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도망가자

고마워, 나도 너와 함께 도망갈게
글 입력 2021.08.3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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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자


 

좋아하던 노래를 책으로 들을 수 있다는 건 꽤 욕심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 보기로 했고, 50페이지 내외에 책 내용은 기존에 알던 가사뿐인 그림책을 한 권 받게 됐다. 원곡인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 속 정승환의 '도망가자', 유튜브에만 업로드된 DAY6 Young K와 DAYBREAK의 '도망가자'. 즐겨 듣는 여러 버전의 '도망가자'를 유튜브 재생목록에 줄지어 넣어두고 표지를 넘겼다.

 

'도망'. 어감이 그리 좋은 단어는 아니다. 단어만 들어도 홀로인 느낌. 꼭 깜깜한 한밤중인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내가 넘긴 표지 속 그림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표지에 뿌려진 작은 금빛 알갱이들과 같은 색으로 쓰인 제목 덕에 실제로도 빛나고 있었지만, 제목 뒤로 보이는 푸른 바다와 노란 해변, 그 위를 걷는 한 사람, 그 뒤로 발자국을 맞추는 하얀 강아지 한 마리는 부러울 정도로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원곡 뮤직비디오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노래는 무거운 짐을 지고 버티고 있는 어느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된다. 같은 노래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지만, 반려동물과 함께한 삶의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 일러스트를 그린 곽수진 작가의 시각은 새로웠다. 이 책은 가수 선우정아가 들려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로이자, 작가 곽수진이 보여주는 반려동물과 사람의 마지막 여행 이야기다.

 

몸집이 강아지와 비슷했던 아주 어릴 때도, 대학교를 졸업해 학사모를 썼을 때도 늘 곁에 있었던 반려견. 어디서든 늘 고개를 들고 바라봐 주는 모습.  모두가 잠든 도시의 밤, 화사하게 꽃이 만발한 동산, 반딧불을 가로등 삼아 달려보는 자전거 위, 세차게 내리는 빗속, 한적한 어느 숲속, 혹은 가장 높은 고개의 등대 아래. 그 긴 시간과 그 수많은 공간 속에서 나는 얼마나 변화하고 그 모습은 네게 얼마나 다르게 느껴졌을까.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너는 나와 변함없이 함께해 주었구나.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한 경험이 없음에도, 작가의 얼굴조차 모름에도, 그녀가 어떤 반려동물과 함께했는지는 더욱 알지 못함에도 나는 이 짧은 그림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보낸 마음을 위와 같이 읽어냈다. 한 줄 한 줄 눌러 읽으며, 한 줄 한 줄 손으로 어루만지며, 한 줄 한 줄 마음에 담았다.

 

 

 

'우리' 도망가자


 

책을 마무리하며, 선우정아는 실은 이 노래가 그녀가 힘든 시간 속에 있을 때 가장 가까이에 있어 줬던 사람을 위해 쓴 사적인 'Serenade'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래를 만들고, 점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게 되자, 처음 이 세레나데의 주인공이었던 그에게 주고 싶었던 마음보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위로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욕심이었다. 이 노래가 세상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이 노래는 그런 마음으로 일궈낸 작품이었다.

 

평소에 자주 듣는 노래이고, 주변에도 많이 소개했고, 이전에 호피폴라 '너의 바다'를 소개하면서도 이야기했던 곡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완성했는지는 처음 듣게 되었다. '대단하다', '멋지다'라는 감탄보다도, 우선 마냥 고마웠다.

 

'도망가자'라는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도망가는 법'을 알려주었는지. 사실 나는 이전까지 이 곡을 완전히 청자 입장에서만 이해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나를 데리고 어디든 함께 가자, 그리고 씩씩하게 돌아오자고 말해 주는 목소리에 든든했고 고마웠다. 하지만 며칠 전, 힘듦을 툭 털어놓은 친구의 메시지에 이 작품을 읽는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았다.

 

친구들이 힘들다, 속상하다, 무기력하다 나에게 털어놓으면 그 또한 고맙다. 혼자 앓거나 주저앉지 않고 내게 털어놔 주었다는 사실이 고맙고 내게 조금이나마 털어놓음으로 인해 딱 그만큼이라도 네 짐이 가벼워진다면, 내게 그 기회를 줬음에 고맙다. 언제나처럼 꼭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네가 내게 보내주는 말과 내게 네게 보내고자 하는 말이 결국 같구나.

 

조금 더 오랜 시간 전에, 힘들다는 나를 향해 분명 네가 해준 말이었는데 오늘은 내가 너를 향해 똑같은 말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스스로 '조금 못해도 괜찮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조금 쉬어도 괜찮다'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같은 마음, 같은 말인데 그 말이 상대를 통해 흘러나온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도망가고, 다시 돌아올 용기를 얻는다. 내가 이 노랫말을 부르는 사람, 누군가에게 도망가자고 손 내미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음을 알았고, 그 상황에서도 난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음을 알았다. 마치 선우정아가 이 노래를 완성하면서 큰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도망가자'를 읊조리며 나는 상대에게 도망가자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와 동시에 나 자신에게 도망가자고, 그래도 되고, 그럴 수 있다고 마음을 굳게 다지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함께하는 도망은 어둡지도, 가엾지도 않다. 우리의 도망은 아마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떠나는 도망은, 결국 평생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될 테니까. '우리', 도망가자.

 

 

 

이건하 컬처리스트 tag.jpg

 

 

[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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