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레오 까락스의 미래 도시에서는 [영화]

영화 <나쁜 피>(1986), 레오 까락스가 늘어 놓는 젊음의 파편
글 입력 2021.08.3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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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메시지가 내 머릿속을 꽉 채우게 되면 이 상태에 최선을 다하느라 그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건 불과 5일 전의 일이었다. 레오 까락스 감독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잘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반복했다.


생각이 단단해질수록 글에 대한 고민이 커져 가는 것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다. 이럴 때 제 시간에 글을 업로드 해야 한다는 사실은 무언의 독촉이 되어 주었고 나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그의 작품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나는 이렇게 경직되어 있는지 이야기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를 들여다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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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TBO

사랑이 없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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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는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차가운 것 이상으로 창백해 보이는 이 도시는 STBO라는 질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확히는 사랑 없는 섹스를 하는 이들이 STBO에 걸려 몸살을 앓는다. 라디오에서는 젊은층 사이에서 질병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알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 없는 관계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동시에 알린다.


STBO는 단순하고도 명료하다. ‘질병 감염 유무’라는 결과로부터 행위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는 이 질병은 반응을 숨길 수 없는 리트머스 시험 용지 같다. 영화에는 커다란 사건이랄 것이 없어 질병으로 인해 죽는 사람도, 사랑 없는 섹스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등장하지 않지만 STBO는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스토리의 상징으로 은은하게 남아 있다.


이 설정만으로 감독은 관객들이 자문하게끔 한다. 그래서 나는 STBO로부터 무사한가? STBO가 없는 이 시대에서 우리는 사랑 앞에 자유로운가. 아프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가. 감염이라는 진단 없이도, 특별한 외상 없이도 자주 아프고 좌절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 설정은 불편하게 느껴지고 불편해서 와닿는다. STBO는 먼 미래가 아닌 나의 오늘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레오 까락스의 STBO에 관한 설정은 차라리 통쾌하다.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감염이라는 진단만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한 것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감염만이 만병 통치약이 되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같은 시간을 나누었지만 같은 마음을 나눈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이 관계는 어떻게 될까. 감독은 그에 대한 결과를 보여 주지 않은 채 판을 짜 놓고 자리를 뜬다. 영화가 보여 주는 세계가 아닌 현실에서 머리 싸매야 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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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향해 이따금 아주 가까이 다가가지만 또 다시 멀어져 버려요

그게 날 너무 힘들게 해요 그게 내 삶이에요

수수께끼 같은 무언가가 우리를 묶어 놓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빨리 풀리거나 안 풀리면 사랑은 끝이죠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 멈추질 않는 혈우병처럼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게 된다는 안나(줄리엣 비노쉬)는 말한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다 다시 멀어져 버리는 것이 내 삶이고, 수수께끼 같은 것이 사랑이라고. 안나는 눈물이 많고 가진 사랑이 크지만 제대로 주지 못하고 받지도 못한다. 안나를 웃게 하려 안간힘 쓰는 알렉스(드니 라방)에게 가진 사랑을 주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쁜 피>의 배경인 이 미래 도시에서는 서로 마주하지 못하고 꼬이기만 하는 ‘수수께끼’ 같은 관계들만이 범람한다. 영화 초반, 알렉스는 이미 자신의 연인이었던 리즈(줄리 델피)에게 이별을 고했고 리즈는 알렉스를 잊지 못한다. 그런 리즈를 알렉스의 친구는 사랑하고 곁을 맴돈다. 안나는 돌려 받을 수 없는 사랑을 주는 것으로 슬퍼하지만 알렉스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꼬여 버린 실타래 같은 수수께끼 속에서 명확하게 사랑을 말해 주는 것은 어쩌면 STBO 검사 결과뿐일지도 모른다.

 

 


모던 러브

1층의 줄리엣이 5층의 크리스토프에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몰랐다가 다른 관객들의 평을 읽고 난 뒤 알게 되었던 사실은 <나쁜 피>에서 젊음의 생동을 느낀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보는 내내 눈은 즐겁고 입은 텁텁하기만 했던 나는 젊음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삼키기 싫은 덩어리를 눈앞에 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젊음을 규정하는 일은 재미없고 이미 규정되어 있는 남의 젊음을 훔쳐 보는 일은 더 재미없는 것이지만 그의 이야기는 젊음인 줄도 몰랐기 때문에 계속 보게 되었다.

