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몽환적인 위로 - 향수 슬리핑 듀(Sleeping dew)

꽃길만 걸으라는 응원 메시지
글 입력 2021.08.3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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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걸어갈 때,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 비 온 후 창문을 열었을 때. 이러한 ‘때’만으로 떠오르는 냄새가 많을 것이다. 튀겨진 호떡은 고소 달콤하며 파닥이는 생선에선 바다에 짭짤함을 맡을 수 있다. 책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나뭇결 냄새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고 비 온 땅에서 올라오는 젖은 흙냄새는 상쾌하다. 음식물 쓰레기, 휘발유처럼 역한 냄새부터 방금 설명한 냄새들까지 세상은 냄새로 가득하다. 아쉬운 건 이 냄새를 세분화해서 표현할 수 없단 점이다.


냄새란 독특한 성질이 있어 아무리 잘 표현해도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냄새를 떠올리게 할 수 없다. 사물은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색은 스포이트로 빨아들여 알려줄 수 있고 말은 따라 하고 음악은 입으로 비슷하게 흉내 내 부를 수라도 있을 텐데 향수는 저장이 불가하다. 황진이는 시에서 긴긴밤을 자른 후 겹겹이 말아 베개에 넣었다가 당신이 오실 때마다 조금씩 풀어쓰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내게는 향이 그렇다. 지금 맡은 이 향을 잘라내어 저장했다가 나중에 다시 맡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향이란 쉽게 산화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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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세상에서 가장 순간적인 감각이다. 향을 저장할 수 없기에 모든 냄새는 귀하고, 또 강렬해서 기억의 매체가 된다.

 

꽃밭을 거닐며 맡은 장미 향은 10년 전 프러포즈 받았을 때의 장미 꽃다발을 떠올리게 하고 치킨집 기름 냄새는 아빠가 사 온 전기 통닭을 먹으려고 달려들던 유년 시절을 상기시킨다. 매번 같은 향수를 쓰는 사람은 백화점 1층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아른거린다. 헤어진 애인이 사용한 향수는 다신 맡을 수 없다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마냥 좋은 추억만 남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지만, 대체로 향기와 이어지는 기억은 미화되어 아련하고 행복하게만 느껴진다.


향수 전문 브랜드 오브뮤트는 “of+mute” 라는 뜻을 가진 향수 브랜드이다. 수백의 말 대신 하나의 향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 브랜드는 향이 가진 특성과도 잘 어울린다.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그중에서도 “Sleeping Dew”의 주축이 되는 향인 은방울꽃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태양의 신인 아폴론이 그의 아홉 님프를 위해 뿌린 꽃이라고 알려져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부드럽고 향긋한 땅만을 밟으라는 아폴론의 다정함은 현대의 소위 ‘꽃길만 걸으라’는 응원 메시지와도 비슷하다. 매일 지치고 피로한 현대인을 요정처럼 대접하는 이 향은 과연 편안하면서도 다정하다.


첫 향은 달큼한 봄바람 같고 시간이 지나면 서늘한 여름날 나무 그늘 같다. 부드럽게 치는 흰 여울을 바라보는 듯 춥지 않은 눈밭 길을 거니는 듯 몽환적이다. 설명만으로 향이 맡아진다면 참 좋을 텐데. 향수를 맡고 느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 향은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다. 그렇다고 존재감이 흐리지도 않다. 코를 찌르도록 강렬하지 않은 대신 이따금 기분 좋게 맡아진다. 기분 전환을 꾀하기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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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장기화는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생길 만큼 사회 전반적인 침체를 가져왔다. 마스크를 잊고 밖으로 나가는 일은 점점 드물어진다. 숨쉬기 힘들고 갑갑해 불편하단 생각도 사라진다. 낯설던 행동이 익숙해지고 방역 일상으로 다가오지만 휴식과 여행 또 일과 생활을 잃어버리는 일은 도무지 적용할 수 없다.


맑은 하늘 쨍한 햇빛에도 여행을 가지 못한 지 2년이 되어 가고 곧 돌아오는 명절에도 온 가족이 모이기 힘들다. 아이들은 친구들 얼굴조차 모른다. 1년 전 여름에는 빨리 코로나가 끝나면 좋겠단 말을 했는데 전 국민이 백신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도 지금은 코로나가 과연 끝나기는 할지 의아하다. 편안한 쉼터가 되어야 할 집을 감옥처럼 느낀 지 오래이다.


이런 시기,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적응일지도 모른다. 금방 나아질 거라고 헛되게 기대하지도, 점점 안 좋아지기만 할 것이라고 절망하지도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과거엔 당연한 일이고 필수였던 꽃놀이, 바다 구경, 친구 놀기 등 할 수 없는 일을 슬퍼하기보다 이런 시기이기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조금은 더 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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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상 아주 부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그중 하나로 향수를 추천해본다.


코로나가 비말 감염되는 통에 가장 특히 오염을 조심하는 부위는 코와 입이 되었다. 대역 죄인이 된 코에게 집에서만큼은 자유를 주어보자. 마스크를 쓰는 탓에 풀이며 흙냄새처럼 은은한 자연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요즘, 자연의 냄새를 재해석한 향수는 훌륭한 대체품이 될 것이다. 화상 전화가 대면하는 일을 대체 하듯이 말이다.


모두가 지친 지금, 이 향이 포근한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피로가 조금이나마 덜어지길 바란다. 모든 일이 다 지난 후 향을 맡았을 때 떠오르는 기억이 눈 깜빡할 사이 지나간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닌, 미화되어 그땐 그랬지 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이 힘든 날을 견뎌낸 당신이 향을 맡으며 은은히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아폴론처럼 향으로 된 꽃길을 만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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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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