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뜨거운 첼로의 세계 속으로: 첼리스트 배지혜 초청 독주회

글 입력 2021.08.2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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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0일 금요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첼리스트 배지혜의 독주회가 있었다. 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밤이라 그런지 예술의전당을 향하는 발걸음이 유독 가볍고 상쾌했다. 이번 공연은 서울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음대 그리고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 동문회가 후원하는 공연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유독 음악당에 사람이 정말 많았다. 콘서트홀에서도 당일에 무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도 있겠지만, 첼리스트 배지혜의 리사이틀을 찾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근래에 갔던 챔버홀 공연 중에서 이번 무대가 가장 객석이 가득 찬 것 같았다. 적어도 1층을 기준으로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무대에서 연주될 파질 세이의 작품이 너무 궁금해서, 프로그램 북에 실린 해설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프로그램 북을 받을 수가 없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첼리스트 배지혜의 모교들이 대대적으로 후원을 해서 그런지, 공연 약 2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프로그램 북이 부족하다는 게 티켓박스 직원들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티켓을 수령한 이후에 보니, 일부 관객들은 여전히 프로그램 북을 받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물량이 달리는 프로그램 북을 후원기관 초대회원 위주로만 배부하는 것 같았다. 심히 아쉬웠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저 세이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달래며 공연장으로 입장할 뿐이었다.


 



PROGRAM


C. Debussy  Cello Sonata No. 1 in d minor


F. Say  Cello Sonata "Four Cities"


INTERMISSION


L.v. Beethoven  Cello Sonata No. 3 in A Major, Op. 69

 




첫 곡은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 1번 라단조였다. 공연을 보기에 앞서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오묘하고 종잡을 수 없는 듯한 선율이 홀을 가득 채웠다. 음울한 듯하면서도 어쩐지 퉁명스러운 듯하게 그려낸 드뷔시의 정서가 첼리스트 배지혜의 손끝에서 잘 살아났다. 이 첫 곡을 들으며 특히나 느꼈던 점은, 첼리스트 배지혜의 테크닉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능력이 정말 뛰어났다는 점이다.


분명히 현대적이면서도 또 동시에 묘하게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드뷔시의 작품을, 첼리스트 배지혜는 암보하여 연주했다. 외워 연주하기 편한 곡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도 암보했다는 게 놀라웠다. 또한 피아니스트 김윤지와의 합도 너무나 좋았다. 이번 연주를 완벽하게 대비한 느낌이었다. 연주자가 자신감 있게 풀어주는 연주였기 때문에, 듣는 입장에서도 믿고 들으며 음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첫 곡부터 연주와 분위기, 연주자 간의 합이 너무 완벽해 남은 두 곡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


1부의 두 번째 곡은 파질 세이의 'Four cities'였다. 말 그대로 네 개의 도시명을 따 악장으로 내세운 이 작품의 첫 악장은 '시바스'다. 1악장은 정말 아름답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과 첼로의 피치카토로 시작해 점차 발전되어간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답고 즐겁게 음미할 수 있는 연주였다.

 

이를 뒤잇는 두 번째 악장 '호파'는 폭발적인 유니즌과 격동하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1악장의 부드러운 공기를 완전히 전환시켜, 두 악기가 함께 질주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저 폭발하기 직전의 불안정성으로 느껴지기보다는 그 안의 기대감, 생동감이 더욱 크게 와닿았다. 그렇게 느끼게 전해주는 배지혜의 연주가 인상적인 대목이기도 했다.


3악장인 '앙카라'는 단언컨대 이 작품에서 세이가 가장 힘을 준 파트다. 가장 길이감이 길고, 무게감 역시 진중하다. 피아노를 울림없이 마치 드럼처럼 완전히 베이스로만 사용하고, 첼로로 장엄미 넘치는 주선율을 연주하며 '앙카라'가 시작되었다. 그 순간 첼리스트 배지혜가 만든 공기는 그야말로 인상적이었다. 홀을 가득 채우는 그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마지막 악장인 '보드룸'은 직전의 무겁고 진지했던 분위기를 다시금 환기시키며 익살스럽고 리듬감 넘치는 마무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세이는 장난스럽게 말미에 이르러 첼로로 재치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로 재지한 피아노 선율 사이로 첼로가 완전 뭉툭하게 진행을 끊고 들어오는 대목이다. 배지혜의 손끝에서 더 익살스럽게 살아난 그 순간이 끝남과 동시에 맞이한 피날레로 인해, 객석은 뜨겁게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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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무대의 마지막 곡은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 가장조, 첼로 소나타 중에서도 바이블에 속하는 바로 그 곡이다. 너무나 익숙한 작품이라 그런지 첫 음을 듣는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래도 1부의 작품들에는 토닉하지 않은 패시지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선율의 진행만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은 구성 역시도 그야말로 안정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시종일관 평화롭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시냇물처럼 아름다웠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은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첼리스트 배지혜는 이 작품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배지혜는 작품을 연주하면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조성하고 관객을 그 세계로 몰입시키는 능력이 고무적이었다.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곡보다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흔한 곡에서 특히 관객이 더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누구나 아는 만큼, 그 곡에 대한 취향이 각양각색일 것이고 이미 알고 있다는 이유로 집중도가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지혜는 마지막까지 객석의 긴장도와 몰입감을 유지해냈다.

 

물론 이 놀라운 흡인력은 1부에서도 느껴졌지만, 베토벤을 연주할 때 더욱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종일관 아름답고 깊이감 있는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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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이 끝나자 객석에서 브라바를 연호하며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뜨거운 연호에 화답하여 첼리스트 배지혜는 바흐 첼로 조곡 3번의 사라방드를 연주해주었다.

 

무반주 첼로 작품을 앵콜곡으로 선곡해주어서 너무 좋았다. 대곡을 연주한 뒤라 그런지 살짝 미스가 있었지만, 그런 인간미 있는 요소 마저도 오히려 이번 무대를 즐겁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앵콜이 끝난 순간에도 여전히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그의 연주에 화답했다. 뛰어난 연주와 우레와 같은 환호가 어찌 동떨어질 수 있을까.


첼리스트 배지헤는 현재 쾰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 부수석으로 활동 중이다. 그가 향후 주 무대로 삼아 활동할 곳은 유럽이겠지만, 국내 무대에서도 이번 독주회처럼 뜨거운 연주들을 많이 선보였으면 좋겠다. 그가 앞으로 보여주는 뜨거운 첼로의 세계가 어떨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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