 

라디오에서 DJ는 말한다. “다음 곡은 1층의 줄리엣이 5층의 크리스토프에게 보이는 데이빗 보위의 ‘모던 러브’입니다.” 1층의 줄리엣은 5층의 크리스토프에게 모던 러브를 선물했고 모던 러브가 흘러 나오는 이 밤은 평소보다 더 덥다. 알렉스는 핼리 혜성이 지구 밖 만 킬로를 지나고 있어 며칠간 더 더울 거라 말한다.


마주하는 사랑이 등장하지 않는 <나쁜 피>에서의 법칙 상, 이 더운 밤 크리스토프는 모던 러브를 듣고 난 뒤에도 줄리엣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노래를 신청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그것이 <나쁜 피>가 시사하는 현실이다. 교차하는 줄리엣과 크리스토프의 사랑 위에서 교차하는 사랑을 안고 있는 알렉스는 달린다. 배를 안고 때리다가 몸을 펴고 달리는 그는 뛰고 있지만 날고 싶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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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날고 싶어 생동하는 알렉스에게서 보이는 것은 뜨거움이 전부가 아니다. 큰 동작으로 뜀박질하는 알렉스를 담는 화면은 너무도 서늘하고 어두워서 그에게 이입하게 되기도 하고, 먼 발치에서 관조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알렉스의 뜀박질은 내 것이 되었다가 다시 영화가 된다.

 

 

안나, 순간의 사랑을 믿어요?

순간적으로 찾아와 영원히 지속되는...

 

 

영화에서는 믿음과 믿을 수 없음 또한 공존한다. 질주하던 알렉스는 방향을 틀어 안나가 있는 곳으로 간다. 안나에게로 가 던진 ‘순간의 사랑을 믿느냐’는 치기 어린 질문에 안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하는 알렉스도 순간의 사랑을 완전히 믿지는 못하는 것 같은 눈치다. 믿을 수 없지만 믿어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알렉스가 뜀박질하는 동안 흘러 나왔던 보위의 <모던 러브>에서는 현대적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시도했다고 노래한다. 믿고 싶어지는 순간 믿을 수 없어지고 믿을 수 없는 순간에 믿게 되는 미끄럽고 위태로운 것. 믿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고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은 믿거나 말거나 할 문제가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1층의 줄리엣이 5층의 크리스토프에게 음악을 선물하고 알렉스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어쩌지 못해 전력 질주 해 버리고 마는 것이 사랑이고 살아 있음 그 자체다. 감독은 영화 속에 여러 장치들을 숨겨 놓고도 사실 사랑이라는 것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사랑으로 인해 눅눅해진 것들을 털어 버린다.

 

 


미숙함

젊음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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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겐 미숙함이라는 젊음의 선물이 있어.

 

 

알렉스와 안나, 리즈와 한스. <나쁜 피>에서는 엇갈리는 관계 속에서 능숙한 이들은 없고 미숙함 속에 살아가는 이들만이 등장한다. 알렉스는 리즈에게 미숙함이란 젊음의 선물이라 말하고 리즈를 떠나지만 그런 알렉스도 젊음의 선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스는 리즈를 사랑하고 리즈는 알렉스를, 알렉스는 안나를 사랑한다. 마음들이 교차하는 그 끝에 있는 안나는 영화가 끝나갈 때쯤 더운 밤의 알렉스처럼 달린다. 어쩌면 더운 밤의 알렉스보다 더 뜨겁게 달린다. 활주로 위를 달리는 안나의 측면을 담던 카메라는 클로즈업 된 상태로 안나의 얼굴을 담았다가 상체를 모두 담는다. 양팔을 뻗고 달리는 안나의 팔은 곧 날개처럼 보이고 하늘을 나는 듯 보이는 안나를 진득하게 담다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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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BO와 모던 러브와 미숙함. <나쁜 피>에서 레오 까락스 감독이 보여 주는 ‘젊음’의 파편들이란 이런 것이고 정면을 응시한 채 날아가는 안나는 누구에게나 비릿한 ‘나쁜 피’처럼 남아 있는 어떤 시절을 상징한다.


레오 까락스의 영화는 명사를 명사 그대로 뱉어 버리기보다는 특정 상징으로 만들어 놓고 관객들을 설득시키거나 설득시키지 않는다. 관객을 굳이 설득시키지 않는 태도는 아이러니 하게도 영화의 메시지에 설득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를 부여한다. 이 자유로움 속에서 나는 듯 달려 나가는 안나가 주는 통쾌함을 누구든 느껴보기를 바란다.

 

 

[박이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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