만,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면 실제일지도 모른다.
 
 
36138_Constructivism_2014.jpg
구성주의 Constructivism, 2014

피그먼트 프린트 Pigment Print
44 x 57 1/3 inches (112 x 146 cm)
© William Wegman

 
 
기존의 미술을 비틀어보고 또 다른 세게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다. 명품 트레이닝 복을 걸치고 있거나 고민이 많아보이는 바이마라너의 모습은 작품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아니었다면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한편으로 피사체의 다양성과 인간의 좁은 시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새로운 미술 세계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반려견이 휴먼이 될 수 있다는 상상으로, '비잉 휴먼'의 유쾌함을 경험해보자.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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